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 C의 Princess Diary #2

접시는 깨졌고, 나는 모은다

by 가가책방

바보같이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그 순간에, 그 일이 일어날 줄 알았더라면, 그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다시 생각해봐도 바보 같기만 하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한다. 그래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침에 접시가 깨졌다.

소리가 들리고 돌아봤을 때 이미 일은 벌어져 있었다.


얼마 동안일까.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깨진 조각, 흩어진 그릇과 그릇을.

몇 개가 깨진 건지, 어떻게 치울지 하는 문제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접시가 떨어진 곳을 보니 기둥 두 개로 지탱하는 그릇 건조대 한쪽이 빠져서 기울었다.

그나마 전부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얼마쯤 그렇게 가만히 있었을까.

처음 움직여한 일은, 아침을 먹으려고 데우던 찌개 냄비 가스불을 끈 거였다.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먹을 거라는 예정도 사라졌다.


다음으로 한 일은, 살아남은 그릇과 깨진 그릇을 확인한 거였다.

두 개였던 접시가 하나가 됐다.

컵 하나는 이빨을 잃었다.

운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을까.


깨지지 않은 그릇까지 개수대에 옮겨놓고, 큰 조각을 모았다.

눈에 보이는 작은 조각,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더 작은 조각은 키친타월을 적셔서 닦아냈다.

세 번, 네 번.

더는 조각이 남아 있지 않았을 거란 확신이 생길 때까지 거듭, 거듭해서.


모아둔 큰 조각은 집 밖에 내놓았다.

집안에는 깨진 그릇에게 내줄 공간이 없는 법이다.

부엌은 쓸모에 민감하고 날붙이는 칼, 가위면 충분하다.

접시는 깨졌고 다시 붙는 일은 없었다

남은 그릇은 물로 씻어내고 한 번 더 수세미로 문질러 설거지를 마쳤다.

빠져버린 건조대 기둥을 다시 고정시키고 씻은 그릇을 올렸다.

이게 무슨 바보짓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빠져서 접시를 깨뜨려 본 건조대는 깨뜨릴 접시가 없어질 때까지, 자신에게 지워질 짐이 사라질 때까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빠지는 게 아닐까.


언젠가 일어날 걸 알면서도 지금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그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 얼마나 다른 걸까.

정리하지 않고 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정리는 했다.

하지만, '끝냈다'고는 할 수 없다.

깨진 건 접시 만이 아니었으니까.

접시가 깨지면서 일어날 줄 알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는 없는 가깝고도 먼 미래들까지 깨워버렸으니까.


장미꽃 모양에 금박 테두리를 두른 접시는 거의 나만큼이나 나이가 많다고 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그릇을 가지고 나와 한 벌을 헐어 버린 게 나였다.

지난해 조금 더 작은 그릇을 깨버린 게 나였다.

이번에 깬 접시도 결국 내가 깬 셈이다.

하나씩, 하지만 확실하게 사라진다.


사라진다.

깨진 접시를 가져다 조각을 맞춰봤다.

이런 상황을 함축하는 고사성어가 있던데.


破器相接(파기상접), 깨진 그릇 조각을 맞춘다는 말인데 속뜻은 '이미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고 쓸데없이 애씀'을 이른단다.

나 역시 쓸데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순전히 우연 덕분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


파접(罷接)이라는 단어.

의미는 '글을 짓거나 책을 읽는 모임을 마침'.

파접의 반대어는 개접(開接).

의미는 '글을 짓고 읽는 모임을 시작함'.


깨진 그릇 조각을 맞추는 쓸데없는 애씀은 글을 짓고 읽는 모임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늘려주었다.

접시는 깨졌고 나는 모으기로 했다.

깨져버린 접시 조각이 아니라 아직 깨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리기 전에, 사라진 무엇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모을 수 있다면 애씀이 쓸모없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처음의 바보 같은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일어날 줄 알기에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바보 같기만 한 생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매화꽃 활짝 피고, 고양이는 노닌다

작고 사소하지만 실의에 빠져있었다.

예전에 어떻게 썼는지, 무엇을 썼는지 도통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쓰는 이야기들도 쓰고 싶어서 쓰는 건 틀림이 없지만 이렇게 쓰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느끼곤 했다.

일상으로 계속하던 매일 쓰기가 종종 쓰기가 되고, 가끔 쓰기가 되어버린 이유가 그런 거였나 한다.


조금은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싶었다.

내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내 마음까지 닿았으면 했다.

그런 의미에서 Diary, 일기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사람이 바라봐주지 않아도 꽃은 피고,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고양이는 노닌다.

조만간 일기 쓰기 모임을 시작해야지.

일기日記일지 일기一記일지, 그건 쓰는 이에게 맡기기로 하고.


일기는 계속, 일기는 변덕, 일기는 비밀, 일기는 기억.

당신의 일기는 무엇인가요.


/*설마 싶으시겠지만 공주에서 쓴 일기라 Princess Dia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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