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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Sep 17. 2018

[북리뷰] 단편이 길을 잃으면 독자는 미아가 된다

같은 작가, 엇갈린 평가. 무엇이 달랐나? 비교해서 읽기.


 ‘나’라는 한 사람의 독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는다. 최은영 작가의 신작 <내게 무해한 사람>은 전작 <쇼코의 미소>에 비해 몹시 실망스러웠다. 현실감이 옅었기 때문이다. 전작 <쇼코의 미소>가 멀게 느꼈던 세계의 이야기를 ‘나의 현실’로 가져왔다면, <내게 무해한 사람>은 ‘우리 현실’ 속 이야기를 먼 과거, 남의 이야기로 떨어뜨려 놓았다고 느꼈던 거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첫째로 작가와 소재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작가 자신의 경험과는 먼 이야기를 뉴스와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체화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성 소수자의 사랑이야기, 받아들여지지 않은 커밍 아웃의 비극적 결말, 시대착오적 남아선호, 남이나 다름 없이 해체된 가족, 지역 감정과 성차별. 소설집에 담긴 소설들의 주제 모두가 뉴스를 비롯한 미디어와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 문제 제기 되는 소위 민감한 이슈다. 하지만 이슈의 민감성에 비해 작가의 전개 방식, 소재를 대하는 태도는 안일했다. 우리 사회에 10년 혹은 그 이전에나 통용됐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고발하고자 했던 의도가 아니었다면 더디게나마 일어나는 변화 혹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에 시선을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견해에 ‘당신의 현실 인식과 타인의 현실 인식은 차이가 있으며,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를 담은 소설이 현실의 완전한 개선 이후에 진보의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 중개 아닌가. 


 <쇼코의 미소>에서 핵심적 메시지라고 느꼈던 게 ‘인식의 진보’다. 지극히 가깝지만 무지한 상태, 자각하지 못했던 세계의 이면을 이야기함으로써 드러나게 했던 거다.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으면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회상하고 현재와 비교하느라 더 많은 마음을 쏟았다. 그 결과 사실과 심리의 거리를 조절하다 지쳐버렸다. 


 둘째로 반복되는 회상을 통한 전개도 지루함을 키웠다. 과거, 10년 이상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의 교차는 인물의 그 다음 이야기에 호기심을 더해주지만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가 다 그런 식이어서는 작가의 발상이 안일했다는 비판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닐까. 


 셋째로 독자와 소설의 심리, 인식의 거리를 좁히기 보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골몰했다는 인상이다.(변덕스런 독자는 작가와 소설이 가까워서 좋다고 했다가, 가까워서 싫다고 한다. 이건 내가 풀어야 할 문제) 작가와 소설의 거리가 너무 가깝게 느껴져서 독자가 끼어들 여지, 틈이 없는 듯 느꼈다. 마치 이번 소설집이 다음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가의 기억과 생각 정리 시간이었던 것처럼.


 소설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고 집요한 사람이다. 놓치고 지나친 부분, 인식하지 못한 이야기를 우리 앞에 펼쳐 보여준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우리의 무지가 누군가에게 유해한 결과를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지만 아쉬움은 명백하다. 다음 이야기에 더 큰 공감과 감동을 담아 돌아오길 기다린다. <쇼코의 미소> 때처럼 좋아서 여럿에게 선물하고 추천했던 그런 이야기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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