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 C의 Princess Diary #4

출국 전날 밤은 긴장의 연속이다

by 가가책방

한국을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라거나 미세먼지가 무서워서 떠나는 게 아니건만, 때가 때인만큼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생긴대도 어찌할 수가 없겠다.

웃긴 얘기는 아니지만 나름 웃자고 한 얘기니 심각해지지 말았으면.

미세먼지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데 말이다.


출국 공항은 청주 국제 공항.

목적지는 간사이 국제 공항이다.

컨셉은 답사를 겸한 탐사 여행이랄까.


티켓을 끊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청주, 가깝잖아? 청주 공항으로 해야지."

출발 시간도 11시 30분이라 넉넉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차를 이용하면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한다면 말이다.


택시를 제외한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법을 검색하면서 여러 가지로 놀랐다.

첫째, 공주에서 청주 공항까지 가는 직통 버스가 없었다.

몇 대 없긴 하지만 오히려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있다.

둘째, 세종에서 청주 공항까지 가는 직통 버스가 한 대뿐이다.

그나마도 하루 7회인가 8회 운행되는데, 그 배차 간격이 상상을 뛰어 넘는다.

셋째,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검색 결과 보여지는 소요 시간과 실제 소요 시간에 적게는 1시간 많게는 그 이상 차이가 생길 확률이 몹시 높다. 일단 도착 정보가 검색되지 않는 시점에서 아웃이다.

이 밤, 출국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이 얼마나 사치스런 긴장 이유인가.

안타까움을 넘어 슬픈 소식이 들렸다.

내가 있는 이곳, 이 자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한 가족이 세상을 떠났음도 모르고서 말이다.

오늘 참석한 모임에서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부족한 게 없어서 그래."


분위기나 태도가 쉽게 변하지 않는 이유를 찾던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이미 충분해서 변화를 유도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다면 왜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걸까.

많은 순간 그렇지만 부족함은 없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거나, 안 보는 거나 모르고 지내는 게 아닐까.

KakaoTalk_20190306_102612307.jpg 모르는 사이에 싹이 돋고, 꽃을 틔울 준비를 마쳤다

불편함, 부족함, 누군가의 절망이나 좌절을 모르고 지내듯이 가까이 있는 희망, 가능성도 모르고 지내는 건 아닐까.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바닷물을 모르고, 공기 속에 사는 우리는 미세먼지에 위협 받기 전까지 공기를 잊고 지낸다. 마찬가지로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적응을 하고 나면 불편함도, 편안함도, 장점도, 단점도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되는 게 적응하는 동물 인간임을 다시 깨닫는다.


깨어 있기란, 항상 밝히 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걱정할 필요가 있는 일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하는 건 얼마나 무의미한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며 노력을 무의미한 일과 의미 있는 일을 구분하는 데 써버리는가.

봄의 새싹은 다 버리고 오직 싹을 틔우는 데 모든 힘을 다 하겠지.


봄에서 배운다.

봄의 새싹에서 배운다.

군더더기 없는 최선이란 무엇인지.


KakaoTalk_20190306_183226650.jpg 종로에 있는 정자 스케치, 2일째. 아마 고종이 걸었던 길 근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작 이런 거다.

한 번에 다 하려고 욕심내지 않는 일.

부족함을 부족함으로 받아들이는 일.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나아질 수 있는 연습에 시간을 들이는 일.

매일, 하루하루, 꾸준히 계속하기 위해 지치지 않는 일.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속 교장이 한스에게 말했듯,

지치면 수레바퀴에 깔리게 될 테니까.

지금은 지치지 않는 게 최선일 테니까.


오늘 밤 느끼는 긴장의 진짜 정체는 '모른다'는 거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기에.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혹시 늦잠을 잘지도 모르기에.

말 그대로 모르는 일 투성이기에, 무서워진 거다.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게 첫째 이유인 셈이다.


앞서 적었듯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면 한 시간 남짓이면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없을까 자체는 긴장의 이유일 수 없다는 얘기다.

가고자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대로 잘 될지, 나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해서 불안하다는 얘기다.


세상 모든 일에는 그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수백 가지라도 붙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두려움의 이유와 불안의 근원에게서 숨으려고 하지 않기.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다. 불안이 없을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일기로 적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막연한 불안 속에 숨어 있던 내가 불안의 손을 잡고 설렘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랄까.

기분 좋은 불안도 있구나.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겁내는 게 아니라 무엇이 있을지 몰라 기대하는 일.

둘 사이는 그렇게도 가까웠던 거구나.


마치 겨울과 봄이 그토록 가까이 있으면서, 이처럼 다르듯이.

세상이 그런 거구나.


/*설마 싶겠지만 공주에서 쓴 일기라 Princess Diary다.

PD는 5일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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