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얼굴들』
세상에는 배우려는 사람은 적었으되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많았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것까지 억지로 가르쳐놓고는 의문이 생겼을 즈음에는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나버리기도 했다.
무책임한 자들이다.
무책임한 가짜 스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연히 만난 선비(先非) 씨는 100%의 스승이었다.
절반 넘게 비어있는 나를 채워 선비(先非) 씨처럼 되고 싶었다.
선비(先非) 씨에게 배운 첫 번째 이해 실험을 실행하던 날, 세상에 그런 재미난 구경거리는 처음 봤다는 듯 박장대소했다. 선비(先非) 씨가 말이다.
"이게 다 선비(先非) 씨가 가르쳐준 거란 말입니다!"
"내가 말이오? 설마, 그럴 리가. 허허헣하하하핳."
나는 선비(先非) 씨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려 보라며 거듭 얘기했다.
"그러니까, 그날 말입니다. 선비(先非) 씨가 '내가 이상해 보이오?'하고 물었던 그날요!"
"그날 선비(先非) 씨도 너무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너무너무 천천히 걸으면서 어울리지 않게 너무너무너무 힘차게 팔을 흔들고 있지 않았냐는 말입니다!"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이보시오, 내가 이상해 보이오?'했잖아요!"
그 말을 들은 선비(先非) 씨는 이제는 넘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자기는 그런 적 없다고, 앞으로도 오늘처럼 가만히 있어도 말라죽을 것 같은 날에는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딴에는 그랬다.
선비(先非) 씨가 천천히 걸으며, 힘차게 팔을 흔들던 날은 오늘만큼 덥지는 않았다.
비웃으면 비웃을수록 오기가 솟았다.
기어코 실행한 선비(先非) 씨의 실험은 대단히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것이었음에도 기이한 활기를 경험하게 했다.
선비(先非) 씨의 웃음,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멀어지며 느낀 무아의 경지, 본능적인 자기이해의 순간이었다.
선비(先非) 씨는 '앞뒤로 팔 흔들기 실험'을 부정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뒤로 팔 흔들기 실험'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선비(先非) 씨는 스승이라거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실천하듯 가르쳐놓고는 가르치지 않은 것으로 해버림으로써 나의 깨달음에서 자기를 비워버린 거였다.
악착같은 인간보다 만사를 내려놓은 인간이 다루기 어려운 법이다.
세상이 자꾸만 뭔가를 좇거나 추구하게 만들고, 이루지 못했거나 포기한 이들을 나무라며 독려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가 '세상'이라고 말하는 생물은 적절한 통제가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믿는다.
통제는 통일을 통해 단순해져서 점점 더 수월해진다.
일정 수준까지 단순해진 인간은 한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 안정이 깨지는 건 세상이 추구하는 수준보다 더 단순해지는 순간이다.
자기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세상'은 그동안 억눌렀던 다양성을 한 순간에 풀어버린다.
인간은 두려움, 공포, 기대, 광기에 저마다를 맡겨버리고 결국은 혼란에 빠진다.
혼란이 언제 끝날지는 혼란을 일으킨 세상도 혼란에 빠진 인간도 알지 못한다.
다만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며 혼란 뒤에 다시 안정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이 인간의 역사라는 것 이외다.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기에 통제하는 것도 통제당하기만 하는 것도 아닌 묘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거지요."
이해 실험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처음으로 물었던 날이었다.
무심히 하늘을 보며 '비가 오려나 봅니다.'하는 식으로 선비(先非) 씨는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흘려냈다.
너무 지나듯 한 말이라 재차 확인해 물었더니 이번에는 '비는 착각이었나 봅니다.'하는 식으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눈으로 빙글 웃어버렸다.
선비(先非) 씨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자기와 자기 행동을 부정하면서도 그 행동에 어색함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 후에는 마주 웃고 말았다.
선비(先非) 씨를 만나기 전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어른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세상을 알만큼은 살았다고 생각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는 옛말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경험은 얼마쯤 해봤다고 자신했다.
배움과 경험은 무엇을 낳았을까?
발전이었을까?
희망이었을까?
기쁨이었을까?
야망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삼십 몇 해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단념과 포기의 효과였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아는가?
며칠을 굶어 배가 고팠던 여우가, 나무 높이 달린 포도를 보며, '나는 먹을 수가 없구나'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저 포도는 신포도일 거야'하고 생각해버린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여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 포도는 실제로도, 정말로, 먹을 수 있었다고 해도, 대단히 신포도였을 거라고 믿었다.
여우는 현명했다.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포도에 미련을 남기거나 애써 따먹어보려 노력하지 않음으로써 다음 장소에서는 더 나은 먹이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후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 수도 있다.
여우가 굶어 죽었다면, 죽어가면서 먹지 못한 신포도를 생각했을까?
아닐 거다.
아무 생각도 없었거나, 생전에 정말 맛있게 먹었던 토끼 고기 따위를 생각했겠지.
나는 이 포기와 단념이 합리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합리화면 어떤가, 그 결과가 합리화하지 않은 결과보다 나를 더 불행하게 했다는 걸 누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 포기와 단념의 합리화에 대한 결론은 모두 거짓이었다.
말끔한 이해로 포장된 오해의 아류였다.
나는 그런 내 삶을 포기라고 불렀던 거다.
스스로를 조롱하는 의미를 담아 오래 그렇게 자신을 비난해 왔던 거다.
선비(先非) 씨의 '힘차게 팔 흔들기 실험'에서 느꼈던 흥겨움의 정체는 자기 부정 너머에 있던 나의 재발견이었다.
오래전에 굶어 죽은 줄만 알았던 자기만족이 내 안에 남아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몇 번인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다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
몇 번인 가는 이제는 조금은 알게 됐다고 생각하던 순간도 있었다.
언제나 다음 순간에 그런 생각은 깨어졌고 뒤집혔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고, 세상은 언제나 저만치서 개미 따위를 내려다보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다음에는 어떻게 괴롭혀볼까를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였다.
나는 세상이든 사람이든 무엇을 이해하는 걸 완전히 포기했다.
어쩌면 어른이 되기를 단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열세 살.
나는 자라지 않았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미리 알려주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이해'는 평화로운 경지가 아니다.
이해에는 폭력과 함께 공포도 담겨있다.
한쪽이 무참하게 부서질수록 이해는 완벽해진다.
어린아이가 철드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만큼의 공포와 마주해야 함을 직감으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철드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운 이유는 아이가 겪었을 두려움을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몰이해의 평화가 아무리 말끔해 보인다고 해도 언제까지나 아류의 이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자라고 싶다고 바라 왔다.
나는 자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선비(先非) 씨를 만난 건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 믿음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우연이란 결국 무수한 선택이 만들어낸 필연이다.
나는 나를 선택했다.
선비(先非) 씨와의 만남이 그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