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상상은 그 자체가 독약이다

오셀로_윌리엄 셰익스피어

by 가가책방
오셀로.JPG


처음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읽을 때는 알지 못했다.

언젠가 그 비극을 읽으며 이런 기분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는 걸.


"이 비극의 결말을 조금도 바꾸어 놓을 있는 힘이 없음은 크나큰 무력감을 안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나 역시 비슷한 비극을 거듭해 왔음을 깨달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처참한 비극인가?"

"아아, 이 얼마나 흔하게 벌어지는 참혹한 비극인가!?"


언제였을까?

'보통의 독서'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보통의 독서'란 간단히 말하면 "그 정도 책들은 중고등학교 때 다 읽지 않아?"하고 생각했던 목록에 들어가는 책들에 관한 생각이었다. 수능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매 시험 때마다 지문에서 한두 번씩은 봤을 단골 작품들 정도는 읽어보지 않는가 하는 거였다. 하지만 무수한 기대가 빗나간 것처럼 이런 생각 역시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을 뿐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그 정도 책은 읽었지?"하는 식으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이야기들에 관해 묻거나 이야기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책들은 '아직 읽지 않은 책' 목록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보통의 독서' 혹은 '보편 수준의 독서'란 없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부터 적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오셀로> 역시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노파심에서다. 단지 교과서나, 해설에서 접한 단편적인 정보로 <오셀로>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거다.

어쩐지 희곡은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건 핑계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줄 테니 시험해보기를.

간단하다.

누가 하는 대사인지 생각하지 말고 소설을 읽듯이 읽어 보자.

주석이나 해설이 달려있는 부분이 나와도 건너뛰자.

어설프게라도 장면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읽어보자. 누가 등장하고 퇴장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한 편의 연극을 본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일단 이 세 가지 방법을 써보고, 그래도 힘들면 그때는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아직 <오셀로>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아, 그렇다.

내게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서도 오셀로만큼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사람과 사람의 시기와 질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며, 진실이 거짓에 처참하게 패배하는 이야기.

사랑이 의심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가 바로 <오셀로>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무력하다. 등장인물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수도 없고, 그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더라도 그 비극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운명을 바꿀 수 없음보다 독자를 더 커다란 슬픔에 빠뜨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어느 날인가 비슷한 비극의 주연을 맡았던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비극 속의 주인공은 남이 아닌 자신이 된다. 오해와 의심, 질투와 복수에 눈이 멀어 바로 눈 앞에 있는 진실과 진심, 사랑을 보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게 되는 거다.

그런 이유일 것이다.

거의 모든 비극이, 거의 모든 희극보다 더 오래 기억되고 사랑받게 되는 이유 말이다.


무어인인 오셀로는 자신의 과거와 삶을 통해 지고지순한 사랑과 순정의 상징인 데스데모나의 완전한 사랑을 얻는다. 그러나 '완전함'은 언제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비록 그 질투가 현실의 비극을 부르는 계기가 사랑과 무관한 다른 것이라고 해도 '완전함'을 무너뜨리기 위해 활약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질투와 의심의 화신의 이름은 이아고다. 겉으로는 선한 사람, 정직한 이로 가장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지극히 악랄하고도 악독한 마음이 들어앉아 있다. 그는 무지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다.

무지와 순수의 거리는 몹시 가까워서 종종 하나의 올가미에 함께 걸려 스스로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오셀로의 두려움과 의심이 그러했고, 데스데모나의 순진함이 그러했다.


이아고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부관으로 선택한 오셀로를 몹시 미워한다. 그리고 오셀로가 자신의 아내와 잠자리를 가졌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지금부터 벌이려는 모든 일은 '정당한 복수'이자 '권리의 행사'라고 말이다. 마치 자신처럼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속이지 않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아고는 오셀로의 의심을 키우고 질투에 눈이 멀도록 부추긴다. 오셀로는 이아고가 진실하고 성실하며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토록 간단히 의심할 수 있었으면서 이아고에 대한 신뢰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말은 결코 모순되기만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고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더 희귀하고 이상한 존재가 된다. 믿음과 기대를 저버렸다는 배신감, 언제나 자신을 압박해왔던 자격지심의 역습이 그의 사랑이 질투로 흔들리게 만들고, 믿음이 의심이 되게 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완벽한 비극으로 끝이 난다. 모두가 단순히 '죽는 것'이 결말이라면 사실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그들을 그냥 죽이지 않는다. '모든 진실을 밝힌 후'에 죽게 한다. 후회와 절망 속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절망이 극에 달한 순간에 죽음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아고는 자신이 꾸미는 일이 비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그러한 행위가 '악행'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계획을 진행시키고, 저질러 버린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이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그 일을 행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악이라는 것을 알고도 그곳에 발을 들이고 손을 물들이는 것일까? 이해할 수가 없다.


오셀로의 의심과 불신, 질투 역시 납득할 수는 있지만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을 향한 열렬하고도 순수한 사랑을 고수하는 데스데모나의 모든 행동이 '의심'이라는 필터 하나를 통해 정반대로 해석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악을 꾀한 것은 분명 이아고다. 그러나 악을 행한 것은 오셀로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에 필요한 것이 사랑뿐이라는 생각은 정말 옳은 것일까?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느 날 질투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비극은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의 삶, 인생은 세상의 모든 인연을 거부하고 거절하던 사람의 마음까지 열게 만들 수 있다. 구혼자들의 모든 청을 물리쳤던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는 마음을 허락한 것이 그러하다.

또한 자신을 통해 사랑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일깨운다.

오직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해석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나를 통해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나의 내면의 모습에 따라 굴절되고 왜곡되기 쉽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의 정숙하고 진실된 태도들을 기만과 거짓으로 해석하게 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의심과 불신 그리고 불안을 통해 데스데모나를 바라봤기 때문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셀로>를 마지막으로 <햄릿>, <리어왕>, <맥베스>까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한번씩 더 읽었다.

어쩐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극보다 비극에서 더 많은 것이 깨달아지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이 쓸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너무 많은 순간에 나는 나의 판단과 해석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생각이 닫혀버리면 다시 열어 고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과연 앞으로도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많은 진실을 보고 더 깊은 진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닫힌 마음을 다시 열어둬야 하는 것 아닐까?


오셀로는 무어인, 흑인이었다.

그의 비극의 시작은 그가 무어인이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무어인이란 누구인가?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나만 적기로 한다.

이 시대의 무어인이란 '이상한 사람'이다. 보편적 판단이나 가치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생각이나 행동이 기이한 사람들. 자신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두루 일컫는 데 쓰일 수 있는 표현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그들은 때로 뛰어난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미움을 사기도 하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경계하라.

믿어도 되는 사람과 믿어서는 안 될 사람을 바로 볼 수 있는 현명함을 늘 구하라.

경솔히 하나의 말이나 생각에 휘둘리지 말라.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사람을 믿으라.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당신은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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