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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가책방 Apr 21. 2021

싫은 소리 못하는 어른들에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나오는 모자 이야기

이것은 별 의미 없는 감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강의 형태가 아닌 북클럽 형태의 고전 수업을 맡아 진행하게 됐다. 

비교적 읽기 수월한 책을 열 권 고르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데 비슷한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경험이면서 새롭고 즐거운 체험이 되기를 바랐다.


 지난 월요일,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로 첫 시간을 열었다. 

지금부터 쓰는 감상은 그 시간을 전후해서 떠올린 생각들을 비교적 간략한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지난번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부터는 낭만이나 아름다움보다 이야기에 담긴 지극히 현실적인 면모에 천착하게 됐다. 

 사람들이 내 책을 가볍게 읽어버리는 것이 싫어서 하는 말 _<어린 왕자> 열린책들

 여러 번 읽으면서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 문장에 한 번 시선을 줬더니 소설 속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동화가 아닌 탄식처럼 읽히기도 했다. 오래도록 외로운 시간을 견디던 한 사람이 힘겨운 노력 끝에 겨우 꺼내놓는 에두른 이야기처럼 들렸다.


 어린 왕자가 별을 떠나며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이별하는 모습과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이 사는 여섯 별과 일 년을 보내고 지구를 떠나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도움을 구하는 모습도 낯설었다. 여섯 별 이야기는 세상 어른들의 이야기였고, 지구에는 그 여섯 별에 사는 사람들이 수천, 수만 명씩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여러 번 읽으면서 지구에 처음 와서 만난 존재가 뱀이었다는 걸 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길들임과 정말 소중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문장들에 사로잡혔던 건지도 모른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존재하기를 소망하게 되는 별을 꿈꾸면서.


 나이 든 탓을 하자. 

어중간하게 먹은 나이가 꿈에서는 깨어났으나, 아직 완숙하지 못한 불완전함을 부추긴 탓으로 어쩌면 지나치게 현실 속 비극을 확대해 투영하고 있는 거라고. 

 <어린 왕자>의 결말이 새삼스럽다. 왕자는 별로 돌아갔을까, 그의 별에 장미는 무사한 걸까. 확실한 결말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다시 보니 온통 열린 결말이라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린 왕자>의 화자가 여섯 살 때 그렸다는 속이 보이지 않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따라 해 봤다. 여섯 살에 이 정도 그림을 그렸으면 제법 괜찮은 솜씨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 걸 그리는 건 그만두라고 조언했던 걸까. 

모자 그림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가 죽기 1년 전에 출간됐다. <야간 비행>에서 상상한 자신의 마지막을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 역시 억측인 걸까. 

 여행과 뱀과 도움과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세상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세상을 그려내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어렵다고 적고, 길들임과 보이지 않는 것과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한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이고, 때로는 말도 안 되게 전혀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구나 한다. 인생의 어느 때, 어떤 순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마치 사막이 숨기고 있는 우물처럼 가치 있는 한 구석. 


 다음에 읽을 때는 어떤 구석을 발견하게 될까.

기대하며 기다림을 시작한다.


이것은 별 의미 없는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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