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RICORN May 25. 2020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너

이유없는 괴롭힘.

나를 괴롭히던 너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1시간 정도로 조금 멀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나는 멀리 있는 고등학교로 '유학(?)'을 간 타입인데, 반의 대부분 아이들은 같은 중학교, 같은 학원을 다니던 아이들이 많아서 이미 그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친해져 있었다. 나는 같은 '유학' 온 아이들과 처음에 놀기 시작했는데, 나와는 성격, 관심사가 맞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다. 


그 힘든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나를 지독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아이가 있었다. 같은 기숙사 생이었는데, 나를 정신적으로 지독하게 괴롭혔다. 내가 그 애에게 피해를 입혔냐고? 글쎄. 나에게 그 애는 애초에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그러면 그 애가 반에서 인싸였냐고? 그것도 아니었다. 그 애는 그저 그런 반에 흔히 있는 아이 었을 뿐이다. 그러나 정말 내 ‘뒷 담화’, ‘앞 담화’를 입에 주야장천 달고 살았다. 같은 기숙사 생, 같은 반 학생으로서 24시간을 그 ‘빌런’과 마주하기는 정말 고통스러웠고, 큰 스트레스였다. 


이유를 모른 채 시달리던 나는, 용기를 내서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를 무렵, 기숙사 방에서 그 애를 붙잡고 물어봤다.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난 네가 싫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이유가 없는 괴롭힘이었으며 증오였다. 이유가 없는 증오란 없을 거지만,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하찮았기 때문에, 나에게 대답할 수 없었겠지. 그 일 이후 그 애는 아침, 점심, 저녁 내 뒤를 따라다니며, 더 맹렬히 내 험담을 하고 그에 크게 반박하지 못하는 날 비웃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아직 같은 반 아이들이 나를 알기에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기였다. 나는 같은 반 아이들이 ‘그 애’의 험담으로 나를 판단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였고 이런 우울한 생각은 나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사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을 거였고, 그런 아이들의 무관심은 나를 더 상상의 지옥 속에서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멘탈이 약하지만, 의외로 그 멘탈이 잡초처럼 질겼다. 처음 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엄마를 붙잡고 많이 울었다. 또한 담임선생님에게도 상담을 했으나 도움이 되는 건 없었다.

 

그때 결심을 했다. 


'이 반에서는 희망이 없다. 다른 반 애들을 공략하자!!!' 


생각해보면 정말 또라이 같지만, 나는 이동 수업 중에 눈여겨봤던 다른 반의 왠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아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말이 여기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전학은 싫었고, 정말 어떻게 해 서든 잘 지내보려고 했던 나의 질척거림은 결국, 다른 반의 ‘친구’ 들을 사귀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모습조차 ’그 애’는 조롱했다.  


그렇게 1학년 1학기가 끝이 났다. 방학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 빠르게 지나갔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나를 지독하게 싫어했던 ‘그 애’는 지치지도 않는지 급식실에서도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나를 조롱했고, 반에서도 그러한 비웃음은 계속되었다. 괴롭힘은 익숙해지지도 않는지 나는 다른 반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에도 여전히 힘들었다. 그 아이는 승리감에 고취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위축이 됐다는 건 그 애의 즐거움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학기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반전이 일어났다. 그 애는 결국,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 애는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한테도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생각 없이 말을 내뱉던 그 애는 결국 반의 다른 아이를 울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반전의 신호탄이 되었다. 


"너 엄마 없는 애 같아" 


라며 깔깔거리며 생각 없이 내뱉은 그 말은 어머니가 편찮으셨던 A의 상처를 제대로 건드렸다. 야간 자율학습시간, 즉 야자 시간에 A는 반에서 울기 시작했고, 그것을 계기로 갑자기 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말을 필터링 없이 뱉던 ‘그 애’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나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솔직히 제일 힘들었던 건, 염소지.", 

"그동안, 쟤가 너 욕 많이 했는데 난 믿지 않았어." 


라는 말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확 바뀐 온도에 쉽사리 적응하기 힘들었다. 갑자기 바뀐 아이들도, 어느새 나보다 더 위축된 '그 아이'의 모습도. 물론, 그 애가 불쌍하지 않았다. 내가 그간 받은 상처가 얼마인데? 거짓말처럼 나는 반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손에 깊숙하게 박힌 가시가 빠진 것처럼,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나의 인간관계도 점차 ‘회복’을 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척한 반 아이들의 모습은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지금이라도 바뀌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애와 마주하기 두려웠다.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기숙사에서 마주한 그 애는 내가 과거에 질문한 같은 장소에서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못 본 체 지나갔다. 그 애는 나의 트라우마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런 나의 뒤통수에 대고 그 애는 말했다. 


“예민하게 굴지 말고, 화 풀어. 잘 지내보자”


나는 그 말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착한 아이 증후군에 걸린 것처럼 나는 매몰차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나는 힘겹게 한 마디 얘기했다.


“아니. 굳이.”


그리고 난 내 방으로 향했다. 그것은 반년 간 시달림을 극복해 나간 첫걸음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내 기분을 추스르고 조금 더 당당하게 나갈 필요를 느꼈다. 과거의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 뻔뻔해질 필요. 그리고 노력에 노력을 했고, 다른 반 친구들 앞에서 그 애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뻔뻔함을 갖출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그 애를 마주한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너의 그 뻔뻔함이, 내가 ‘뻔뻔한 가면’을 만들어야겠다는 첫 결심을 만들어주었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발 그 못된 심보 고쳐먹어. 

그리고 아직까지도 난 네가 싫어. 다신 마주치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부터 돌아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