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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Apr 23. 2018

신부를 찾아주세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로 모여드는 미국인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공들인 메이크업, 칵테일 드레스, 하이힐, 반짝거리는 클러치까지.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는 마음이 신부 저리 가랄 정도로 들떴던 것은 미국 교외의 삶이란 좀처럼 차려입을 일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임이라고 해봐야 보풀 없는 깨끗한 스웨터 정도나 찾아 입고 가면 적당할 동네 파티가 대부분인 생활. 어린 시절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속의 화려한 파티는 대체 어느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인 걸까? 


날짜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누가 사월 아니랄까봐 으슬으슬한 꽃샘추위가 이어지더니 전날에는 비바람까지 몰아쳤다. 주중 내내 날씨가 심란했다. 그러다 결혼식 당일이 되니 거짓말처럼 쨍하고 해가 났다. 공기도 훈훈했다. 신랑신부가 날 하나는 잘 잡은 거였다.


결혼식 장소인 채플은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빠진 다음 꽤 가야했고, 중간 중간 작은 마을 몇 군데를 거치면서, 농장도 지나고, 굽이굽이 이어진 숲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간 후에야 나타났다. 


설명을 하자니 구구절절이지만 사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만 달리면 나오는 곳이긴 했다. 단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곳이고, 심지어 지나쳐본 적도 없는 방향이었다. 살고 있는 주 이곳저곳을 꽤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내 행동 반경은 늘 가는 곳만 가는 반복 패턴이었던 거다. 


Middle of nowhere.


채플이 있는 P 타운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아무 것도 아닌 곳.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벽촌인 동네였다. 신부의 고향에서 식을 올리는 것이 미국인들의 관습이니 J의 ‘그녀’가 P 타운 출신인가 보았다. 


캐나다의 대도시 출신인 J로서는 어지간해선 발길이 닿지 않을 지역이었을 텐데 그곳 출신의 아가씨와 만나 사랑을 하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거다. J는 결혼과 관련해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는데, 결혼식 장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J와 ‘그녀’가 만나게 된 경위를 상기하면 놀랄 것도 없지만. 


J가 전처와 합의 이혼한 건 삼년 전쯤이었다. 이혼이야 요즘 세상 드문 일이 아니긴 해도 충격이었다. 한창 손 많이 가는 연령대의 남매를 둔 젊은 엄마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등록해 교제할 남자 친구를 찾아내고, 급기야 J에게 이혼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납득하기란 어려웠으니까.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남자 때문에 J를 버렸다고? 유순한 성품에 외모도 훈훈하고 고학력자에 안정된 직업까지 가진 J를? 둘 사이의 그 귀여운 아이들은 눈에 밟히지도 않았을까?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던 J부부의 이혼에 주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당사자인 J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동안을 넋이 나간 채로 지내더니 결국 애들 엄마가 원하는 조건까지 꽤 들어줘가며 이혼도 해줬다. 애들 엄마는 새로 사귄 남자와 함께 살 임대 아파트를 구해 나갔고,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수입이 보장된 아빠와 지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주말은 엄마와 엄마의 새 애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가서 보내기로 합의를 봤다고. 


그러고 나서 이년 쯤 지났을까. J에게도 새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들을 보니 아이들과 새 여자 친구를 대동해 피크닉도 하고, 볼링도 치고, 파티도 하는 등 즐겁게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전처가 떠난 후 한동안 납빛을 띠고 다니던 J의 얼굴색도 본래대로 돌아왔다.  

  

어떻게 만났대? 


주변에 슬쩍 물어봤더니 결과가 의외였다. 아니 어떻게 거기서? 황당한 게, 전처로 하여금 바람을 피우게 만들었던 바로 그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J 역시 새 여자 친구를 찾았다는 거였다. 헐! 어이가 없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오죽했으면. 


인간 사이의 간격이 넓은 미국 교외의 삶. 퇴근 후 한적한 주택지로 귀가해 아이들을 돌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반복적인 일상. 여유는 있으되 활기는 없는 곳에서 배신감을 삭이며 외로움을 견뎌냈을 J의 생활을 연상해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친구들과 가족들은 대개 고향인 캐나다의 한 도시에 모여있고, 연고가 없는 미국의 소도시로 취업해 와 살게 된 J가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꼭 다른 나라 출신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의 특성 상 미국인들 또한 진학이나 취업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면 향수에 시달리고, 익숙지 않은 지역 정서에 당황한다. 


특히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혹은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이주한 경우, 비행 이동 시간이 다섯 시간이나 되기도 하고 시차가 있기도 하니, 같은 나라지만 외국에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는 이런 풍토에서 활성화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입을 하면 회원이 입력한 정보와 원하는 조건을 토대로, 인종, 연령, 최종학력, 직업, 만남 가능한 이동거리까지 고려해 후보들을 추천해 준단다. 그야말로 취향대로 돌아가며 샘플 데이트를 해볼 수 있는 거였다.


식장 앞에 도달하니 턱시도를 입은 J가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행복해보여 좋다고 말을 건네자 쑥스러운지 씨익 웃어 보이곤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안내된 자리로 가 앉아 식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의 결혼식을 위해 차려입은 남매가 하객들 사이를 팔랑거리며 돌아다녔다. 몇 년 새 아이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었는지 식장 앞에 서있던 J가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하객들 쪽으로 와서 잡담을 나눴다. 내 옆에 앉아있던 A. J를 향해 직구를 던진다. 


“애들은 어때? 결혼식에 대해서 말이야.”


A는 용기도 좋지. 깜짝 놀랐지만 솔직히 나 또한 내심 궁금했던지라 얼른 J를 돌아봤다.


“뭐, 파티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자기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딸을 눈으로 쫓으며 J가 한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J의 딸은 신부 측 들러리들과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입장할 사람들이 차례로 입장을 했다. 입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신부여야 마땅하겠지만 무례하게도 나는 J의 딸에게 더 눈이 갔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야 물론 아름다웠으나, 식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들러리 그룹에 섞여있는 J의 딸에게 신경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직접 그린 나비 그림을 자랑하던 다섯 살 꼬마. 몇 년 새 길쭉하게 자라 삼촌의 팔짱을 끼고 아빠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된 들러리 드레스를 입고 의젓하게 입장을 했다.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기색을 엿보기를 기대했으나 솔직히 그 어떤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저 긴장한 것으로만 보였을 뿐. 


피로연 무대에서 J의 아이들은 구두를 벗고 춤을 췄다. 무대는 축제인 만큼 모두가 신나 보였다. 물론 어떤 인생이든 늘 축제일 수만은 없는 건 분명하다. 부디 아이들이 J가 이룬 새 가정에서 행복하기를. 신부보다 전처와 아이들을 먼저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위한 기원이 앞선다는 게 신부에겐 좀 미안했다. 


허나 어쩌랴. 나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를 읽고 자란 보통 여자인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J와 새 신부, 그리고 두 남매가 조화롭게 지내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심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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