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필요한 말이었을까.
어린 시절부터 앞만 보며 가는 아이는 아니었다. 두리번거리는 정도는 아니라도 지나며 보이는 어떤 장면, 사람들은 제법 유심히 보고 기억해두는 편이다. 덕분에 사고나 사건을 피할 수 있던 때도 있고, 동행인 혹은 지인에게 일어났을지 모를 사고를 예방한 적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는 건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알아서 해주는 수준이었고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없어서 나 자신은 별로 피곤한 줄 모르며 살았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혼자 다닐 때, 아직 혼자일 때 편했던 것만 같다. 별 이유 없이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공주에 살면서는 오래 걸을 일이 없어졌다. 오래 걸어도 15분을 넘지 않고 그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1킬로미터를 넘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였는지 주변을 둘러본다는 생각, 앞만 보고 간다는 생각 모두에서 멀어졌었다.
머리를 깎으러 가는 길이었다. 문득 앞만 보며 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플루언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 일에 충실했고,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고, 유혹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많다. 성공이 어떤 사람들의 현재 모습, 경제적 성과, 사회적 지위 등 가시적인 것으로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고 그 목표를 위해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인데 그 목표 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앞만 보고 가는 게 상당히 유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던 거다.
머리를 깎는 것과 성공은 당장 별 상관도 없는 건데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떠올린 게 버릇처럼 하곤 하는 "주변을 좀 둘러봐."라는 말이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기에 배려랄까 번거로움, 귀찮은 일, 문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일이 많다. 그만두려던 일을 더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던 일, 떠올린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게 주변을 둘러보는 일인 셈이다.
안하무인,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 목표 달성에는 확실히 유리할 텐데, 그래서 목표 달성을 열심히 하지도 못하고 목표 자체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쓸모없는 생각의 조각도 떠 다녔다. 비난을 당하거나 욕을 듣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고 그게 더 유리할 수도 있는데 너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데 시간을 써왔던 건 아닌가.
쓸데없는 생각인 걸 안다.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할 생각이 없으며 앞으로의 삶을 극적으로 바꿀 의도도 없으므로 지금 떠올리고 적고 있는 이 글, 생각은 모두 쓸모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밀고 나가 보자.
앞만 보며 간다. 주변을 좀 둘러봐라보다 더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얘기다. 사실 내가 목표에 가까워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너무 자주, 지나치게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이었을 거다. 어디쯤 있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주변에 어떤 영향은 없는지, 그 모든 일들, 내가 인지하고 파악하고 있는 일들이 내 의지 혹은 뜻에서 크게 어긋나 있지 않은지, 나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형성하고 있는지.
목표의 달성이나 주변의 문제보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다툼이 더 크고, 소란스러웠다. 아마 그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라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것 같다. 스스로의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니 어떤 의미로는 책임전가를 하고 있었달까.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을 스스로 잘 가고 있다. 주변에서 주변을 둘러보라는 말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필요한 위험을 피하고, 원하는 기회를 잡으며 나아간다. 주변을 둘러보라는 말처럼 쓸모없이 들리는 말이 없었겠지.
지금은 조금 더 웅크리고, 조금 더 속삭이고, 조금 덜 움직이는 게 안전한 계절이니까.
봄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단단하고 유연하게 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