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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Apr 03. 2018

우리가 백인을 필요로 한다고?

인종을 초월했던 우정의 이면에 대하여



어쩌다보니 가입하게 된 LinkedIn이 묻는다.


'Do you know 아무개?'


어찌 보면 편리하고 달리 보면 공해인 소셜미디어의 맞춤 연결 서비스.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상대방의 이름과 사진을 보게 되면 순간적으로 움찔 동요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외면하는 것쯤이야 오프라인에서 맞닥뜨리고 '쌩까는' 것보다는 쉽지만. 


관계가 끊겨버린 V. 보아하니 결국 또 이사를 간 모양이다. 작정하고 연락하지 않으면 다시는 만나게 되지 않을 머나먼 지역으로. 실은 얼마 전  V가 현재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게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이곳을 떠났을 때와 같은 이유라고 했다.


여러 해 전의 일이었다. 한 동네에 사느라 자주 마주치게 된 V와 나는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소외감을 매개로 가까워졌다. 미국에 살지만 미국인이 아닌, 영어권 국가 출신도 아니라는, 게다가 현지인들에게 딱히 우대받는 국가 출신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우리의 친분에 밀도를 더했다. 


지금이야 한류다 뭐다 해서 해외에 체류하는 한국 사람들의 입지가 많이 나아졌지만 솔직히 말해 아시아계가 서양 사람들에게 덮어놓고 환대받는 경우란 별로 없다. 현지인들에게 이유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그들과 다른 나의 생김새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V가 투덜거릴 때 놀라웠다.


"내가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걸 밝히면 상대방의 얼굴색이 얼마나 달라지는 줄 알아?"

"넌 생김새가 그들과 같잖아. 게다가 금발. 그런데도 그래?" 

"동유럽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거지 뭐."


미국인들이 유럽 국가 출신들에게 관대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 관대함이 서유럽의 경제 선진국 출신들에게 한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기야 내가 당하는 일에 울분을 터뜨리기도 바쁜데 동유럽 출신 백인이 받는 차별까지 눈여겨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동병상련. V와 나는 더 친해졌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인들의 관습과 행동양상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방인으로서의 동지애를 다졌다. 미국인들이 집착하는 것들에 조소하고, 미국인들이 경시하는 것을 드높이며 '그들과 다른 우리의 같음'을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로받았다. 


속을 터놓을 정도로 친해지니 조금씩 신경을 긁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본주의가 몸에 밴 나와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녀와의 괴리도 없지 않았다. V 부부는 다니고 있는 직장 내 프로젝트가 아무리 바쁘게 돌아가고 있어도 개의치 않고 휴가를 가는 데다가, 주어진 연간 휴가 기일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몰아서 썼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간이 떨려서 괜찮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당당히 답하곤 했다. 


"주어진 휴가를 원할 때 쓰는 건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얻어낸 것들 중 하나야. 회사에 쓸데없이 충성하느라 과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쟁취해낸 것들을 도루묵으로 만드는 죄악이라고!"


맞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근면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아시아계인데다가 일한 만큼 보상받는(늘 그렇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사고 체계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사람으로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용기였다. 


아무리 법적으로 주어진 권리라지만 직장 내 분위기를 개의치 않고 융통성없이 아무 때나 찾아쓰는 배짱. 따라하긴 어려워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배짱이 소신의 영역을 벗어나 선을 넘으면 부러움이 반발심으로 변질되곤 했다. 직장 내 중국인 동료가 성과를 내느라 늦은 밤까지 일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흉내내며 조롱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줄래도 듣기 거북했다. 


V가 그 동료를 언급할 때 '중국인'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면 달랐을까. 직종을 불문하고, 미국 내 기업에서 일하는 아시아계 직원들은 나대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편견의 벽에 부딪치는 일이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많은 양의 일을 해내는 아시아 사람들의 성실함이 모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렇듯 삐걱거리는 것들이 종종 튀어나와도 마음을 다독여가며 V와의 우정을 지켜나갔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나. 그간 쌓은 정도 있는데 몇 가지 실수들로(그것들이 실수라면) 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지. 사실 V에겐 장점도 많았다. 정을 잘 주는 성격이라 허물없이 지내기 편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이러다 V가 싫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 걱정도 오래할 게 못되었다. V가 남편의 실직으로 이 지역을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과 평점이 기준에 못 미치는 직원들을 구조 조정 기간에 정리 해고하느라 벌어진 일이었다. V는 '하드 워커'인 남편이 해고 당한 까닭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며 나를 찾아와 한참을 울고 갔다. 


다행히 V의 남편은 곧 재취업을 했고, V의 가족은 새 직장이 있는 보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V가 떠나고 난 뒤에도 우리는 가끔씩 서로를 초대하고 방문하며 관계를 이어나갔다. 보스턴으로 간 V는 다시 행복해진 것 같았다. 이유야 어쨌건 스몰타운을 벗어나 대도시로 가게 된 것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대도시에 사는 이점을 피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녀가 떠난 이곳을 도저히 못 배겨낼 척박한 곳으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남아있는 나로선 듣기 좋을 리 없었으나 이 동네를 쫓기듯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V가 상처난 자존심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것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뭐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V에게는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인간 군상을 완벽한 깍쟁이 유형들과 수더분한 둔탱이 유형들로 나누면 후자 쪽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대개는 이 두 유형들의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이 타인과 두루두루 잘 지내게 마련이고 나도 그런 사람들을 편안해 한다. V의 경우, 그녀와 내가 공유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설움 같은 것이 아귀가 맞지 않는 기질 차이를 상쇄했던 것 같다.


