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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Jul 30. 2018

[북리뷰] 이야기는 섬에서 불어온다

굴드의 물고기 책 & 두 해 여름

두 권의 책을 함께 빌렸고, 정말 오랜만에 밀리는 일 없이 나란히 읽기를 마쳤다.

<굴드의 물고기 책>, <두 해 여름>이 짝꿍이다.


<두 해 여름>을 먼저 읽었는데, 마지막까지 특별히 메모를 하거나 페이지를 적지 않게 됐다. 한 권만 읽었더라면 짧게 적은 리뷰만 남기고 망각의 저편으로 떠나보낼 거였다. 우연히 <굴드의 물고기 책>을 함께 읽게 된 건 필연이었다. <굴드의 물고기 책>은 여러 페이지를 적어뒀고, 한 군데 오타도 찾았다. 뭐, 별 건 아니고.


 짤막하게 책 소개를 하기로 하자.

<두 해 여름>은 번역가의 이야기다. 실존 인물 질 샤인의 실화를 거의 그대로 옮겼다. 보통 죽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해온 질은 좋은 말로는 여유가 있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싶을 때 작업하는 편인 것. 파리에 살다가 절친한 친구, 시인 장 콕토를 잃고 추억이 고통이 되는 파리를 떠나 정착지를 찾던 중 한 섬을 발견한다. 이 섬은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한 사람들이, 환경이 만든 특별한 전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작고, 얕고, 조용한 섬이다. 참고로 높은 언덕이 해발 26미터란다. 마흔일곱 마리의 고양이와 섬에 정착한 번역가는 고액 수표와 함께 한 소설의 번역 의뢰를 받는다. 게으름에 따르기 마련인 궁핍함은 이 번역가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반가운 마음에 수락을 하지만 수락한 직후 번역가는 아차! 하고 만다. 번역해야 할 소설의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였던 것. 나보코프는 이미 오래전부터 번역가들 사이에서 악명을 드높이 떨치고 있었더란다. 그러나 우리의 번역가도 만만치 않았다. 겨울에는 번역할 수 없는 작품이어서, 아직은 하고 싶지 않아서 라며 3년 5개월을 미루고 미룬다. 그러나 마침내 그날이 오고 말았으니, 원고 소식이 없는 번역가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거다. 번역가가 전전긍긍하던 그 순간, 생텍쥐페리의 손녀가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던 것. 그렇게 제목 속 두 해 여름이 시작된다. 섬사람들 모두가 나보코프의 소설 번역에 매달렸던 두 해 여름의 이야기가. 그들은 무사히 번역을 마치고, 나보코프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에 원고를 넘길 수 있을까? 주요 관전 포인트다.


 <굴드의 물고기 책>은 한 위조범의 이야기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범죄를 저질러 유형에 처한 윌리엄 뷜로 굴드가 주인공이다. <두 해 여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인물의 실존 여부와 남겨진 '물고기 책'을 제외한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채운 허구라는 거다. 실제로 그랬거나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수는 있지만 확신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것. 이야기는 복잡하지만 줄거리는 단순하다. 영국은 범죄자와 문제아들을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라 불리는 섬에 유형을 보냈다. 윌리엄 뷜로 굴드도 그중 하나. 운이 좋았는지 굴드는 얼마쯤 그림 솜씨를 갖추고 있었는데 우연히 명예욕에 불타는 의사의 눈에 들어 물고기 그림을 그릴 것을 지시받게 된다. 처음에 굴드는 그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물고기를 그리게 된다. 어떤 인물을 만나고 나면 어떤 물고기가 그려지고, 또 다른 인물을 만나고 나면 다른 물고기를 완성하는 식이다. 사람은 둘 이상 모이면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야심에 불타는 이들이 몇 있었다. 개중에는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명예욕에 불타는 사람, 권력에 심취한 사람, 자신의 입맛대로 역사를 남기고자 하는 사람, 그 안에서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학대와 피학대, 복종과 굴종,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물고 물린다. 원주민을 학살하는 백인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백인을 죽이려 드는 원주민들, 백인이 옮겨온 바이러스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무수한 생명들의 이야기. 우여곡절을 겪으며 굴드는 물고기 그림을 하나씩 하나씩 완성해 간다.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된 <물고기 책>이 굴드가 그렸다고 하는 물고기 그림이다. 굴드가 바라는 건 하나다. 생존, 삶. 유형지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 굴드의 물고기 그림은 텍스트가 빠진 증언이다. 물고기의 눈빛, 시선, 색깔, 특징들이 당대 상황, 역사를 증언한다.


