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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an 05. 2017

그 길었던 나의 '여린 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린 시절'의 잘못이 아니라 '여린 시절'이라고 적은 게 맞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_청민

 민들레 홀씨는 어느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든 노여움도 슬퍼함도 없이 날아오릅니다. 

북풍이 분다고 시리다 말하지 않고, 남풍이 분다고 덥다 불평하지 않으며, 서풍이 분다고 서러워하는 일도 없습니다. 태풍 조차 민들레 홀씨를 두렵게 하지 못하죠. 

  까닭은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모든 민들레 홀씨는 날아 올라야 하고, 모든 바람은 날게 할 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상은 적지 않고 민들레 홀씨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의 작가와 책 속 이야기들이 민들레 홀씨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죠. 왜냐고 묻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이유도 적어 두기로 합니다.

 작가 청민은 민들레 홀씨를 닮았습니다. 가볍고, 여리지만 충분히 고집스러우며, 잔 바람에도 흩어지는 민들레 홀씨처럼 민감하고 섬세하죠. 하지만 마음껏 날아오를 용기를 내기도 하는데, 그건 민들레 홀씨가 날아오를 하늘만큼이나 내려앉을 수 있는 넓은 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친 새가 날개를 쉬어갈 둥지의 존재를 아는 것처럼 말이죠.

 고작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라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읽은 작가 청민은 '혼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봅시다. 민들레 홀씨는 날아오르기 전까지 무수한 '가족'과 함께 합니다. 하지만 날아오르는 순간부터는 오롯이 혼자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이죠. 그러나 마침내 땅에 내려 싹을 틔울 때가 되면 다시 혼자가 아니게 됩니다. 혼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괜스레 앞에 말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를 읽는 동안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여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모두와 함께였던 시간의 그 넉넉하고도 여유로운 마음이 그리워졌던 거죠. 

 '어린 시절'을 잘못 적은 게 아닙니다. '여린 시절'이라 적은 게 맞습니다. 

 제게도 당연히 여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묘한 일이죠. 스물몇 살, 한참이나 어린아이의 글을 읽으며 오래된 시간을 그리워하게 되는 일이 생기다니 말입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라는 제목과 핑크빛 표지를 보고 처음에는 애틋하거나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어보니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 대상에 대한 예상은 한참이나 빗나가 있더군요. 가족과 친구와 지난 추억을 향한 애틋한 마음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책의 주연이었습니다. 


 오래전 '여린 마음'을 잃어버린 후로는 무덤덤하게 넘겼던 감정의 조각들조차 청민은 닦고, 모아,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로 묶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두 마음 사이를 오갔는데, 하나는 낯간지럽다고 느끼는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사람과 사랑을 신뢰하고 기대하는 모습에 대한 부러움이었습니다. 

 그 연약하고도 섬세한 마음이 오래오래 지켜지기를, 마지막 잎새라도 지켜보듯한 마음으로 읽고, 또 읽을 수밖에 없었죠. 

 저는 이런 마음들을 '고운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여린 마음'과 비슷한 의미인데, '고운 마음'은 '여린 마음'이 단단해지고, 상처가 시간이 지나며 흉터가 된 후에도 망가지지 않고 온전한 상태를 이를 때 씁니다. 

 한참 겨울이 깊어지는 이 날에, 이 밤에, 시간이 지나도 고운 마음이 온전하기를 빌게 되는 그런 따뜻한 온기가 담긴 이야기와 만나다니 이것도 나름의 인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온기'라고 해야겠습니다. 수식어가 허락된다면 '고운 온기'라고 하고요. 

 잃어버리고 나서야 존재를 알게 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여린 마음'도 한 때는 치기라고, 순진함이라고 얼른 내려놓고 싶었던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랬건만 이제는 그리워하고 있으니 웃을 수도 없습니다.


 옛날 옛날의 말, 고리타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만 더 적기로 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많은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을 충분히 느끼세요. 모든 순간이 우리의 삶이며, 모든 순간이 삶의 의미일 테니까요.


 어울리지 않게, 감상적인 걸 써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이 역시 이 책이 남긴 흔적이 되겠지요. 또 이것은 이것대로 좋지 아니한가 합니다. 잠시나마 잃어버린 여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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