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종사가 아닌 ‘팔로워’다.

미 해군함장 데이비드 마르케의 리더-리더 모형을 중심으로

by 남국의 기장




비행기는 두 사람이 함께 조종하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한 사람만 남겨두는가?




권위 대신 분산된 리더십이 만드는 안전


한국의 조종실은 군대와 비슷한 곳이다. 기장은 ‘절대적 권위자‘, 부기장은 ’보조자’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특히 위험이 항상 따르는 일을 하는 곳에서는 “명령하고 따르는 구조”가 효율적일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럴까?




핵잠수함에서 일어난 혁명


데이비드 마르케(David Marquet) 전 미 해군 잠수함장은 <Turn the ship Around>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원자력 핵 잠수함 산타페호의 지휘를 맡았을 때, 기존의 리더-팔로워(Leader-Follower) 방식에서 벗어나 리더-리더(Leader-Leader) 방식을 도입했다. 처음엔 상명하복 체계가 당연해 보였다. 핵 잠수함처럼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곳에서, “위에서 명령하고 아래에서 복종하는 구조”가 더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였다. 명령만 따르는 부하들은 스스로 사고하지 않았고, 이는 더 큰 위험으로 이어졌다. 반면, 승무원 각자가 책임과 권한을 가진 리더로 행동했을 때, 잠수함의 안전성과 승무원들의 능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조종실은 핵 잠수함과 다르지 않다.


조종실 역시 고도의 전문성과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한국의 조종실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기장은 지시하고, 부기장은 따르는 구조. 부기장은 항공기 속도가 낮아지는 위험을 봐도 “기장님, Speed...”라며 완곡어법으로 표현한다. 이마저도 상황을 인지하고 몇 초가 흐른 뒤이다. 위험이 눈앞에 있어도, 권위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위험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순간, 이미 사고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부기장의 문제가 아니다. 권위적인 문화가 부기장을 ’팔로워‘로만 남겨두기 때문이다.




리더-리더 모형이 조종실에 주는 의미


미 핵 잠수함에서 검증된 리더-리더 방식은 조종실에서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기장과 부기장이 동등한 리더로서 서로를 검증하고 권위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 아래, 누구든 즉시 위험을 말할 수 있는 심리적 분위기. 기장 혼자서 명령하는 구조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 책임하에 임무를 나누는 구조.

조종실 본질은 ‘두 사람이 함께 항공기를 안전하게 조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장은 조종하고 부기장은 돕기만 한다면, 이미 조종실의 기본 설계 취지를 잃어버린 셈이다.




권위주의를 넘어서야 안전하다.


인재로 인한 항공사 사고 보고서를 보면, 반복되는 원인이 하나 있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직접적으로 위험을 전달하지 못했다.’ 이는 훈련이나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문제이다.

데이비드 마르케의 리더-리더 모형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조종실에도 두 명의 리더가 있어야 한다.’ (두 명의 PIC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적 상하 구조 대신, 두 명 모두가 동등한 리더라는 인식이 안전을 보장한다.

미 해군 핵 잠수함에서도 권위주의는 최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종실이라고 다를 이유가 있을까?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리더와 리더가 함께 책임지는 조종실. 그것이 한국 항공의 안전을 한 단계 높이는 길이다.




비행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엔진 고장이 아니라, 내가 침묵할 때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마르케(2020), 턴어라운드(Turn the ship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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