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 놀이 세계가 이렇게 심오하다

아기는 놀이를 만든다

by 가가책방

잠든 아기를 보며 쓴다.


아기는 이제 일으켜주면 혼자 앉을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리고 의식처럼 밥 먹을 때가 되면 자기 자리에 앉아 이유식이나 과일을 먹는다. 오늘 쓰는 건 아기가 식탁에 앉아있을 때 놀기 위해 만든 놀이 이야기다.


요즘 들어 아기 표정이 부쩍 다양해졌다. 눈웃음도 웃고, 이해하기 힘든 묘한 표정도 짓는다. 예전과 비교해 무엇보다 달라진 건 명확해진 웃음과 울음의 경계다. 전에는 웃다가 울어버리거나 울다가 웃는 일이 더 잦았는데 요즘은 점점 드물어진다. 그리고 이전에는 어른의 표정을 따라 웃는 사회적 웃음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자기 기분에 좌우되는 듯한 웃음을 웃는다. 그렇다고 웃음이 줄어든 건 아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부모의 책임감을 보일 때가 시작됐다고 봐야겠다.


다양해진 표정만큼 다양해진 게 있다. 바로 아기의 놀이다. 아기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놀이를 만든다. 어설플 것 같지만 놀이의 방법, 규칙, 웃음을 웃는 순간이 다 정해져 있다. 정말 제대로 놀고 있다.

며칠 전 아내는 자꾸만 손수건이나 수저, 치발기 같은 걸 바닥에 떨어뜨리는 아기의 행동에 의도가 있음을 알려왔다. 일부러 떨어뜨리고 주워주기를 기다리는 놀이인 거다. 아기는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부모는 아기가 떨어뜨린 걸 주워주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역할 놀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오늘, 자꾸만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아기와 놀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기가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다. 의문을 풀기 위해 아기를 가만히 지켜봤다. 떨어뜨리고, 주워주기를 한두 번 반복하면서 아기가 어디서 웃고, 어디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짓는지 순간순간 확인해 봤다. 그렇게 했더니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아기가 웃는 순간은 떨어진 걸 주워 올리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가 떨어뜨린 걸 누군가가 주우려 하는 과정'이라는 걸 말이다. 아기는 별생각 없는 듯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떨어진 손수건에서 시선을 떼어 여기저기 딴 데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누군가 일어나서 떨어진 물건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면 몸을 한껏 긴장시켰다.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다음 순간에 찾아올 성공을 예감하듯 말이다.

아기가 하고 있는 놀이는 어른의 말로 하면 '눈치게임'처럼 보인다. 자기 의도를 감추고,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까지 인내하며, 계획이 성공했을 때 기뻐하는 상당히 복잡해 보이는 놀이.


어쩌면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어른의 관점에서 내놓은 과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아기는 기대를 품고 행동할 줄 알며, 그 기대가 이루어졌을 때 기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거라고 본다. 아기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싶은 부모는 없을 거다. 우리 역시 그렇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기의 의도를 모르는 척 놀이에 어울려줄 계획이다.

또 다른 계획도 있다. 과연 이 놀이들의 의도가 지금의 해석과 일치하는지, 앞으로 다른 의도나 규칙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닌지, 혹은 전혀 다른 의미를 품고 있거나, 어쩌면 정말 단순히 별 의도 없는 놀이에 불과했는지 알아가는 계획이다.


손수건 한 장 떨어뜨리고 세상을 다 갖는 존재.

그게 아기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높이 나는 새 놀이

덤으로 요즘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높이 나는 새 놀이에 심취해 있다. 기어가지는 않고 자꾸만 날아가려고 하는데, 보고 있으면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 매일 잘 먹고, 잘 놀기만 해도 사랑받는 존재. 그게 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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