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책방 단골 이야기
'공주에는 맛집이 많다'고 적었다가 고친다.
이런 질문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맛집이란 무엇인가?"
맛집이 많건 적건 로리야는 공주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자주 찾는 단골집이다.
공주 생활 9개월, 단골집이 생길 때도 된 거다.
얼마 전 새삼스럽게 발견한 게 있다.
바로, 로리야 문 옆에 그려진 달팽이다.
그러고 보니 잊고 지냈는데 간판에도 달팽이가 있다.
"이 달팽이는 무엇인가?"
질문이 많은 손님은 껄끄럽다는데, 그렇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을 뒤늦게 토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달팽이의 역사는 2017년 9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바깥 생활을 하다 공주에 정착한 사장님 부부는 처음 몇 개월 동안 몹시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조용하고, 번잡하지 않고, 대도시와 다르게 소도시 생활이 느긋할 거라는 예감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체감이 좋았던 거다.
그런데, 당신은 누군가의 인생에 단 한 번도 반전이 없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나.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알고 지낸 사람들은 저마다 기가 막힌, 반전 하나나 둘 혹은 그 이상을 꼭 경험했다고 한다. 종종 정말 말도 안 되는 반전도 있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로리야에도 반전이 있었다.
그 반전의 시작은 소도시 생활이 결코 느긋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우선 로리야라는 가게 이름에 담긴 이름과 마스코트 달팽이에서 연관성을 찾아보자.
증언에 의하면 로리야는 '롤이야'에서 파생된 이름이라고 한다. 말하는 걸 잊었는데, 로리야는 캘리포니아 롤 집이다. 롤을 파니까 로리야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름 짓기였던 거다. 롤은 달팽이로 이어진다. 달팽이는 돌돌 말려있는 모양의 집을 갖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달팽이는 느리게, 천천히 움직이기에 슬로 푸드라는 의미까지 담아서 마스코트로 삼은 거였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특히 슬픈 예감은.
천천히, 여유롭게 만들고, 느긋이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 로리야지만 손님들은 '빨리 나오길', '빨리 가져다주길', '빨리 먹을 수 있길' 요구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주인은 손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으므로 서두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위에 사진을 한 번 더 자세히 보자.
달팽이가 뭔가 서두르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지.
사장님은 처음에 슬로 푸드, 천천히를 생각해서 그려둔 달팽이의 뒤에 짧은 선 두 개를 새로 그어두었다고 한다.
지금 몹시 서두르고 있음을, 가장 빠른 속도로, 되도록 신속하게 요리하고 있음을 의미한단다.
슬로 푸드를 꿈꾸며 시작한 가게는 농담 반 진담 반 '패스트푸드' 가게가 됐다.
바쁘다는 건 그만큼 손님이 있다는 이야기고, 손님이 있으면 매출도 있을 테니 나쁜 건 아니다.
그저 그런 이야기가 있었고,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로리야 인테리어는 상당 부분 사장님들이 직접, 손수 작업하셨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전복껍데기를 엮은 전복껍데기 장식이다. 햇볕이 잘 드는 남쪽 창문에 걸려 있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영롱하게 빛을 뿜어낸다. 자칫 황량할 수 있는 창가에 적당한 존재감으로 무게를 잡아주고 있는 거다.
최근 로리야 맞은편에 있는 건물 1층 안경점이 사업을 정리하면서 점포 임대가 붙었다.
점포 임대를 찍었는데 로리야가 비쳤다. 그리고 사진 오른쪽에 흐릿하게 포클레인 한 대가 건물 잔해 위에 올라앉아 있는 모습도 함께 찍혔다. 현재와 과거가 된 공간과 사라진 공간이 묘하게 공존하는 사진 완성이다.
얼핏 보면 점포 임대와 임대와 부동산 이름과 가게 간판과 부서진 건물과 부수는 포클레인과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이 한 면에 뒤엉켜 있는 듯 느껴진다. 마치 앞을 보면 환영이 보이다가 뒤를 돌아보면 비로소 현실로 돌아오는 마법의 공간처럼.
로리야 이야기를 듣고, 내어준 음식을 되도록 천천히 먹고 책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멍하니 앉은 등을 발견했다. 그 등이 향한 자리는 한참 건물을 부수고 있는 포클레인이 있는 방향, 예전에 중앙 분식이 있던, 중앙 독서실이라 부르던 건물이 있던 자리다.
슬로 푸드를 꿈꿨던 로리야는 패스트푸드와 다르지 않게 변했다.
사실 공주는 결코 느리지 않다. 흔히 충청도가 느리다고, 느긋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나곤 하는데, 말도 일처리도 느린 것만은 아니다. 특히 공주에서 절실히 느끼는 건 '부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깔끔하다'는 거다. 3층 건물 정도는 일주일이면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빠르게 없앨 수 있는 게 공주 철거 업체의 저력이다.
수십 년을 지킨 건물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는 이 등은 무슨 이야기로 소란스러울까.
밤늦어 새벽까지 공부하고, 친구들과 얼마씩 돈을 모아 떡볶이를 먹고, 웃고, 떠들고, 지나기를 수백, 수천, 수만 번 거듭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이 등은.
어떤 목소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비로소 그 건물이 사라져 속이 다 후련하다거나, 길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갑갑했는데 잘한 거라고 말이다.
공주에 오래 머물지 않은 나, 이방인인 나, 추억이나 기억을 모으고 쌓을 시간이 얼마 주어지지 않았던 나조차 아쉬움을 느끼는데, 어떻게 개운하고 시원할 수 있는지 되묻게 된다.
낡고 헐어 무너질 위험이 크다거나, 존재 자체로 흉물이 되어 버렸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철근을 많이 넣어 몹시 튼튼하게 지어졌고, 기단도 단단해서 한참을 파내야 했는데 말이다.
별 추억도 없는데 괜스레 아쉬워져서 6개월 남짓 전에 그려둔 스케치를 꺼내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지금 판단 짓기는 섣부르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서진 것,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식상하기 짝이 없는 표현, 엎지른 물, 깨진 거울 같은 거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아쉬움은 이 공간, 사라져 가는 공간들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서 언젠가 없어질 거라는 미래를 떠올릴 때 마주하게 된다.
이미 사라진 공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부디, 기억하는 사람들아, 느리게, 조금 더 천천히 잊어버리길 부탁한다. 인간은 홀로, 오롯이 스스로는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한다.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과 함께 공유한 시간과 함께 한 공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기억될 수 있는 거다.
부디 오래, 함께, 즐거운 기억 나누기를 바라며, 추억이 담긴 공간들이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길 새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