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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Aug 14. 2021

인어공주, 그 후

인간을 사랑하는 인어공주, 그러나 너무 변해버린 사회.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면 온갖 파도와 바람으로 물들이 사방으로 부서지고 흐트러지며 정신없다. 그러나 사실 바닷속은 평온하기만 하다. 풍파를 겪은 물들이 모두 한데 모여 깨달음을 얻은 현자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바다 깊은 속에는 인어 왕국이 있다. 바닷속의 생명의 질서에 관여하는 인어 왕을 필두로 왕자와 공주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올곧게 하는 중이다.


인어들은 하는 일이 많다. 먼저 생태계 보전을 위해 개체 수를 조정하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원개발로 생태계를 교란에 한창인 요즘 인어들은 보이지 않는 심연 깊은 곳에서 교란된 종들을 관리하고 그 개체 수를 조금이라도 늘려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다르게 바다는 고통받는 일이 점차 잦아졌다. 인어들로만은 이 생태계를 유지하기란 퍽 어려워 보였다.


왕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모든 이들이 평등한 인어 세계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가 열렸다. 바다의 자정 능력은 한계에 달했고 인어의 수도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과격한 변화가 있을수록 그 생태계의 한 부분인 인어들도 결국 타격을 입었다.


왕에게 막내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인어공주, 세르핀은 호기심이 가득하다. 호기심은 그녀의 지식을 충족시켜주었지만 동시에 위험한 행동을 유도했다.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세르핀은 인간 세계가 궁금했다. 인어들은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동시에 증오의 대상 또한 아니었다. 인간들 역시 생태계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근래 들어 더 그 수가 증가하여 생태계를 교란할지라도. 그들에겐 단지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 인어들은 인간들과는 상관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그들의 일을 할 뿐이었다.


세르핀은 궁금했다. 인간들이 이렇게 엉망으로 살다 간 그들도 멸망할 것임을 그들은 정말로 모르고 있을까? 무지에서 비롯됐다면 그들을 일깨우는 것까지 그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그들에 대한 호기심은 인어답지 않았고 과한 면이 있었다.


인어들은 깊은 바닷속 그들의 관할 구역에서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 인간들의 기계가 바다 깊은 바닥까지 몰아닥치는 일이 잦았고 그 기계들에 노출되어 목숨을 잃는 인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인어들은 특히 구역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됐다. 과거에 그들의 선조가 배를 탄 왕자에게 사랑에 빠졌고 인간이 되고 싶어 마녀에게 부탁해서 생긴 인간의 다리를 끌고 인간 세계로 나갔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 왕자는 다른 인간에게 사랑에 빠졌고 왕자와 사랑을 해야 살을 수 있었던 그들의 선조는 죽으면서까지 그 둘을 축복하며 공기의 정령이 되어 사라졌다. 그들의 선조는 비극으로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나 다른 인어들은 그 일을 비극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것을 반면교사 삼아 어린아이들이 호기심에 밖에 나가는 것을 막았다.


세르핀은 그 선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이가 없었다. 인어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넘쳤던 그녀였기 때문에 물속에서 그들의 발이 되어주는 꼬리를 포기한다는 것이 특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궁금했다. 이런 그녀의 지적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이는 역시 마녀였다. 인어 왕국의 마녀는 인간 세계로 따지면 과학자의 역할이었다. 마녀는 생태계의 서식지를 조금 더 풍요롭게 해주는 물질들을 발명하는 아주 중요한 인재였다. 그리고 그녀는 영생을 살기 때문에 현명했고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은 세르핀은 틈만 나면 수많은 질문 폭격을 함으로써 바쁜 그녀를 괴롭혔다.


"꼬리가 다리로 바뀌었을 때의 탈듯한 고통, 말을 못 하는 고통, 그리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그것까지 모두 다 알려주었음에도 그녀는 그 길을 택했지."

"대체 이유가 뭘까요? 마녀님?"

"나도 물었지만, 그녀는 웃을 뿐이었단다. 그저 얼굴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고"

"그게 사랑인가요? 결국, 반쪽짜리 아닐까요?"

"사랑의 완벽한 정의가 어디 있겠니. 결국, 그것도 그녀가 선택한 사랑의 길일 뿐이란다."

"하지만 이건 너무 억울해요. 왕자는 결국 다른 인간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했잖아요."


