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력
얼굴에 열이 오른다. 뒷머리에서 관자놀이로 묵직한 압박감이 뒤따른다. 이마에 땀이 난다. 위로 짐작되는 부분에서 신호를 보낸다. ‘나는 지금 막혀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다. 답답함, 거북함이라고 할 수 있는 울렁임을 자각한다. 이윽고 이상의 정보를 종합한 결과를 뇌가 내놓는다.
‘체함.’
폐가 공기를 들이 마시고 입을 벌림과 동시에 혀가 첫 음을 낼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 폐에서 나온 공기가 성대를 울리며 이런 소리를 만들어 낸다.
“아, 저 체했어요.”
이제 일행도 상황을 알게 됐다. 반사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습관을 드러낸다. 습관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행동, 표정, 말은 가장 흔히 보게 되는 낯익은 얼굴이다.
첫 번째 얼굴이 말한다.
“약을 먹는 게 어때요?”
공인, 검증된 해결 방식의 제안이다. 합리적이다.
약의 효과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의지하기를 즐기지 않기에 받아두기는 하되 실행은 미룬다.
두 번째 얼굴은 소리 내지 않는다.
굳이 해석하자면, ‘저런’ 정도일까.
초면일 때 흔히 드러나는 태도다. 신중하다.
세 번째 얼굴은 말한다.
“괜찮으세요?”
사실 괜찮지 않다. 그러나 ‘괜찮으세요?’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다. 가장 무난하고, 적절한 예의를 차린 말이다. 예의바르다.
네 번째 얼굴은 행동으로 옮길 기세다.
자신의 대학 때 별칭 ‘체내리미’를 언급하며, 곧 시도할 예정이었던(실제로는 이미 실행하고 있었던) 손 마사지를 해줄 기세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확신을 갖고 있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말에도 한 번 더 ‘체내리미’의 능력을 어필한다. 곤란에 빠진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한다. 해결사다.
체했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손가락을 따서 나쁜 피를 빼내는 민간 요법의 빨강이다. 뾰족한 침이나 피에 공포증이 있는 사람, 통증에 민감한 사람은 시도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방법이다.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보다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아귀를 지압하는 처방이 권할만 하다. 통증은 있을 수 있지만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침의 오염 등으로 인한 이차 감염의 염려도 없다. 손 힘이 약할 때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지압을 부탁할 구실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이 찬스!’ 물론, 농담이다. 눈치 없이 굴었다가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으니 주의.
충분한 손가락 힘을 지녔으므로 지압을 시작한다.
꾹꾹, 꾹꾹 누르기도 하고, 꾸욱꾸욱 힘주어 누르며 밀어주기도 한다. 안쪽으로 눌렀다가 바깥쪽으로 누르기를 번갈아 거듭한다.
땀이 마르고, 위가 가벼워져 간다. 가벼운 트림이 나온다. 속이 편해진다. 빠른 효과가 가져다 준 안도와 만족을 음미한다.
편안해 졌으니 다시 먹는다. 끝.
문득 묻는다.
‘인간을 회복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앞서 살펴본 ‘급체의 경우’를 들여다 보자.
첫째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용’이다. 이상이 발생했음에도 부정하고, 달리 해석하며, 해결을 미루거나 처방을 거부하는 일이 흔하다. ‘센 척’이라고 쓰고 ‘무지’라고 해석할 수 있는 태도다. 조금 낮추어 적으면 ‘무식’이 될까.
문제를 인정할 때 우리는 처음으로 문제의 실체와 대면하게 된다. 대면하게 된 문제는 윤곽을 드러내기 마련이고 드러난 윤곽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수용은 굴복이나 패배가 아니다. 극복이자 안녕으로 통하는 바른 길이다.
둘째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기 신뢰’로 적을 수 있겠다. 신화 속 주인공 피그말리온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굳은 믿음이 일단의 성공, 성과를 만들어낸 경험 하나나 둘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리라.
‘자기 신뢰’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망상과는 다르다. 객관적인 기준, 경험을 토대로 이끌어낸 합리적인 결론이다.
지금까지 모든 경우에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도, 이번이 첫 번째 성공이 되지 못할 거라 지레 짐작할 필요는 없다. ‘자기 신뢰’는 실행을 부른다. 실행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멀고도, 어렵다.
셋째는 능력이다. 타고났거나 연마된 손 힘은 능력의 하나다. 손 힘이 없는 사람은 문제 해결을 포기해야 하는걸까?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므로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연함도 능력이다. ‘전화위복’이란 이러한 사고의 유연함이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능력’을 일신상의 소유로 한정짓지 않는 게 중요하다.
문제를 인지, 수용하고 경험을 통해 회복될 거라는 자기 신뢰를 견지하며, 적당한 손 힘이라는 능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급체 후 1시간 50분, 완전한 회복을 선언한다.
자기 회복력에 의지해 해결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상의 과정의 응용으로 해소 가능하다. 이 방식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만났다면, 책, 전문가, 의사를 이용하기를 권한다.
이상은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의 인정, 합리적 이성이 겸비된 겸손이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을 기준으로 서술했음을 밝힌다.
회복력, 단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