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로컬라이프
어제는 늘 가던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
불이 꺼져 있었지만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가서 인기척을 내봤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미용실 건물 꼭대기층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는지 사다리차와 이삿짐 트럭이 분주히 짐을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문을 보니 '개인사정으로 오늘 쉽니다'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인가'하면서도 아쉬움에 입구 근처를 서성이는데 사장님이 나오셨다. 그러면서 지금 나르고 있는 짐이 자기 집의 짐이며 강 건너로 이사를 가게 되어 이것저것 많이 버렸다는 얘기를 했다.
머리를 자르러 왔는데 그럼 다음에 올까요 했더니 난방을 켜두지 않아 서늘한데 그래도 괜찮으냐 하셔서 그러자고 하며 앉았다. 머리를 자르며 버린 물건들 얘기를 하는데 책이며 가구에 전자 피아노도 버렸다며 둘 곳이 없어 어쩔 수 없다 하셨다.
전자 피아노를 버리는데 스티커를 사서 붙여야 한다며, 고물상 아저씨도 안 가져간다고 하더라는 얘기에 처음 공주에 와서 가가책방을 준비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럼 저 주세요'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전부터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게 신기했는지 피아노가 있는 곳에만 가면 두드리겠다고 하는 아이가 생각 나서다. 사장님도 그러라고, 정말 잘 됐다며 그런데 건반 하나가 소리가 안 나는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건반 하나쯤 소리가 안 나도 두드려서 다른 데서 소리가 나면 충분하며 운이 좋으면 수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직접 고쳐보고 안 되면 그만인 그런 가벼운 마음.
가져가기로 정하고 나니 어떻게 가져갈지 걱정스레 물었다. 걸어서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라지만 차 없이 옮기기에는 크기나 무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더 큰 것도, 더 멀리서도 옮겨본 경험이 있기에 밀차를 갖고 있으니 돌아와서 싣고 가면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현피아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볍기에 혼자서도 그 정도 거리는 충분히 옮길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머리를 다 자르고 상점으로 돌아와 밀차를 갖고 피아노를 실으러 돌아갔다. 어느 쪽으로 실으면 좋은지, 전자 피아노는 눕혀도 되는지 고민하는데 사다리차를 조작하던 이사 업체 관계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며 직접 싣고 테이프로 고정까지 시켜줬다. 뭔가를 얻을 때마다 이런 고마운 경험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작은 호의가 큰 도움이 되는 거다. 그렇게 싣기까지 마쳤는데 이번에는 미용실 사장님 남편 분이 밀차로 밀고 가는 게 걸렸는지 픽업트럭에 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정말 잘 가져갈 수 있다며 마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천천히 밀차를 밀어 가게로 향했다.
오는 길은 보도블록 연석을 넘을 때를 빼고는 아무 어려움도 위기도 없이 평탄했다. 가게 안으로 들이는 데 조금 시간이 들기는 했지만 무사히 들여와 자리를 잡고 전원을 꽂아 시험 삼아 눌러도 봤다. 들은 대로 건반 하나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다른 데는 다 괜찮았다.
공주에서의 삶을 택할 때 많은 염려와 걱정이 있었음에도 망설임이 크지 않았던 건 탐색의 시간으로 삼았던 기간에 경험한 호의와 작은 감동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를 기다린 듯한 작은 행운과 마침 필요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경험은 처음 살아보는 도시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기보다 '어떻게든 살아지겠구나'하며 안도하게 했다.
사실 별 일 아니지만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피아노가 생겼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웃기고 기막힌 우연이라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