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가책방 May 10. 2023

쓰기를 시작할 때는 좋은 걸 생각하자

화나는 일 싫은 사람들 불만들은 나중으로

 오늘 아침 가가책방을 정리하러 들렀을 때다. 새로 남은 흔적들에서 문득 슬픔이 떠올랐다. 책방이 엉망이었다거나 슬픈 사연을 발견했다거나 특별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저 그냥 떠오르더니 한참이나 마음을 떠다녔다.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에 떠올린 건 '슬프다'는 말이다. 슬프니까 슬프다.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이 말이 왠지 마음에 차지 않아서 조금 더 궁리하기 시작했다. 슬픔을 단순히 슬프다고 적어버리면 그때 느낀 슬픔이 너무 가벼워질까 봐 그게 또 슬펐기 때문이다. 슬프면 어떻게 될까. 슬프면 밥도 입에 대기 싫고 억지로 넣어도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슬퍼서 밥도 먹을 수 없었다'도 괜찮을 듯했다. 괜찮지 않았다. '밥도 먹을 수 없는 슬픔'은 어딘가 너무 흔해서 나만의 유일한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그럼 물은 어떨까.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슬픔'이라면 조금 더 내 슬픔과 가깝지 않을까. 이렇게 정리가 됐다.


"문득 슬픔이 떠올랐다. 슬퍼서 물조차 삼킬 수 없었다."


 오래 고민한 문장치고 왠지 슬프지 않아서 서글퍼지고 만다. 책방에 들어서서 느낀 문득 떠올린 슬픔은 내 슬픔도 깊은 슬픔도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심각한 슬픔도 아닌 거다. 내 슬픔이 아닌 슬픔을 두고 상상했으므로 헛헛한 문장이 되고 말았던 거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읽기에서 왔다. 지금은 다 잃어버리고 없는 어린 날들의 일기들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오늘은 무엇 무엇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떠어떠한 기분, 느낌을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이러저러하게 하거나 하지 말아야겠습니다.'투의 문장은 읽기라는 가꿔진 토양이 생기기 전에 온 들녘에 자연발생하는 잡초를 닮은 글자의 나열이다. 감흥도 생각도 기억도 못 되는 투박한 기록은 아직 글이 되지 못한 글자의 나열인 거다. 하루를 시간 순서로 기록한 글자를 나열하던 시절이 잘못이었다거나 못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때는 그렇게 썼다는 웃으며 떠올릴만한 추억 하나를 고백하는 거다. 타인의 글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떠오른 생각과 혼자 한 고민들을 쓰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 쓸 때는 오롯이 나에 속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좋다. 한 가지 더 권장하는 부분은 즐거운 일, 좋은 생각으로 시작했으면 하는 점이다. 비판하고 고발하고 분풀이하는 목적이 담긴 글을 쓸 수도 있다.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글이 쓰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처음에는 부디 좋은 생각을 떠올리며 즐거운 일을 적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처음 쓰던 시절 느꼈던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글을 꾸준히 쓰는 힘이 되고 잠시 손을 놓았다가도 그리워하게 하기 때문이다. 


 앞서 글을 시작하며 '슬픔'을 이야기했는데 슬픔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히 슬픈 일들이 더 떠오르기 마련이다. 다 이겨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슬픔이라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풀이를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글 속에 온통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꼬집고 비난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일이 들춰내는 거다. 많이 해봐서 아는데 이런 글은 쓰다가 지치거나 다 쓰고 난 후에도 입맛이 써서 즐거움이 적다. 오히려 쓰는 동안 억울함에 분통이 터지기 일쑤에 감정만 잔뜩 담겨서 읽는 사람들까지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나서 쓴 글이 오히려 더 화를 키우는 기름에 붙은 불에 물을 붓는 경우라는 얘기다.


 이렇다 저렇다는 얘기를 떠나서 처음 글을 쓰는 기분은 좋은 생각, 즐거운 회상, 행복한 상상과 이어졌으면 싶다. 책을 읽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 모두 혼자 할 수 있지만 같이 읽고 이야기하며 함께 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 그 즐거움은 더 커질 수 있다. 세상에 재밌는 게 많지만 그 재미는 대부분 사람에게서 생겨난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 글쓰기가 처음부터 슬프고 화나서야 오래 함께 할 수 있을까. 


 세상에 한창 불만이 많던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탓에 글은 문제의 진단, 해소, 해결을 위한 노력, 방법의 제안, 논의를 위한 텍스트여야 한다는 생각에 오래 사로잡혀 있었다. 개인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쓰기보다 객관적이기 위해 애썼고 감정을 잘라내고 사실을 담으려고 했다. 물론 그런 글도 필요하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얘기다. 


 일, 과제, 힘듦, 괴로움이 되지 않는 글쓰기. 그 시작은 거듭 적지만 좋은 생각, 즐거운 기억을 차곡차곡 적어 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꼭 그렇게 해보길 바란다. 당신의 좋은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의 좋은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나의 가장 좋은 이야기가 담긴 사진 한 장을 덧붙인다. 자주 쓰는 사진.


매거진의 이전글 꽃피던 자리에 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