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년을 축하하며.
잔치의 흥이 식기 전에 남기는 기록.
모임 한 줄 평 :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잘 놀 수 있다. 덧붙이자면 책으로도 얼마든지 잘 놀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그레아블이라는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3년 전이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 선뜻 참여하지 못하고 1년 넘는 시간을 보냈다. 계기가 필요했다. 방아쇠를 당기게 할 강렬한 빛이.
그리고, 빛이 비쳤다. 2017년 4월, 사랑하는 작가 조지 오웰 작품을 파고들어 읽는다는 공지로.
만족스러운 첫 모임이었다.
"아, 이토록 많은 이들이 조지 오웰을 사랑하고 있었다니."
그 후 한 동안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에 빠져 지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이사까지 해서 멀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해 겨울부터 발길이 뜸해지고 말았다.
보라는 듯 5주년을 기념한다는 공지가 떴다. 나도 봤다. 두 번째 방아쇠를 당길 또 다른 빛이었다.
이토록 감정적으로 후기를 쓰게 되는 건 감정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감정을 뒤흔드는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해하리라. 한 번 요동친 감정은 쏟아내기 전에는 쉽사리 잠잠해지지 않음을.
설렘이라고 해도 좋을 즐거움, 서로가 다름을 알면서도 책을 매개로 흥겹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감정의 정체는 분명 설렘이었다. 한 동안 잊고 지낸 설렘이 돌아오는 기분이란.
자, 조금 진정해볼까.
처음 독서 모임을 찾아가던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내 경우 크게 두 가지였다. 호기심과 한계.
혼자 책을 읽는 데에 한계를 느꼈다. 지속하기의 한계, 지식과 인식, 깨달음의 한계,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한계 등 자꾸만 한계점들이 증식하는 거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떤 책들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계속해나가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한계가 먼저였는지 호기심이 먼저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그동안의 태도와 방식을 뒤집을 만큼 두 가지가 컸다는 거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닮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책을 좋아해서 독서 모임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이란.
나는 독서가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정할 수도 있다. 독서는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무언가를 시도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많은 것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의 인생조차 바꿔놓을 정도로.
모임을 주최하거나 유지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저절로 잘 되는 모임은 없다. 그 잘 됨이 지속되기는 더 어렵다. 1, 2년도 어렵지만 4, 5년은 몇 배나 어렵다. 아그레아블 5주년을 축하하고,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오감의 취향,
오감은 다섯 가지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5 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오고 감', 다르게 말해 소통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취향이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라 읽는 책도, 읽는 방법도, 읽고 난 후의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취향이 오고 가는 공간, 시간이 바로 독서 모임이 아닐까.
터닝포인트.
오, 다섯은 한 손의 손가락 숫자와 같다. 다섯까지는 한 손으로 셀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여섯을 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접었던 손가락을 펴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다른 손을 더하는 방법도 있다. 한 사람에게 열 개의 손가락이 있으니 열까지는 셀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열하나를 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찬가지다. 접었던 손가락을 펴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손을 더하는 방법도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모임이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식으로 무한히 많은 숫자를 셀 수 있다고 해도 그건 모임에 맞는 방법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면 저절로 더 많은 숫자를 셀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왔다 가고 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인이 적었듯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오감이란 그런 거다. 오고 감이란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이다.
책을 문자로, 해석으로 즐기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노력하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끌어 모으는 게 얼마든 가능하다. 하지만 의사소통에서 문자는 단지 7% 정도의 비중밖에 갖지 못함을 기억해야 한다. 현장에서, 마주한 상태에서의 생각, 의지, 주의와 주장을 접하는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책을 읽는 사람, 책을 즐겨 읽는 사람, 어쩐지 언제나 책을 읽는 듯 보이는 사람들을 책상물림이니, 나약한 서생이니 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이라면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책을 읽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책은 재밌다. 책 자체로도 재밌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더 재밌다.
앞으로의 모임에서 나는 오감을 끊임없이 재해석해보고 싶다.
내가 느낄 수 있는 한계를 조금 더 탐구하고 싶다.
아그레아블 5주년, <오감의 취향>. 흥겨웠다.
때때로 살아 있는 화석이 된 기분을 느낀다. 책을 읽는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해지곤 한다. 책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 공감을 얻고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 들에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운영하는 이의 고민이 깊고, 길수록 참여하는 이의 즐거움은 커진다.
고마움을 전한다.
흥겨움을 기억하려고 시작한 후기 건만 쓰는 도중에 태반은 잊어버리고 결국 앞뒤 없이 혼란한 일기를 적고 말았다. 그런 들 어떠할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기억 속 즐거움이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닌데.
가까운 날에, 다시 찾아야겠다.
이번에는 읽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서로의 책 장 사이를 오가는 시간으로.
오감, 참 좋은 말이었구나.
아그레아블 5주년 모임에서 받은 굿즈들.
노트, 볼펜 3자루, 배고픔을 달래줄 케이크(여기 없는 이유란), 피츠제럴드 책갈피, 나보코프 책갈피.
우연이겠지만 모임에 가면서 읽은 책이 <두 해 여름>인데, 이 책은 에리크 오르세나가 쓴 번역가 질 샤인의 실화 소설. 작품 속에서 질과 섬사람들이 번역하는 책이 번역가들 사이에서 까다롭기로 악명 높았던 나보코프의 <에이더>라는. 이 책도 재밌게 읽었다.
북클럽, 독서 모임에 관심이 있다면 >> www.agreableb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