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겨울비는 눈보다 차가운가
비가 오지만 얼음이 녹지 않는다. 녹아서 흐르지만 더 단단하고 차갑게 얼어붙는다. 그럼에도 눈이 되지 못하고 비가 되어 온다. 맞아도 차갑고 보기도 차가운 시린 비가.
아침을 먹으며 '오늘 엄청 춥다'는 얘기에 '그렇게 춥지는 않다',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지 않느냐'라고 했다. 할 때는 맞는 말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것 같다. 어쩐지 어제보다 오늘을 더 춥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상식적으로 비는 눈보다 따뜻해야 한다. 비는 물이고 눈은 얼음이니까. 만약 오늘의 비가 어제의 눈보다 더 차갑다고 느끼는 게 나뿐이라면 이건 내 감각에 어떤 이상,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하므로 다른 방향에서 다시 생각해볼 일이 된다. 또한 감각이란 감정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어제의 마음보다 오늘의 마음이 더 시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목에 마음을 넣었다. 겨울비는 어떤 마음일까.
물은 0도 이하에서 얼기 시작한다. '얼기 시작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하지만 엄밀히는 무조건 모든 물이 0도 이하에서 단단하게 꽁꽁 얼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살짝 얼었을 수도 있고 얼까 말까 고민 중일 수도 있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거다.
겨울비가 눈보다 차가운 건 젖어들기 때문이다. 눈은 녹기 전에 털어내면 옷에도 몸에도 스며들지 않는다. 준비하고 대응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얘기. 떨어지는 모양이나 내려앉은 모습도 시각적으로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건 따뜻함의 상징, 솜을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각은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 얼음이지만 솜을 닮아서 덜 차가운, 실제로 처음 손 끝에 눈이 닿으면 차갑다고 느끼기보다 뜨겁다고 느끼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래서, 한 없이 어는점에 가까운 겨울비의 마음은 뭘까.
지금 떠오르는 마음은 서러움과 불안이다. 겨울비는 겨울 가뭄의 해소라는 효용에도 불구하고 당장 내리는 순간만큼은 반기는 사람이 없다. 차고, 시린 물이 몸과 옷을 적시는데 기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반기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반기는 이가 없는 곳에 내리고 싶은 비는 없으리라.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은 겨울비나 사람이나 같지 않을까.
불안은 결정되지 않음과 결정할 수 없음에서 온다. 집이나 다름없는 구름을 떠나 기약 없이 낙하하는 동안 얼어붙거나 부서지는 일이 흔할 거며 땅에 내려와서도 흐르지 못하고 어느 웅덩이, 어느 길 위에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비로 태어나 비로 내렸으니 비처럼 흘러가고 싶은 게 비의 마음이라면 비의 마음은 외부 환경과 힘에 의해 이지러지고 부서지는 셈이 되는 거다. 결정되지 않고 결정할 수 없으며 그 시기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아프고 고통스러우리라.
반대로 어떤 겨울비는 차라리 단단히 뭉치거나 흩어져 눈이 되기를 꿈꿀지도 모른다. 그런 비에게는 앞서 적은 서러움이나 불안은 없는 게 된다. 오히려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다른 환경으로 나아가면서 변화할 수 있기에, 자신의 작은 몸피를 몇 배나 부풀려 세상에 더 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에 차가운 겨울비의 이미지를 포근한 함박눈으로 바꿀 수 있기에 기대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지금 내리는 겨울비는 역시 서러움과 불안의 웅덩이에 고여든 슬픔일 수밖에 없다. 내가 목격한 순간 여전히 비였으므로, 그 차가움이 눈보다 더했으며 역시 반기는 이는 만나지 못했으므로 웅덩이가 말라 하늘 위 어느 구름에서 새로 태어나기 전까지 겨울비는 시린 마음으로 서러운 시린 마음으로 겨우내 얼어붙어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