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굳은 땅에는 물이 스미지 못한다.
'토박이'란 단어를 곱씹어 본다.
단어를 해체하고 의미를 풀어본다.
이렇게 생겼으려나?
토+박+이.
土 + 박히다 + 사람.
땅에 박히듯 오래 살아온 사람.
특정 지역, 어떤 땅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
이 정도 의미가 될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 '토박이'를 검색했더니 나온 결과는 이랬다.
토-박이(土--)
「명사」
= 본토박이
허헛, 다시 본토박이를 찾아본다.
본토-박이(本土--)
「명사」
대대로 그 땅에서 나서 오래도록 살아 내려오는 사람 ≒ 토박이˙토종01(土種)「2」
아하.
'대대로'를 떠올리지 못했다.
대에서 대를 이어 내려오며 오래도록 산 사람.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앞서 '토박이'와 '본토박이'는 등호로 이어지는데, '본토박이'와 '토박이'는 근삿값으로 표시한 거다.
앞과 뒤, 순서를 바꿨을 뿐인데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이유가 뭘까?
토박이로 시작한 국어 공부는 여기까지로 하자.
혹시 궁금해졌다면 찾아보는 정도의 수고는 스스로 감수할 수 있어야 재미가 생길 테니.
토박이 얘기를 꺼낸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공주에 와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공주에 토박이가 많다는 거였으니까.
토박이가 많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지역, 고향을 자부심으로 대한다는 의미겠다.
특색을 이해하고, 역사를 밝히 아는 이가 많다는 의미겠다.
귀중한 자원의 하나인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겠다.
대대로 살아내려 온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지 않다면 감히 토박이라는 말을 쓰지도 못하겠지.
반대되는 효과도 있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는 얘기다.
오래 굳어 단단해진 땅은 콘크리트보다 더 물이 스미기 어렵다고 한다.
물론 물을 머금고 있을 수 있다면 오래 굳은 땅도 차츰차츰, 서서히 풀어질 테고 물이 스미기 시작할 거다.
하지만 머금기 전에 흘러가 버린다면, 빛까지 강하다면, 땅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점점 더 물이 스미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이 스미지 못하는 땅에 싹이 틀 수 있을까?
겨우 싹이 튼다고 해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간신히 뿌리를 내렸대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시들하게나마 꽃이 피었어도 열매 맺을 수 있을까?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진 땅에는 잡초 밖에 남지 않는다."
정확히 이런 문장이 아니었다 해도 의미는 알아차릴 수 있다.
척박한 땅, 불모의 땅, 황무지.
사람이 머물기에 적당하지 않은 땅에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거나 겨우 자란대도 사람들이 쓸모없이 여기는 잡초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겠다.
식물 잡초만의 얘기일까?
사람으로 빗대어보면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부작용을 남길 수 있는 사람들만 남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닫히려는 성향의 커뮤니티, 내부 유대가 유독 강한 커뮤니티는 외부 요인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계하면서도 내부에는 무감하거나 피해에도 관대한 성향을 띌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리는 남이 아니기 때문에.
내편과 네 편이 아니라 내편과 우리 적으로 나누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거다.
이방인.
그렇다고 겉돌기만 하는 이방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은 없다.
너여도 외롭고 나여도 외롭고 우리라도 외로울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너'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라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한없이 영에 가까워지는 거니까.
달콤한 열매를 맺지 못해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지 않았어도 소중한 땅을 망가뜨리는 잡초는 아님을 증명해 가야지.
말은 많이 하는 편이지만 입에서 꿀이 떨어지듯 귀에 단 말은 잘하지 못한다.
더디더라도 행동으로,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는 걸로 스스로를 변호하는 수밖에.
토박이는 아니지만 물처럼 스며들고 싶다.
싹이 트고,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는 풍경에 함께 하고 싶다.
오늘의 일기.
끝.
/*설마 싶겠지만 공주에서 쓴 일기라 Princess Diary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