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_F. 스콧 피츠제럴드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강연이라고 하면 언제나 듣는 입장이었던 제가 처음으로 강연이라는 걸 하고 돌아온 거죠. 대학생 시절 과제 발표 경험을 빼면 누구 앞에 서 본 적이 없던 제게 강연을 한다는 건 대단히 막연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기에는 나 자신이 여전히 부족하기에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오는 것에 집중하자고요.
강연 장소는 대구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신도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아직까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고, 내비게이션으로도 찾아갈 수 없더군요. 작은 도서관의 이름은 오르비 은빛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작은 도서관의 이름을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예요.
서울에서 동대구까지는 KTX를 이용했습니다. 내려가면서도 계속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고 정리하기를 반복했죠. 몇 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해야 할 것에 대비해 종이 한 장에 이야기할 내용을 미리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동대구역에서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서 이동을 하면서부터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서 생각해야지.'하고 생각해버린 거죠.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강연에는 모두 여섯 명의 듣는 이가 자리를 해주셨어요. 여섯 명, 무척 적은 수라고 해야겠지요. 그래도 강연인데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상태에 있었으며, 그 어느 때보다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여섯 명이라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죠.
첫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개츠비의 줄거리부터 이야기했죠.
『위대한 개츠비』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자 아주 여러 번 읽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건 처음에 읽었을 때는 개츠비가 위대하기는커녕 너무 허무한 이야기라서 실망을 했어요. 왜 꼭 '데이지'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죠.
개츠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아주 커다란 성공을 이룰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관리하고, 공부를 했지요. 우연히 광산 개발을 통해 억만장자가 된 '댄 코디'를 만나면서 개츠비의 운명은 크게 달라집니다. 금방이라도 자신이 꿈꾸던 성공을 붙잡을 수 있을 것처럼 여기죠. 하지만 이러한 꿈은 댄 코디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좌절됩니다.
군대에 입대한 개츠비는 캠프에서 생활하는 동안 데이지를 알게 됩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자신이 꿈꾸는 여자, 자기의 미래에 어울리는 완전한 여자라고 생각하죠. 개츠비에게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게 하는 완전한 미소라는 무기가 있었는데 이 무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에 빠뜨립니다. 물론, 자신 역시 빠져들죠. 전쟁이 확대되면서 개츠비는 전장으로 불려 갑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금방 돌아오지 못하게 되죠. 데이지는 개츠비를 마지막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톰 뷰 캐넌이라는 부유한 상속자와 결혼을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와 데이지가 헤어진 후 5년째 되는 해 여름을 배경으로 합니다. 5년 동안 개츠비는 완벽하게 달라집니다. 거대한 저택을 소유한 신흥 부자가 되어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어 수많은 유명인들을 초대하죠. 사실 이 파티의 목적은 데이지와 다시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명인들이라면 누구든 몰려오는 파티였기에 한 번은 찾아올지 모를 데이지를 기다렸던 거죠. 하지만 데이지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츠비는 이 이야기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에게 부탁하게 됩니다. 티타임에 초대해 달라고요. 그렇게 해서 개츠비와 데이지는 헤어진 지 5년 만에 캐러웨이의 집에서 재회합니다.
재회에서 3개월의 시간이 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이 됩니다. 개츠비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츠비의 운명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궁금하다면 두 번은 꼭 읽어보세요. 한 번으로는 저처럼 허무함만을 느낄지 모르니까요.
강연의 주제는 '이해'와 '인문학'이었습니다. 개츠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사람들을 이해시키지 못한 개츠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그런데 준비해 간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걸린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았어요. 허둥지둥 이야기하다 보니 빼먹거나 건너뛴 것이 적지 않았고, 말하는 속도도 너무 빨랐기에 1시간 동안 천천히 생각하며 이야기할 것을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말해버린 거였죠.