지금도 문제의 그날을 떠올리면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속을 터놓는다는 것과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의 엄청난 간극을. 비슷한 듯 분명 전혀 다른 종류의 처신이다. V와 나는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화제는 당시 V가 참석하게 될 결혼식으로 시작됐다. V는 몇년 동안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살 때 친해진 가족의 결혼식에 초대 받고는 한껏 들떠 있었다. V가 여러번 화제에 올렸던 일본인들이었고, V가 나와 한동네에 살 때 그 모녀가 미국 여행을 와 V의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나도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모녀 중 딸인 아가씨가 결혼을 한다는데 그쪽에서 V에게 청첩장을 보내면서 놀랍게도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줬다는 거였다. 결혼식 테마는 이른바 '프렌치 웨딩'이고, 교토의 엄청나게 럭셔리한 호텔에서 치뤄질 거라며 V는 신이 나 있었다.


"오호, 부자 친구 두니까 좋네?! 결혼 선물은 뭘로 할거야?"


결혼 선물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낸 데에는 사실 속내가 따로 있었다. 비행기표까지 끊어 보내준 성의에 어느 정도는 상응하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귀띔을 해주고 싶은 오지랖이 발동한 거였다. 금전적 '기브 앤 테이크'라는 암묵적 상식에서 V가 좀 취약하다고 여긴 탓이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V가 사놓았다는 선물이 뭔지 듣고나니 어이가 없었다. 못 참고 한마디 했다.


"좀 약하지 않아? 비행기 표까지 보내줬다며? 더구나 아시아 사람들은 결혼식에서 자기가 먹게 될 식사 값까지 고려해서 축의금 액수를 정하는데."


실은 좀 약한 정도가 아니라 황당할 만큼 약소한 선물이라 나도 모르게 입바른 소리가 나와버린 거였다. V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얼마 안있어 평정을 되찾았다. 무안을 준 내게 되돌려줄 반박 컨셉이 정해진 모양이었다.


"글쎄. 솔직히 나로선 비행기 표가 오지 않았다면 그 결혼식에 참석할 순 없을 거야. 비행기 티켓까지 사보내니 못 갈 건 없는 거고. 그런데 선물이나 축의금을 거기에 맞게 해야 한다는 건 좀......"


거기까지는 V의 말이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문제는 V가 거기서 한 발짝 더 내딛은 것이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 친구가 비행기표까지 보낸 이유가 뭐겠어? 결혼식 테마가 프렌치 웨딩이라잖아! 결혼식 사진에 그림이 괜찮게 잡혀야 할텐데 백인들이 좀 껴있어야 하지 않겠어? 결국 자기들이 날 필요로 하니까 비행기 표도 보냈을 텐데 뭐."


아......  정말이지 머리가 핑그르르 돈다는 게 이런 걸까 싶게 화가 치솟는데도 받아치지 못했던 건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물론 큰 액수의 선물이나 축의금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V가 되는대로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화를 내기엔 내 분노에 제동을 걸고 있는 수치심의 질량이 셌다.


 V가 드러낸 속내가 일종의 '간파'에서 기인했다는 걸 인정하기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속내를 까발린 건지 도저히 묵과해 줄 수 없는 V의 무개념은 일단 차치하고, 일부 백인들이 저토록 당당하게 뻔뻔할 수 있는 것에 우리 아시아인들의 책임은 없을까. 


아시아권 도시들을 뒤덮은 알파벳 간판, 우리가 쓰는 기사나 온라인 포스팅에 차용된 사진들 속 금발의 선남선녀들, 한국 브랜드 아동복 화보 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백인 어린이들, 크리스마스, 발렌타인 데이, 심지어 할로윈 데이까지 챙겨가며 떠들썩해진 된 우리의 자화상. 그 모든 걸 바라보며 자신들의 이미지와 문화를 '하사'한 우월감에 젖어있을 서양인들. 놀랄 일도 아니다. 


가까이 지내는 한국인 지인 중, 얼마 전 한국으로 파견 근무를 나갔다 돌아온 사람이 있다. 인사 차 통화를 하던 중 그녀가 투덜거렸다. 이년 간 한국에서 지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점이, 미리 파견 나가있던 미국인 동료들이 한국에서 받는 필요 이상의 우대에 완전히 젖어든 나머지 한국인들을 상대로 갑질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을 목격하는 일이었다고. 


"그 꼴 보기 싫어서 더이상 못 있겠더라고!"

 

유튜브 스타 중 유창한 한국말로 채널을 운영하는 외국인 중 올리버쌤이라는 미국인이 있다. 한국에 살면서 양쪽 문화를 비교 분석하는 비디오 클립을 제작해 올리는데 시점이 흥미로워 가끔 들여다 본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한국에 와서 당당히 영어로 음식 주문을 한 뒤 알아듣지 못해 당황하는 음식점 직원을 짜증난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한 미국인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었다. 영상 말미에 올리버쌤이 귓속말 시늉을 내며 덧붙였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외국인에게 그렇게까지 잘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국인인 그가 보기에도 오죽했으면. 


V가 내뱉은 말로 인해 벌어진 균열은 도저히 이어붙일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복수로 별 다른 게 있겠는가. 절교밖에. 그렇다고 절교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V에게서 오는 이메일과 전화를 단계적으로 회피하고 답신을 거부하면서 V가 내 의중을 짐작하도록 유도했다. 


이제는 V도 내게 연락을 하진 않는다. 내가 그렇듯 V도 소셜미디어가 어거지로 나를 상기시켜 줄때마다 씁쓸하게 지난 날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돌아선 이유를 V가 알아냈는지 못 알아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바라건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시절에 대해 그녀가 곡해하고 있지 않기를. 


'나는 백인이 필요했던 게 아니란다. 친구가 생겨서 기뻤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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