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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Oct 20. 2016

고양이의 혓바닥은 고양이의 혓바닥이다.

이사카 코타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종종 고양이는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이야기되곤 합니다. 왜 그런지 알지 못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고양이의 지구를 초월한 태평함과 도도함, 은근히 퍼져 나오는 캣므파탈적인 기이한 마력 같은 것들이 외계 생명체 논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웃자고 한 이야기니, 죽자고 덤벼들지는 말아주세요.


 서점에 들를 때면 종종 보게 됐고 그때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던 책을 우연한 기회에 선물 받게 됐습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한참이나 묵혀두면 미안하기도 하고, 오래 망설였던 책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하여 읽어봤지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제 취향이 아닌 건 아니었는데 '정말 웃기다'는 아니었어요. 코미디라고 해서 엄청 웃길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가 코미디여야 한다면 아주 농도 짙은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 겁니다. 큰 웃음보다는 쓴웃음을 더 자주 지었으니까요.


 코미디라고 하기엔 대단히 진지하고, 날카롭게 세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표현도 많았습니다. 전체 이야기는 평범한 정도였다면 이 문장들은 정말 두고두고 기억할만한 것이었어요.

 평소와는 다르게 이 책의 감상은 그 문장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짧은 감상이 될 테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인간이 개를 죽이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개한테 물려 죽는 사람을 보는 편이 낫죠."구온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中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선물해 준 사람이 좋아한다고 말한 문장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려 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이제는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요.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예전에는 '개를 죽이는 장면'을 많이 봤습니다. 그때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던 거라 별 생각이 없었지요. 동물의 권리니, 학대니 하는 것도 몰랐고요. 문화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 '개를 잡는 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문화란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기에 먹을 것이 얼마든지 있는 지금에는 지양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미지근하고 어중간한 태도라고 비난받을지도 모르지만,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판단의 문제라기보다 '꼭 그래야 하는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거죠. 학대받고, 비정상적으로 사육되는 환경은 두 말할 것 없이 분명한 '악'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앞서 적은 '구온'의 말, '인간이 개를 죽이는 장면'보다 '개한테 물려 죽는 사람을 보는 편이 낫'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군요.


 "죽어 마땅한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 나한테는 더 공포지." 나루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말만 거창하게 하는 정치가가, 나라의 경기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잘리지도 않고 질기게 붙어 있는 걸 보면, 그쪽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야. 칼에 찔려 죽은 시체는 그에 비하면 심플하지."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中

그렇게 유능하고, 똑똑하고,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이들이 유난히 정치를 시작하기만 하면 갑자기 무능하고, 미련하고, 엉뚱해지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다를 게 없는 모양입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 나한테는 더 공포'라는 말이 도무지 남의 이야기라고,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니까요. 선하게 살면 선하게 살수록 손해가 된다는 세상, 무능이 유능이 되는 기이한 세계, '칼에 찔려 죽은 시체'는 원인과 결과가 명백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명료한 것입니다. 명료한 것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되지 못하지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두렵고, 무서운 법이니까요. 정말, 세상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너무나 많군요.


작업이 있을 때마다 자기가 차를 조달하는 입장이었던 만큼 자신의 차도 혹시 도둑맞지는 않을까 신경 쓰였다. '사람을 보면 곧 도둑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은 분명 도둑들이 고안해낸 말일 것이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中

유사한 표현으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과 '거짓말쟁이는 세상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도둑이 제 발 저리고, 제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본다고 합니다. 똥 묻은 놈이 재묻은 놈에게 성낸다고도 하고요. 분명 웃음이 나오기는 했는데, 이번 웃음도 쓴웃음이었습니다.


구온은 예전에 "인간의 최대 단점 중 하나는 '분수를 모른다는 점'이에요, 동물은 그런 일이 없지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미치를 보면 그 말이 딱 맞는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中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주인공이 되는 갱단의 구성원은 평범하면서 특이한데, 다들 하나같이 세상을 관통하는 주의나 주장, 자기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보통이 아닙니다. 흔히 갱이라고 하면 죄를 짓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파괴적이거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들은 그렇지도 않지요. 오히려 평화적인, 지극히 보수적인 인간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역시 옳은 소리를 합니다. 동물은 분수를 모르고 까부는 일이 없지요.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천지 분별 못하는 것들이나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거니까요. 


