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교류모델 이론을 중심으로
항공 안전에서 조종사 간 협업은 가장 기본적이며 동시에 가장 정교한 의사소통 과정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조종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고도의 워크로드, 시간 압박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자주 왜곡되고, 때로는 심각한 오류로 이어진다. Katherine Hampsten의 “How miscommunication happens (and how to avoid it)”은 이러한 조종실 내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녀가 제시한 “의미의 상호 형성”이라는 관점은, 왜 경험 많은 조종사들조차 서로 명확한 의도를 전달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Katherine Hampsten의 핵심 개념은 의사소통을 “전달”이 아닌 “상호교류(Transactional)”로 보는 것이다. 조종사 A가 한 말을 조종사 B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지식, 나이, 인종, 성별, 생각, 감정, 경험, 민족, 종교 그리고 가정환경 등의 ‘인지적 필터’를 통과하며 의미가 변형된다. 이 과정을 “점토를 주고받는 과정”에 비유한다. 내가 전달한 점토는 상대가 잡는 순간 이미 형태가 달라진다.
조종실에서도 이 점토의 변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기장이 “이 접근 절차로 비행해도 괜찮겠지?”라고 말했을 때, 본래 의도는 ‘위험 요소가 없는지 함께 검토하자’ 일 수 있다. 그러나 부기장은 이를 “허락을 구하지 말고 따라오기만 해라”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같은 문장이지만, 서로 다른 점토가 되어 손에 쥐어진다. 이 작은 오해는 위험 인식 부족, 교차확인 실패, 또는 부기장의 소극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한 인지 필터를 가지고 있으며, 이 필터가 우리가 듣는 방식과 해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조종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필터가 특히 강하게 작용한다.
경력 차이: 비행시간의 격차는 자신감과 회피 행동 모두를 강화한다.
상황 압박: 기상, ATC 지시, 워크로드 증가 등은 듣기와 해석의 정밀도를 떨어뜨린다.
관계와 권위 구조: 기장에게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권위주의 문화는 인지필터를 더 두껍게 만든다.
체력 및 심리 상태: 피로와 스트레스는 단어의 의미를 왜곡되게 듣게 한다.
즉, 조종사는 서로의 말 자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터로 ‘해석된 버전’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는 Katherine Hampsten의 이론이 조종실 상황에서 더욱 중요하게 적용되는 이유다.
Miscommunication은 단순히 잘못 듣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추론하거나, 상대의 의도를 가정하는 데서도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부기장이 “속도가 좀 빠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 이는 단순한 관찰일 수 있다. 그러나 기장은 이를 “비판” 또는 “조종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부기장은 기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장이 괜찮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추정하고 행동을 멈춰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추론 기반 오해는 조종사 간 관계와 팀워크에 미묘한 긴장을 만들며,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에는 침묵과 각자의 판단 오차로 이어진다. 이는 명확한 소통이 아니라 두 사람의 필터가 만들어낸 ‘환상적 합의’이다.
상호교류모델 이론은 조종사 간 의사소통 오류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의미 확인 과정”을 습관화하기
조종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내가 말하려는 의도는 이것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하고 있나?”
“지금 네가 이해한 내용은 이거 맞지?”
“혹시 다르게 들렸으면 말해줘.”
이 과정은 단순한 read-back을 넘어 의도와 의미를 확인하는 활동이다. 특히, Takeoff 브리핑이나 Approach 브리핑 시 혼자 말하며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과의 상호교류가 필요하다.
각자의 인지 필터가 다름을 인정하기
조종사는 서로의 배경, 감정 상태, 경험 차이가 메시지 왜곡의 주요 원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상호 이해의 기초’라고 한다.
조종실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문화가 필요하다.
경험 차이에 대한 이해
권위와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에 대한 자각
배경, 감정, 피로, 스트레스가 소통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공유
서로의 필터를 이해하는 순간, 동일한 메시지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상대 의도를 추정하는 행동 줄이기
“기장이 이렇게 말했으니,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부기장이 침묵하니 동의한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소통 오류의 핵심이다. 조종실에서는 침묵, 모호한 긍정, 단답형 반응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명확한 상호 피드백으로 대체해야 한다.
상호작용적 소통 모델을 CRM 교육에 포함시키기
CRM은 전통적으로 팀워크·리더십·의사결정에 초점을 두어 왔지만, Katherine Hampsten의 상호교류모델을 추가하면 조종사 CRM교육은 한층 발전할 수 있다.
소통을 단방향이 아닌 상호작용으로 이해하기
동일한 문장이 각자에게 다르게 들릴 수 있음을 이해하기
모호한 발언, 완곡한 표현, 질문하기 등의 소통 방식은 지향하기
즉, 조종사 훈련은 단순히 “올바른 말하기”가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까지 이해하는 소통 훈련”이 되어야 한다.
Katherine Hampsten의 miscommunication 상호교류모델 이론은 조종사 간의 의사소통 오류를 기존 CRM 관점보다 더 깊이 있게 설명한다. 조종실의 소통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인지필터와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상호작용”이다. 조종사들은 말의 정확성만큼이나 의미의 일치를 중요하게 다뤄야 하며, 이를 위해 스스로의 인지 필터를 자각하고 상대의 해석 가능성을 고려하는 소통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결국 항공 안전은 기술과 절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탑승객의 안전은 조종석에서 형성되는 작지만 결정적인 ‘의미의 정렬’ 위에 놓여 있다.
추측은 소통의 환상을 낳고, 확인은 비행의 안전을 낳는다.
참고문헌
Hampsten, Katherine. How miscommunication happens (and how to avoid it). TE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