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축하며 죽고 싶다

고슴도치의 우아함_뮈리엘 바르베리

by 가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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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고슴도치.

위험하다 싶으면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가시 속으로 숨는 동물.

강력한 동시에 겁이 많고, 여리고 또 연약한 내면의 소유자라는 모순.

고슴도치는 그 자체로도 인간을 닮았다.


가시로 자신을 보호하는 동안 자신 또한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속수무책의 난감함.

결국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존재와 만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거다. 그러나 이 외로움이나 고독이 쓸쓸하기만 하다거나 나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기회비용, 평안의 대가로 지불한 소통이라는 정당한 선택이자 포기이기 때문이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의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27세 때부터 27년 간 그르넬 가 7번지의 고급 아파트의 수위로 일하고 있는 54세의 과부 르네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아파트에 사는 12세의 천재 소녀 팔로마다. 이 책의 제목과 두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서 눈치챘겠지만 이 두 사람은 고슴도치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진정한 자신을 숨기고 감추며 살아가는 그런 존재 말이다.


르네는 학교와의 인연은 짧았지만 스스로 읽고 사색하며 지식을 쌓고 사고를 확장해왔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진면목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은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며, 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팔로마는 뛰어난 두뇌와 관찰력을 통해 너무 일찍 세상에 질려버렸다. 더 살아봐야 별 의미가 없을 것이기에 13세가 되는 6월에는 자살할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자살하는 날,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르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계기가 없었다면 영원히 서로의 진면목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였다. 한 사람은 그렇게 나이 들어 죽었을 것이고, 또 한 사람은 6월에 자살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운명은 두 사람을 마주치게 한다. 그리고 서로를 '발견'하게 한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지만 너무 익숙한 모습을 한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게 되는 거다.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나이를 초월한 이해와 공감을 그리고 있다. 삶을 포기했던 이가,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했던 사람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결심하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였다.


팔로마의 자살 결심과 계획은 파괴적이고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죽으면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슬퍼해줄 거라는 유아적인 환상에서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 증거가 이것이다.


"나는 구축하면서 죽고 싶다."


단순히 파괴적인 죽음은 무엇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팔로마는 '구축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죽음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만들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거다.

그 구축의 과정 가운데 하나가 '깊은 사색'이다. 사물이나 현상, 사람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거다.

깊은 사색 가운데 한 가지를 적어본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을 살피고 저 너머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하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색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확신하는 것 너머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만남을 단념했다는 것, 이 영원한 거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자신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팔로마의 이러한 사색은 기억 전달자를 떠올리게 한다. 기억 보유자와 기억 전달자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저 너머'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 보유자뿐이다. 그들은 익숙한 것, 확신했던 것들의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 즉, 진실을 간파하는 눈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실을 간파하는 눈을 지녔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확신했던 것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과정을 견딜 수 있는 강하고 유연한 정신과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팔로마와 르네 역시 자신들의 확신 너머를 볼 수 있는 눈과 그 너머에 있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강하고 유연한 정신과 마음의 소유자였다.


이 두 사람이 내게는 '진주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진주의 아름다움은 그 광택이나 빛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진주를 만들어내는 동안 고통과 아픔을 견뎌낸 조개의 인내와 끈기에 있는 거다. 진주는 빛나는 결과물이지만 그것은 진주조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진주조개가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진주는 조개의 죽음 뒤에 출현한다.

사람에게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주의 가치에 빠져있는 자들이다. 조개의 고통과 아픔은 그런 결과물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것'일뿐이다. 당연히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도저히 정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 어떤 고통도 당연할 수는 없는 거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재밌는 부분이 여럿 숨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거다.

모든 형태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문학의 임무는 생존에 필수적인 의무를 실행하는 일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이다.

만약 이 말이 진리라면, 문학이 그 가치를 잃고 사람들과 멀어진 이 시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것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더 이상 문학이 없어도 사람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의무를 실행하는 일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오락과 즐거움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지금 이 시대에는 생존해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다고 하지만 이미 죽은 상태, 마치 좀비의 세계나 다름없는 '죽음이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거다.

어느 쪽이라고 믿고 싶은가?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진정한 의미로.


르네와 팔로마는 '저 너머'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완벽한 건 아니다. 르네는 한 순간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를 잘 보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정말 잘 보고 있는 걸까?

세상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진실인 걸까?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눈이 머리에 딱 붙어 있기 때문에 시야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요해지는 것이 거울이다.

르네와 팔로마의 경우에는 영혼의 자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는 서로의 눈이 그 거울이 되어준다. 팔로마는 르네에게서 자신의 삶을 계속해 나갈 의미를 발견하고, 르네는 팔로마에게서 자신을 옭아매고 속박하던 과거의 사슬을 끊어낼 힘을 얻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로를 비춰본 다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팔로마가 깨닫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는 모두가 잊고 지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 인생에 도래할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환상을 늘 품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결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통제되지 않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타오른다. 처음에는 가까운 사람들을 탓하고, 세상을 비난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하다는 믿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빚어내는 비극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의 무엇도 결정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모든 순간, 언제나 변화한다.


세계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서 자존감을 높이는 비법을 내놓고 팔아댄다. 자존감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처럼 선전한다. 그러나 자존감은 무엇으로 높아지는지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를 품으면 자존감이 높아질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기심은 무엇도 높일 수 없다.

자존감은 진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혼자서는 키울 수 없는 것이다. 자존감은 공감의 문제이자 이해의 문제다. 한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또 다른 존재가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자존감은 그 무엇도 파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세상도, 자신도 말이다.


우아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겉보기에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작은 고슴도치' 같은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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