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캔줌마 Jun 05. 2023

캐나다에 온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

나의 미술 수업은 대부분 저학년반, 고학년반을 나누어 진행한다.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때도 간혹 있지만 또래가 함께 수업을 하며 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보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렇게 한다.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서로의 작품에 자극을 받기도 하고, 서로의 좋은 점을 따라 하려고 애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또래들끼리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학년 아이들과 고학년 아이들의 수업 분위기는 천지차이이다. 저학년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 재잘재잘 (영어로) 수다를 떨며 그림을 그리는데 반해 고학년 아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투명인간인양 모른척하고 절대로 말을 섞지 않는다. 나는 청소년들의 과묵함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기에 별로 놀랍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캐네디언 청소년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약속한 것처럼 한결같이 입을 닫아 버리는 한국 청소년들에 대해 왠지 딱한 마음이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이곳 캐나다의 십 대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한국에서 건너온 이 십 대 아이들의 정서와 성향이 사는 장소가 캐나다로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캐네디언 십 대들처럼 바뀌지는 않는다. 이 아이들은 캐나다에 와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에서 KPOP이나 한국 드라마 등을 즐겨 보며 지낸다. 영어가 서툰 아이들은 이 때문에 캐네디언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자신감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조차 유아기부터 십 대가 되기까지 보고, 듣고, 읽어온 총체적 문화배경이 다른 캐네디언 아이들과 말이 잘 통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과 공유하는 문화적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아이들끼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너 뽀로로 닮았어!”라는 한마디에 까르르 웃고,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하며 <도깨비>에서의 ‘김신’이 했던 대사를 패러디하면 빵 터지지만, 캐네디언들이 <뽀로로>나 <도깨비>의 대사를 알 리 만무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캐네디언들의 <뽀로로>나 <도깨비>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한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며 가장 괴로운 순간도 회의 시작 전 직원들끼리 이런 스몰톡(Smal Talk)을 할 때이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 회의 시작 전, 주말동안 본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누군가 "그거 봤어?" 하면서 꺼내는 순간부터는 전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빨리 업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물론 초등 저학년에 온 아이들은 십 대 아이들보다는 훨씬 스스럼없이 캐네디언 친구들과 어울린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아직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함께 이런저런 경험들을 만들어가며 쉽게 친해진다.


그런데 이 딱한 십 대 아이들이 부모님 때문에 더욱 딱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십 대 초반만 되어도 영어를 모국어처럼 습득하기엔 힘든 나이이다. 그래도 부모세대에 비하면 뇌가 말랑말랑해서 같은 시간을 영어권에서 보냈을 때 아이들이 성인들보다 좀 더 학습 효율이 좋다는 것이지, 아이들이라고 해서 갑자기 영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영어를 빨리 늘게 한다는 이유로 일부러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학교를 찾아 전학을 시키기까지 한다. 아이가 얼마나 두렵고 막막할지 참으로 안타깝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두렵고 위축되어 있다. 설사 같은 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있다고 해도 그 아이들과 친해져 한국말만 많이 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인 십 대 아이들이 캐나다에서 지낸다고 해서 갑자기 사교적이고 친절한 캐네디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을 영어로 듣고, 수업에서 진행되는 활동에 영어로 참여해야 하고, 조별과제를 하게 되었을 때 같은 조원 아이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한다. 숙제도 당연히 영어로 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비하면 하루종일을 영어와 씨름해야 한다.


그럼 이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은 어떨까. 런던은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의 자녀는 학비를 면제해 주는 무상교육을 지원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오시는 유학가정들이 많다. 이 분들은 ESL코스에서부터 같은 반이 된 한국인들과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며 아이들 학교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공부, 이후 영주권 문제까지 온갖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시험을 앞두고는 함께 모여 공부하기도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함께 모여 맥주 한잔으로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정작 자신들의 자녀는 한국인 아이와 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학까지 불사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삶'이라는 관점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영어 학습'이라는 생각만으로 효율만을 우선시하며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이들도 힘들다.

어리기 때문에 낯선 환경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고, 힘든 것도 모르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동병상련의 동료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친구가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 고수들의 성공 비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