 두 작품 모두 섬이 배경이다. 하지만 하나는 실화, 다른 하나는 허구라는 결정적 차이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름다운 전통과 협업의 기적, 열정과 평화를 담았고 다른 하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인간의 절박함, 치열함과 비열함, 잔인함과 거짓됨을 담았다. 기묘하다.

 공통점도 있다. 두 작품 모두 무언가 혹은 어떤 과정을 기록하고 증언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거다. 하나는 아름답고 완성도 높은 번역을 위한 하나 된 노력의 과정을, 다른 하나는 식민지의 잔혹한 역사와 그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비참함을.


 두 작품을 연속으로 읽으며 남긴 메모가 한 줄 있는데 그대로 적어보겠다.


영국, 너란 나라 얼마나 막돼먹은 거니, 소설마다 욕이 써 있네.


<두 해 여름>에서는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섬을 영국 군함이 '소탕'이라는 명분을 위해 종종 침범해왔던 모양이다. 영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프랑스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를 시원치 않게 여기는 부분이 나온다. 이 인식을 역전시킨 계기가 번역가가 내놓은 하나의 비유였다. 타국의 언어를 번역하는 번역가를 사나포선(지나가는 타국의 배를 빼앗아 승무원은 바다에 내던지고 배를 빼았았던 배) 선장에 비유한 거다. 쉽게 말해 고상한 척하는 영국의 작품을 모국어의 입맛에 맛게 갈아치워 버리는 사람이 번역가라는 이야기다.

 번역가의 이야기를 번역한 <두 해 여름>의 이세욱 번역가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몹시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굴드의 물고기 책>은 영국을 따로 욕할 필요가 없다. 제국주의 선봉에 서서 자기들 배가 닿는 해안, 섬, 나라는 다 자기 땅이라고 깃발을 꽂고 다니며, 원주민들은 죽이거나 팔아치우던 게 영국이기에. 그 악독함을 달리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욕먹을만하다며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줄거리를 너무 길게 써버리는 바람에 다른 이야기를 적어볼 여력을 낭비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쓰는 이의 입맛에도 맞지 않고, 읽는 이는 더더욱 감질날 반쪽짜리 리뷰가 하나 더 세상에 나와 버린 셈이다.


 두 소설은 몹시 다르지만 모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제시하며, 생각해볼 문제를 던지고, 이야기 전개와 구성도 흥미진진하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굴드의 물고기 책>은 추리소설도 아닌데 '어랏!' 하게 만드는 약간의 반전 요소까지 숨겨져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으니 재미는 확실히 느낀 셈이다.

 

 <두 해 여름> 본문에서는 오탈자를 찾지 못했으나 온라인 서점 책 소개에서는 잘못된 설명을 발견하기도 했다. 질 샤인은 섬으로 이사를 하면서 고양이들을 데리고 온다. 그 수가 하나나 둘이 아니라 몹시 많다. 이 녀석들을 다 먹여 살리려면 돈을 많이 벌었어야 했겠구나, 그러니 고액의 수표가 따라온 번역 일을 마다할 수 없었겠구나 하고 간단히 수긍할 정도로 고양이가 많았다.


 책 소개에서는 정말 당당히 숫자로 '17마리의 고양이'라고 적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 몇 마리인지는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거다. 편집자는 여러 모로 조심해야 할 일이 많다. 본문에 오타가 없다고 안심할 일이 아닌 거다. 나 같은 인간도 있기 마련이니까.


 두 권 다 빌려서 읽었지만 욕심을 조금 내보면 사두고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싶어 진다. 매번 책장을 줄이겠다, 책을 빼겠다고 하면서 사고 싶다, 갖고 싶다는 책이 줄지를 않으니 입만 산 물고기와 다를 게 뭔가.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름다움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는 비극으로 독자의 마음과 기억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새기게 된다. 줄거리는 잊히더라도 느낌은 남기 마련이고, 느낌이 남아 있는 한 언제든 다시 읽고 싶어 지면 다시 이야기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음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많은 이야기들이 섬을 배경으로 하거나 섬에서 쓰였다.

섬에 이야기 소재가 많았기 때문인지, 섬 특유의 고립과 단절이라는 환경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다양한 요인의 조합과 조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섬이 있어서 이야기가 더 많아진 거라면 섬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섬이라면 책은 잠시 나에게 정박했다 떠나가는 이방 땅의 배다. 내게 필요한 것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았던 병이나 상처,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오랜 시간 여러 배가 드나들다 보니 배가 안전히 쉬어갈 자리도 많이 생기고, 항구라고 할만한 교류의 공간도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책, 너는 내게 도도히 밀려오라. 쉴 만큼 쉬며 때로는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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