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할수록 하찮아졌다

욕, 하찮음, 모멸감

by 가가책방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게 될 때가 있다.

완전히, 아득히,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불쑥하고 문득.


제각각이다.

그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도 하고,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행동했을까 후회도 하고,

다시는 그리 하지 않겠다, 반성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고, 다짐하기도 하는.


많이 썼다.

길고 짧은 글을 더하면 수천 편에 이르는, 삼천이나 사천은 될 정도로 많이도 써 질렀다.

그래서 반성할 일도 많다.

후회도 잦다.

그래도 이렇게 떠 쓰는 건,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인간이니까.


오늘 돌아본 건 SNS 속 '6년 전 오늘'에서다.

표현 하나가 유난히 도드라졌는데,

'그 자식'이란 표현이다.


좀 길게 인용하면 이런 글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감정을 위해 고의적으로 타인을 상처 입히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뿐이다.
저마다의 감정이 다르고, 방법이 다르고, 정도가 다를 뿐 상처 주기 위해 던지는 말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 정도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거나, '그 자식'이 상처 받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다.
강철의 심장, 철벽 가슴의 '그 어떤 것'이 아니다.


그때는 상처주기 위해 말을 막 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 자식'이라고 적었고.

스윽 읽어가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상처 입히고 싶은 존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왜 '그 자식'을 썼을까?

'그놈', '그 새끼'부터 얼마든지 더 심한 '욕'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드물게 스스로가 쓴 글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번이 그런 경우다.


물론, 그때의 '나'는 아니지만 지금의 '나'가 생각하기에 '그 자식'이란 표현에 담긴 뉘앙스는 절제다. 과격해지지 않기 위한, 선을 넘지 않기 위한, 더럽히지 않기 위한 절제.


욕을 할 때마다 스스로가 천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욕을 떠올린 머리가, 욕을 내뱉는 입이, 욕을 듣는 귀가, 욕을 하게 만든 마음이, 감정이.

그 모든 걸 소유하고 있는 나 자신이 천박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다.


욕을 할수록 하찮아졌다.


욕하는 기분, 이유, 마음은 헤아릴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통제도 절제도 불가능한 상황도 있다.

그럼에도 욕이 낳은 모멸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흔히 욕을 하는 이유는 습관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게 됐다.

욕을 하게 만드는 건 태반이 습관이다.

의도 없이, 필연 없이 추임새처럼 들어가는 상투어로써.


의도와 습관이 혼재된 경우가 두 번째로 많다.

욕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조금 기분이 상하거나, 곤란하거나, 답답할 때 간단히 욕을 내뱉는다.

거르지도 않고, 조절도 제어도 하지 않는다.

평소 의미 없이, 뜻 없이 했던 욕에 의미를 담아서 내뱉으면 그만인 거다.


그다음으로는 의도가 더 큰 지분을 갖는 욕이 나온다.

거의 오로지 상대에게 수치를 안기기 위해, 모욕하기 위해, 멸시하고 하찮게 만들기 위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다치게 만들기 위해, 모멸감을 안기기 위해 욕을 하는 거다.

나는 모든 경우에 스스로가 내뱉은 욕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하찮아졌다고 느꼈다.

상대를 모욕하기 위해, 모멸감을 안기기 위해 내뱉은 경우에도 나를 향한 모멸감을 견디는 게 싫었다.


전에 최상급 접두어가 되어버린 '개'를 곱씹어 본 이유도 거기 있다.

https://brunch.co.kr/@captaindrop/539


더 솔직히 적어보면 나는 욕을 하기가 겁이 난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위한 욕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른 누구에게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에 모멸감이라는 마음의 짐까지 남길 그 잠깐의 충동을 참지 못할까 봐 무섭다.

습관처럼 욕을 하는 무감각 하거나 무딘 사람이 되는 건 더 두렵다.


무뎌지면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클지도 모른다.

예민하게 굴어서 좋을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욕하는 사람이 낫지 신경질 부리는 사람이 더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그건 또 다른 문제이지 싶다.


욕을 먹어 마땅한 사람, 상처 받는 게 당연한 사람도 누군가의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대상이, 상대방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니까.

덕분에 나는 하찮아지지 않을 수 있고.


모멸감을 안기기 위해, 하찮다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 곱씹고 곱씹어 뱉은 욕이 항상 나를 하찮게 느끼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항상 그렇게 느껴온 건 '진심'이다.


이제 전혀 다른 형태, 목적, 이유를 갖는 글이라고 하기 어려운 걸 쓰러 가야 할 시간이다.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건 그걸 쓴다고 해서, 혹은 잘 못쓴다고 해서 나 자신이 하찮아지지는 않는 게 확실하다는 것.


안심하고 쓰러 가야겠다.

나는 나를 지킨다.

스스로 하찮아지지 않기 위해.

스스를 모멸감에서 구하기 위해.

가깝거나 혹은 먼 그와 그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거국적으로.

대승적으로.

우리, 하찮아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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