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얼굴들』
선비(先非) 씨는 스승이라거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묻지도 않은 걸 선비(先非) 씨는 알려주었다.
오래전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고 다닐 때가 있었다고.
지금까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될 수 없을 것 같아, 이제는 오기로라도 듣지 않겠다고 말이다.
참 묘한 것까지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다.
선비(先非) 씨는 그런 사람이다.
덧붙이기를 언젠가 내가 쓰는 글에 자기가 등장하게 된다면, 꼭 '선비'라는 한글 뒤에 '先非'라는 한자를 적어달라고 했다.
오해에는 익숙하고, 오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줄일 수 있다면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말이다.
오해란 혼돈 혹은 혼란, 있어 보이는 말로는 '카오스'의 시작이고, 세계의 엔트로피를 급격히 증가시켜 어지럽게 만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해의 극단에서 벌어지는 전쟁 역시 이해의 문제라고도 했다. 理解(이해)가 아니고 利害(이해)지만, 이해의 문제인 건 사실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선비(先非) 씨의 말에 나는 거듭 이 말만 되뇌었다.
"예."
"예, 그럼요."
"예, 그렇죠."
그때의 내가 이해(理解)하고 대답을 한 건지, 이해(利害)를 따져 대답을 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이해했다는 거다. 어느 쪽으로든지.
엉뚱하고 이상했지만 선비(先非) 씨는 까다로운 스승은 아니었다.
가르침을 빙자해 이상한 짓을 시키기도 했지만 한 번도 강요하지는 않았다.
강요가 오해를 일으킨다면서 말이다.
아무리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강요하기 시작하면 없던 오해도 생겨나는 법이라는 거였다.
지극히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쓸데없는 헛소리 같기도 한 말이었다.
돌아보면 선비(先非) 씨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다 너를 위한 거야."
"너 좋으라고 하는 거다."
이런 말들은 결국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나는 잘해줬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오해 속에서 이해에 닿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번도 오해 밖으로 나오지 못했으면서 그 오해 때문에 오히려 굳건한 자기 확신을 갖게 된 사람들이었다.
처음 선비(先非) 씨를 대하던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날까지 나는 내가 선한 줄 알았다.
나는 내가 착한 줄 알았다.
나는 내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정말, 내가 정말 그랬다.
나중 일이지만 선비(先非) 씨는 처음 길에서 나를 보던 날, 내가 세상을 지독하게 오해하고 있음을 이해했다고 말해주었다.
선비(先非) 씨는 내가 천천히 걸으면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줄 거라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걸 모른 척하고 있었다고 했다.
별나고 이상해 보이는 선비(先非) 씨만 신경 쓰고 있었다고 했다.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눈에 띄거나, 마음에 걸리거나, 미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정말, 내가 정말, 그랬다.
선비(先非) 씨의 말은 조금의 틀림도 없이 나를 이해한 자리에서 나왔다.
선비(先非) 씨는 다만 말해주었다.
나의 잘못이라거나, 고쳐야 한다거나,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비(先非) 씨는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강요는 이해를 해치고 오해를 살찌운다고 했다.
이 말들, 깨달음들은 모두 나중의 일이다.
나는 조금 전에야 선비(先非) 씨를 만났다.
방금 전에야 첫 번째 이해 실험을 받았다.
실험 대상은 나다.
실험 제목은 '앞뒤로 팔 흔들기'.
검증할 효과는 기분이 좋아지는 결과다.
부작용 혹은 주의 사항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인간으로 보일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거다.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자연스럽고 쉬웠던 것이 다른 순간에는 몹시 곤란하고 힘겨운 일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파 속에서 크게 팔을 흔들며 걷는 간단한 동작을 한다는 건 조금도 간단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팔을 흔들며 걷기 시작한 순간 일말의 흥겨움마저 느꼈다는 점이다.
어깨춤과는 다르지만, 웬만한 거리는 가뿐히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기운을 느꼈다.
선비(先非) 씨는 이 기운을 '본능적인 자기 이해'라고 불렀다.
멋진 말로 바꿔 적으면 '무아의 경지'정도가 될까.
자기 자신의 행동을 세상이라는 잣대로 재고 판단하는 것을 그치는 순간, 힘차게 팔을 흔드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한 순간에 얽매였던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말이다.
힘차게 흔드는 팔, 그 팔의 움직임을 따라 저절로 힘을 얻는 발걸음이 인식의 사슬을 끊고 나아가게 한다고 말이다.
선비(先非) 씨는 힘차게 팔을 흔드는 행위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미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본능적인 자기 이해'의 경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 기운을 북돋을 줄 알고, 간단히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움받는 것보다 솔직하지 못한 것을 더 힘들어하고, 상처받는 것보다 상처 주는 것을 더 아파한다고 말이다.
선비(先非) 씨의 그 말은 어쩐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 후로 힘차게 팔을 흔들며 가는 사람을 길에서 보게 되는 날에는 언제나 소리 죽여 울어야 했을 만큼 말이다.
오랜 시간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오해했다.
그들이 느꼈을 이상한 즐거움을 거짓이라고, 가짜라고, 꾸며낸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아픔을 건너기 위해서는 본래의 내 것보다 더 커다란 힘을 필요로 한다.
주변에서 받는 힘은 이 아픔을 건너는 데에는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한다.
이 아픔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건너야만 한다는 거다.
그 순간이 바로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걸어야 할 때다.
선비(先非) 씨는 단지 힘차게 팔을 흔드는 실험만으로 '본능적인 자기 이해'와 함께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만 하는 아픔의 순간이 있음을 이해시켰다.
나는 선비(先非) 씨의 아픔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선비(先非) 씨는 나의 모든 아픔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선비(先非) 씨의 힘차게 팔 흔들며 걷기 실험은 나를 오랜 아픔에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의 세계가 부서지고,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을 맞이하는 첫걸음을 떼었다.
선비(先非) 씨는 나의 스승이자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