 "나는 거짓말하기 싫어. 뭐, 귀찮기도 하고." 말하는 중간에 나루세의 얼굴이 떠오른다. "금세 탄로 나거든."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中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라고 해도 좋을 표현입니다. "나는 거짓말하기 싫어", "금세 탄로 나거든."하는 부분이요. 저 역시 거짓말하기를 싫어합니다. 거짓말을 시키는 사람도 몹시 싫어하고, 그런 이유에서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적지 않았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예정이라 생각하니 조금 괴로워지고 말았네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죠. 당연합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데 세상이 내게 진실할 거라고 믿는다면 순진하다고 놀림을 받게 되겠지요. 때로 거짓말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이 제멋대로 내뱉음으로써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무안하고 힘들더라도 되도록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 더 괴로워지고 말 테니까요.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게 싫고 또 귀찮아서라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이유죠. 

 일단 거짓말을 시작하면 자꾸 변명을 해야 합니다. 변명을 하다 보면 스스로가 구차해지고, 떳떳할 수 없기에 더욱더 비참해집니다. 비참해지기 싫으면 솔직히 이야기하고 사과를 하면 될 텐데, 이 사과가 받아들여질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 갈 데까지 우기고 가는 일이 종종 생기죠. 결말은 물론 보통의 경우에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대단히 괴롭고 또 귀찮죠. 

 이러한 이유들에서라도 역시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세상에 이롭다는 겁니다.


  잠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줄거리를 얘기하면, 주인공들은 종종 은행을 터는 갱스터입니다. 카페 주인부터 백수까지 다양한 구성을 갖춘 소수 정예죠. 이 사람들은 털 은행이 정해지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은행을 털고, 돈을 나눠가진 뒤 자기들 마음대로 씁니다. 정말 평화로운 갱들이죠. 욕심을 부릴 만도 한데 그런 일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몫을 잘 챙겨서, 즐겁게 쓰면 그만인 태평한 갱단인 겁니다. 이야기는 이들이 다시 은행을 털기로 하면서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사건은 은행을 털고 난 후에 시작되고요. 

 유심히 살펴볼 장면은 은행을 터는 과정입니다. 아주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이론과 실전이 융합된 '기술'을 이들은 사용합니다. 도주에 있어서도 프로고요. 앞에서 몇 문장쯤 발췌해서 적었지만, 중간중간 툭툭 던지는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표현들은 가슴을 뜨끔하게 하기도 하고, 시원하게 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가 시원하게 느껴졌어요. 너무 죽이지도, 아주 안 죽이지도 않으면서 균형을 잃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작가의 유쾌함을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갱단의 일원인 나루세는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죠. 어떤 사람이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을 때 나루세는 그 말이나 행동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나름의 요령이 있겠지만 분명 타고난 재주라고 할 수 있죠. 

 한 번도 거짓말에 속은 적 없는 사람과 한 번도 거짓말이 탄로 난 적이 없는 사람이 대결을 한다면 어느 쪽이 이길까요? 창과 방패의 모순인가요. 한 번도 속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없고, 한 번도 탄로 난 적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없을 테니까요. 이 이야기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아주 심각한 모순을 감추고 있습니다. 

 

 숨은 모순 찾기를 하며 읽어보면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줄 겁니다. 

혹시라도 영원히 탄로 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해도, 우리 거짓말은 하지 맙시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옹호하기도 하는데, 솔직히는 하얀 거짓말 역시 결국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에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실에, 진실로, 진심에 진심으로 거짓 없는 마음들이 더 자주 재회하고 기뻐하기를 바라봅니다.


아, 제목의 고양이 혓바닥 얘기를 보태자면, 고양이 혓바닥은 까끌까끌해서 강아지 혓바닥과 확실히 구분이 됩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는 건 고양이 혓바닥을 강아지 혓바닥이라고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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