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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Dec 27. 2016

꿈과 사랑의 교차점에서 만나다.

그리고 꿈과 사랑의 교차점에서 헤어지다.

극장에서 두 번 본 영화는 오랜만입니다. 

<라라 랜드>가 두 번 본 영화 목록에 들어갔다는 얘기죠.


 LALALAND에서 LA하나는 미국의 도시 Los Angeles의 LA일 텐데, 다른 LA는 뭔지 모르겠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마지막 LAND는 뭐, LAND겠죠. 무대 정도의 의미일까요. 슬쩍 몇몇 리뷰를 보니 누구는 '꿈'이라 하고 누구는 '사랑'이라 하고 '마법'이라고 한 이들도 있더군요. 다들 다르게 말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게 담긴 영화이기에 누가 더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네, LALALAND는 꿈과 사랑 이야기가 마법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펼쳐집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마법'에 빠졌다고 느끼듯 신비롭고 운명적인 경험을 하는 거죠. 


 주요 내용은 배우를 꿈꾸는 한 여자와 재즈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꿈입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지, 꿈을 이루게 되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되겠죠.


 LALALAND를 두 번째 보고 난 다음 날에 문득 이 영화의 정체성,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되는 걸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느꼈죠. 


 이제는, 누구나 꿈을 꾼다고 말할 수 없게 됐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꿈을 꾸고(미래뿐 아니라 진실한 사랑도 꿈꾸고), 사랑을 찾아다닙니다. LALALAND 속 주인공들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 혹은 두세 번, 혹은 매번 '운명'이라 느끼는 사랑과 만나게 됩니다. LALALAND 속 주인공들도 그랬고요. 

 

 중요한 건 이 '만남' 자체가 아닙니다. 이 만남이 이루어진 순간에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거죠. 

여 주인공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거지?"

세바스찬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처음 LALALAND를 봤을 때 미아가 던진 질문의 의미는 '우리 잘 지내고 있는 걸까?'하는 단순한 관계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지만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건, 모든 연인, 사랑, 관계가 그렇듯 모든 만남은 삶의 종착지가 아닌 교차점에서 일어난다는 데 생각이 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차점'.

LALALAND 테마곡 'City Of Stars'에서 '도시의 빛, 너는 나만을 위해 빛나는가'하는 물음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뿜어내는 무수한 빛들이 어느 순간, 어떤 지점에서 교차하는 운명적인 만남을 노래함과 동시에 도시의 화려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된 밤하늘의 더 밝고 커다란 빛을 일깨우죠. 하지만 그 빛은 영원하지 않고, 교차의 순간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과 그 순간이 영원하지 않더라도 별과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합니다.


 어떤 만남은 한 사람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 만남이 꿈을 이루는가 이루지 못하는가를 결정짓기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만남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더라도 그 만남의 영향력은 영원합니다. 그 만남은 기억 속에서, 꿈 안에서 영원히 나만을 위해 빛날 테니까요.


 세상은 말 그대로 거대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너무나 많죠. 오늘 하루 지나친 사람들만 해도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될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 중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테죠. 마치 꿈처럼, 마법처럼 그렇게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우리 삶이 아직은 종착지에 닿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종착'은 말 그대로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나아갈 필요도 없는 '끝'이니까요. 좋은 말로는 '완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변화의 여지, 가능성이 없기에 더 이상 빛나지 않는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나아가는 사람만이 '교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됩니다. 교차하는 순간에만 우리는 '만남'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꿈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도 꿈을 이루는 '확실하고도 완전한 방법'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혹은 두 걸음쯤은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한동안 동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허락된다면 제법 오래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 '허락'은 신이나 운명의 허가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닙니다. 서로의 '꿈'이 허락한다면 이라는 거죠.


 LALALAND에서 저는 제게 필요한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 계발서에서 쉬지 않고 외치는 그 말이었죠.

"할 수 있어!" 

"너라면! 너니까! 너 아니면 누가!"


 사랑이죠. 

세바스찬의 그 말은 사랑이었습니다. 

꿈을 부정하지 않는, 의심하지 않는 그 단호한 말들이야말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란 로맨틱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말하고 그리듯 나만을 위해 빛나는 별, 누군가와의 만남 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또한 사랑이란 어디서든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하는 그만을 위해 빛나는 별이 '되어주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흔히 꿈을 태양에 비유하죠. 

꿈 앞에 자신을 세우는 건 태양 앞에 달이나 지구를 두는 것과 같아서 그림자를 만들게 됩니다. 그림자는 주변 혹은 세상을 가리고, 어둡게 만들죠. 때로는 정말 소중한 것조차 볼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눈이 먼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늘의 별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나만을 위해 빛나는 별'

그가 있는 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LALALAND는 어쩌면 진부한 사랑, 꿈은 이루어진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들과 닮은꼴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 빛나는 별'과 만나는 일, '누군가를 위해 빛나는 별'이 되어주는 일.

삶의 종착지에 닿기 전에 한 번은 이루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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