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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줌마 Feb 15. 2024

7. 이거... 테스트 맞아?

만들기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그런데 옆의 사람들이 자꾸 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를 배려해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더 방해되었단 말은 할 수 없었다. 뭐 하나 물어보면 막 와서 가르쳐주고.. 심지어 시범까지 보여주는 등 역시 캐네디언들은 엄청 친절했다.


이래도 되나.. 이거 테스트인데..
 

나중에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물었더니 그 사람이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라고 답했다.

그래. 그것도 능력이지.

가 석션에 이를 떨어뜨리자 사람들이 막 우르르 몰려와 막 석션 입구 그물 찾아다 씻어다 끼워주기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시간은 배로 걸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근무하면서 보니 이 캐나다인들은 뭔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해 보이는 방식으로서 자신이 아는 것을 과시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누가 물어보면 나서서 아는 척하고, 설명해주고 하는 걸 좋아한다! 자기 것은 전혀 내놓지 않으면서 입사 몇 년 차이니, 선배이니 하면서 대접만 받으려는 어느 나라(어느 나라인지는 비밀!) 사람들보다는 훨씬 신선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이상 되어서 상대가 자기를 위협할 정도가 되면 경계한다) 이런 식이라면 신입에게는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추켜세워주며 이것저것 많이 물어봐야지!


이미 3시간여 걸릴 거라고 했던 테스트 시간이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돌아와서 다시 빌드업을 하고 있으니 매니저가 전기조각도와 왁스를 들고 나타났다. molar(어금니) 세라믹 빌드업은 하지 말고 그걸 가지고 왁스업을 하라고 했다.

후에 학원 원장선생님에게 듣기로 자기가 잘하는 걸 어필해서 테스트 내용을 바꾼 것도 굉장히 좋았다고... 물론 가 어필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당황한 를 보고 배려해 주신 거지만. 하지만 어떤 직종의 테스트이든 먼저 '나 이런 거 잘하는데 이거 해봐도 돼?'라고 한다면 안된다고 할 것 같진 않다.

그렇게 빌드업 하나, 왁스업 하나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4시 반. 11시에 회사에 들어와 점심도 굶고(그들이 굶으란 건 아니었다. 시간에 쫓기니 밥이 들어가나.) 이미 5시간이 지나있었다왁스업을 점검하며 매니저 왈 "우리 회사에서 왁스업은 거의 하지 않아요.. 해봐야 진단 왁스업 정도인데.. 그건 제가 직접 하죠. 빨리 해야 하니까요."

오오오오오....

"인터뷰 질문 답안은 잘 쓰셨던데요."  

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 제가 공부를 좀 했어서 그런가 봐요.. 쓰는 건 좀 낫고 리스닝이 젤 문제죠. 하하하..."

그러면서 매니저는 나를 집에 보내려고 했다. 아직 글레이징(광내기)이나 스테이닝(색칠하기)은 시작도 못했는데. 그래서 "저 이것도 하고 가면 안 되나요? 일찍 퇴근하세요?" 했더니 오히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는데 의 상황이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사실 자기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이 글레이징과 스테이닝이라면서(나중에 알게 된 것이 제가 세라믹실에서 가장 처음 맡게 될 업무가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HR매니저가 나를 또 봐야 한다고 했었기 때문에 더 시간을 써도 되는지 같이 가서 물어보자 하고 같이 올라갔다. HR매니저는 자기랑 얘기는 5분이면 끝난다며 끝난 후 얼마든지 더 하라고 했다. 적극적으로 더 하겠다는 사람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 HR매니저의 할 얘기란 근무조건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너 풀타임 되지? 주당 40시간 근무고 오버타임은 페이 하는데 최대 48시간까지야. 괜찮아? 언제부터 일 시작할 수 있어?" 

보아하니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반적인 사항들인 듯해서 OK, OK 하고 내려왔다.


다시 세라믹실에 내려와서 글레이징과 스테이닝을 시작했다.

한 번도 안 해본 지르코니아 작업이라서 막막하여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으려고 한국인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일 시작하시면 제가 다 가르치면서 할 건데요, 지금은 일단 어떻게 하시는지 보려고 하는 거니까 그냥 해 보세요."

이러고 가버렸다... T-T 바쁜 매니저는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일반 직원들과는 달랐다.


결국 혼자 글레이징을 시도했는데 아래쪽 절반만 윤이나는 채로 나왔다. T-T

이판사판이야! 내가 지금 뭐 가릴 때가 아니야! 

주위를 둘러보니 난척하기 좋아하는 청년은 벌써 퇴근. 좀 멀리 떨어져 있던 폴란드 출신 이민자라는 할머니 같은 아줌마에게 치아를 들고 쫓아갔다.


"이거 광이 절반밖에 안 나는데 어떻게 생각해?"

"아~ 네가 너무 묽게 해둬서 그런 거야. thick 하게 해야 해~."

이럼서 양을 시범으로 막 보여주더라고요. 가르쳐준 대로 다시 하고 구우니 반짝반짝~! 아싸~!


이제 색칠을 할 차례!

치아에 왜 색칠을 할까 싶을지 모르겠지만 지르코니아라는 인공 치아 재료는 색깔이 뭐랄까... 누런 플라스틱 덩어리 같아서 사람의 치아와는 다르기 때문에 자연치아처럼 보이는 눈속임(?)을 색을 칠해서 한다. 자연 치아는 약간 투명한 부분도 있고 -앞니를 유심히 관찰해 보시라- 또 뿌리 부분은 색이 더 불투명하고, 주름 부분에는 때가 끼어 착색된 경우도 있는데 이런 자연치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같은 이가 하나 끼어 있으면 완전 티가 난다. 이걸 진짜 치아같이 색칠해서 숨겨준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색칠도 단 한 번  앞니만 해 봤는데... 어금니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원장선생님이 캐나다에 볼 일 보러 가시기 전에 지르코니아 어금니 주시면서 연습해보라고 하고 가셨는데 해볼걸. 덥다고 차일피일 미루고, 나중엔 갑자기 출국준비 한다고 미루고 하다 그냥 온 것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번쩍!

한국에서 마지막 수업할 때 원장선생님이 펜으로 앞니와 어금니의 그림을 그려 어느 부분을 어떤 색으로 칠하는지 표시해 주시고 사진으로 찍어두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스마트 폰에서 갤러리를 뒤져 사진을 찾아보면서 색칠을 하고, 내친김에 색칠을 요구받지 않은 앞니도 마저 칠하고..


극도의 긴장 속에 작업을 이어 나가면서 속으로 연거푸 되뇌었다.

'나 내일은 아마 병날 거야... 이건 내가 버틸 수 있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넘어섰어...'


이렇게... 어금니 색칠을 마치고 가마에 넣고 나니 하고 나니 저녁 5시 50분.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퇴근하고 저와 일이 남은 중국인 아줌마 한 명뿐이었다. (행색을 보고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일하면서 알고 보니 애도 없는 새댁이었다) 한국인 매니저가 다시 내려왔다. 가마에 들어있는 치아들은 내일 자기가 확인하겠다며 가라고 했다.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식어서 제대로 색깔 보려면 20분은 더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알겠다 하고 나왔다.


아... 푸른 하늘.


이렇게 3시간 걸릴 거라는 테스트를 7시간으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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