솔직히 조금 많이 당황했습니다. 초대해주신 관장님이 잠깐 쉬었다가 할까 하고 물었을 정도로요. 쉬어 가자고 해놓고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화두를 던져주시면 거기에 말을 더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죠.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쩐지 어렵고, 딱딱하고, 심각해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인문학의 진짜 정체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을 했고, 역사를 기록하고 분석했으며, 문학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했던 거라고요. 인문학을 학문으로 만들어 버린 건 학자연하는 훌륭하신 지식인들인데 이들이 바라는 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외와 존경을 얻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위대한 개츠비』는 인문학입니다. 문학 가운데서도 시간을 넘어 널리 읽히고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이기에 인문학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이해할 수 없는 개츠비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인간과 이해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개츠비가 좇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사람들이 좇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삶은 그들이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말해줍니다. 동시에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어떤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인지 묻습니다. 더하여 지금의 자기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개츠비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모습은 몹시 다르지만 대단히 닮아 있습니다. 물질과 황금만능에 휩쓸려 자아를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모습, 낯이 익지요.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느라 상대방의 마음이나 생각을 외면하는 일도 흔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강연에 오셨던 한 어머니의 얘기처럼 작은 아이와 늘 충돌하는 이유도 서로 자기 생각으로 상대를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나이가 더 많은,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의 경험이 미숙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양적인 격차가 명확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면 더욱더 그렇겠죠. 하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적다고 해서 자기 생각이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네'라고 대답하는 자녀가 더 많은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을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죠.
작은 아이의 이야기를 해주신 어머니의 이야기에 한참 감동했는데, 그 이유는 이 강연을 통해 자녀가 생각하는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얘기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해, 부모와 자식 사이라고 해도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노력한다면 분명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그런 시작, 시작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분 앞에서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는지.
서로 자기 경험과 그 경험에서 느낀 것을 나누는 동안 40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고, 가슴 벅찬 순간의 연속이었어요.
강연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후에 느낀 건 커다란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감동을 느낀 이유는 스스로의 강연이 만족스러워서도 훌륭했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다시 떠올려보면 별 것 없는 내용에, 두서도 분명치 않아서 제대로 붙잡히지도 않았죠.
저를 감동시킨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추어 보고 거기서 일어나는 반응을 다시 들려주는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진심. 제가 한 말, 부여한 해석에 의미를 더해 자기만의 결론에 닿는 모습이 모두 감동이 되어 돌아오는 걸 느꼈어요.
새삼스럽게 모든 깨달음이 자기 안에서 온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저는 그저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이고, 생각을 달리하게 되거나, 무엇인가를 깨달았다고 느끼는 건 모두가 자기 안에서 움튼 거라는 거죠. 생각으로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거죠. 그런 깨달음이야 말로 진짜 깨달음이 아닐까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깨달음이지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건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요. 아무리 좋은 강연, 훌륭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해도 단지 그것만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무엇도 자신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경험을 내 안의 생각과 경험에 비추어 보는 과정을 통해 얻은 깨달음만이 진짜가 되어 마음에 남는 거죠.
강연에 오신 분들이 가장 좋아했던 부분을 소개하면서 후기이자 감상을 마치기로 할게요.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건 이해하는 것 이상의 친근한 미소였다. 일생에서 몇 번 경험하기 어려운, 영원한 확신을 약속하는 듯한 그런 보기 드문 미소였다. 순간 적으로 영원의 세계와 마주했다가 - 혹은 마주한 듯 보였다가는 - 곧 거부할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담아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그런 미소. 또한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 당신을 이해하고 있으며,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 싶은 만큼 당신을 믿고 있으며,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만큼 최고의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확신시켜 주는 그런 미소였다.
『위대한 개츠비』중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미소를 본 적이나, 잘 보이고 싶은 상대방이 내가 잘 보이고자 하는 만큼 최고의 인상을 받았다고 확신시켜 준 그런 경험이요.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그런 미소를 보여주는 이와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요. 개츠비는 그런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몰입이 가능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개츠비는 자신의 이상에도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상의 모습처럼 되어주기를 바랐죠. 물론 그런 바람이 비극의 원인이 되지만, 그의 위대함의 근원이 되기도 하기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습니다. 사람과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고 느끼니까요. 그렇게 적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모르는 것이 늘어나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진다고 느끼죠.
무엇을 알았다고 느끼기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매번 확인하곤 합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요.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기에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할 수 있고, 결론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해도 인문학도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들여다봐요, 우리. 나만 생각하지 말고, 너도 생각하고, 우리도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조차도, 아주 조금은 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