세르핀은 마녀의 말을 들으며 갸우뚱할 뿐이었다. 마녀는 웃었다. 어린 세르핀은 그때의 그녀를 떠오르게 했다. 그녀도 이렇게 호기심과 궁금증이 넘쳤다. 한편으로는 젊었던 그녀를 사지로 몰아낸 것이 아닌가는 책임감은 가슴의 부채로 남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세르핀만큼은 그 일을 반복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 마녀의 걱정은 새까맣게 모른 채 세르핀은 남모르게 연습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심해에서 수면까지 그 거리를 빠르게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그들, 인간이 궁금했다. 그들을 몰래 보고 오기 위해선 속도감 있는 수영을 연습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연습하던 어느 날, 그녀는 바닷속을 달리는 잠수정을 발견했다. 세르핀은 깜짝 놀라 바위 속에 몸을 숨기고 잠수정을 바라보았다. 잠수정 속에는 인간 여럿이 있었다. 그들자못 심각한 분위기였다. 자신들과 너무 닮은 모습에 정신을 빼고 신기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세르핀에게 바닷속 절규가 들려왔다. 눈을 비비고 다시 잠수정을 보니 잠수정의 한 곳에서 검은 무엇인가가 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무언가는 그 주변에 있는 바다 생물들이 숨 못 쉬고 죽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세르핀에게는 또렷하게 들리는 그들의 죽음의 소리는 찢어질 듯 그녀의 귀를 찔렀다. 그 모습은 아수라 그 자체였다. 잠수정이 온 방향의 물고기들은 물론 각종 해양 식물들까지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곧 있으면 이 구역은 모든 생물의 무덤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세르핀은 다급했다. 저 검은 독을 해결할 이는 마녀밖에 없었다. 세르핀은 그 길로 빠르게 마녀에게로 갔다.


"마녀님! 큰일 났어요. 인간들의 잠수정에서 검은 독이 유출됐어요."


마녀는 당황스러웠다. 그것을 세르핀이 어떻게 가장 먼저 알고 나에게 달려온 것일까.


"잠수정에서 검은 물질이 새고 있는 걸 발견했니?"

"네. 인간들도 세 명 정도 타고 있는 듯한데, 이대로 가다간 그 구역의 모든 생물이 죽을 것 같아요."

"어느 구역이니?"

"A-234-b, 아렌 오빠가 담당하는 구역이에요."

"아니, 그곳은 특히 인간들 출몰 구역이라 위험한데…. 아니 됐구나.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해야지."


마녀는 급히 아렌을 호출했고 아렌은 그 즉시 마녀에게 구호 물품들을 받아 들고 그 인근 구역의 관리자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러 떠났다. 다행히 세르핀이 빠르게 발견한 덕분에 그 피해는 최악의 상황, 모든 생물이 죽는 것은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태임은 어쩔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일까. 인간들은 이미 그 잠수정을 버리고 떠난 직후여서 인어들은 편하게 그 구역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물과 잠수정은 마녀 실험실로 물방울로 단단히 밀봉돼서 옮겨졌다. 장수정이 떠나간 그 자리의 있던 많은 생물 생명 위했다. 그리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인어와 해양 생물들은 며칠간 아니 몇 달간을 오염물 중화 작업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와 별개로 세르핀은 왕에게 불려 갔다. 왕국을 멋대로 벗어난 부분은 혼났지만 다른 생명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구한 공을 인정받아 작지만 관리할 구역을 받고 회의 참정권도 얻게 되었다. 세르핀은 최연소 관리자가 됐지만,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생명은 구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졌다. 일종의 무력감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곳을 보호할 방법은 없을까. 인간들은 정녕 그들이 생태계의 꼭대기 층에서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아끼는 모든 것들이 고작 검은 독에 의해 고통스러워하던 그날의 그 모습은 계속 악몽으로 꿈에서 나타났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인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인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녀는 회의에 참여하여 그녀가 목격한 참담함을 알렸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어들은 단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그들의 구역을 최선을 다해서 돌보는 일. 애초에 인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만으로도 그들은 벅찼다. 수면 밖의 세상은 인어들의 권한 밖이었다. 세르핀은 마녀에게 갔다.


 "마녀님.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인간들은 정말 이 생태계의 독약이에요."

"세르핀. 미워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단다. 인간들은 생태계를 교란시키지만 동시에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걸."

"하지만 … 다들 죽어가고 있는걸요…. 이대로 가다간 자연 모두가 파괴되어 버릴 거예요. 그리고 자연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들도 죽게 되겠죠.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할 텐데요."


마녀는 빙그레 웃으며 세르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정말 그 아이를 닮았구나. 부단히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 모습이. 열을 내는 그 모습이."


세르핀은 마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워하는 그 감정도 결국은 대상을 향한 관심이라는 것을. 인어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의 삶으로도 바쁜 그들은 인간들에 대한 감정이랄게 별로 없었다. 그저 그들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세르핀은 다르다. 인간들을 향한 호기심과 관심이 높다. 그리고 인간들을 향한 그것은 세르핀이나 과거의 그녀나 모두 같았다. 향한 방향이 조금 다르게 갔을 뿐. 그리고 세르핀을 보기만 해도 그녀가 떠올라 과거의 상념에 젖어든 마녀는 오늘도 조금 더 바닷속 생태계가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연구를 하고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인어공주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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