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작은 새를 찾는 소녀를 만나다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는 모자 그림으로 시작한다. 아이가 그림을 보여주며 무섭지 않냐고 묻자 어른들은 모자 그림이 뭐가 무섭냐고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뱀의 뱃속을 그려 보여주자 이번에 어른들은 쓸데없는 그림은 그만두라고 한다. 아이는 어른들의 반응에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는데 그래서 어른이 되어 만난 어린 왕자의 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된다거나 어린 왕자를 더 실물처럼 그리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어린 왕자』 속 모자 그림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어른을 시험하는데 언뜻 떠오르는 시험 과목을 적어보면 '당연하지 않은 걸 떠올리는 상상력', '아이에게 중요한 일', '어른에게 시시한 일', '아이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일', '아이를 믿는 일' 같은 거다. 영문 모를 소리, 왜 적는지 모를 이야기를 왜 쓰고 있는지, 왜 읽어야 하는지 궁금해졌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이 적을 『어린 왕자』 속 모자 그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어제 늦은 오후에 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아이와 제민천 산책(산책이라고 쓰고 공사라고 읽는)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 보는 소녀를 만났다. 사실 마주치기 전 이미 멀리서 발견하고 인도와 차도를 오가는 아이 행동에 위험한 일이 생기지는 않은지 눈 여겨보고 있었다. 아이는 몸을 숙였다가 나무덤불을 들여다보다 자리를 옮겨 다시 들여다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고 아이도 차도로 뛰어들거나 깊이까지 나가지는 않아서 지나치려던 참인데 아이가 말을 걸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혼잣말처럼 한 얘기라 처음에는 우리에게 한 얘기라고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변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가 멈춰 서자 몸을 조금 돌려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때야 아이가 한 말이 들렸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새끼 참새를 같이 찾아주세요." 덧붙여 "아직 날지 못하는 작은 새예요."라고.
아이의 그 말을 인식한 바로 다음 순간에 『어린 왕자』 속 모자 그림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가 의도했건 아니건 내 머릿속에 시험지 한 장이 펼쳐지는데 거기엔 '아이를 믿는 일 시험'이라 적힌 제목이 있고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 건지 묻는 거였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그 상황이 긴급하지 않다면 분석부터 시작하는 습관이 있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고민이 깊어졌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이의 행동에는 큰 의문점이 있었기 때문인데 아이가 한 손으로 들 수도 있는 크기지만 두 손으로 들고 있던 네모난 장난감 상자가 결정적이었다. 그 안에 새를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고 하면 이해 못 할 상황이 아니지만 빈 상자라고 하기엔 어쩐지 무게감이 느껴졌고 애초에 아직 날지 못하는 작은 새를 틈도 없는 상자에 넣어서 가지고 나왔다가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의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의구심이 일기는 했지만 일단 아이의 말을 믿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다음 행동으로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왼쪽 목에 담이 온 상황이라 몸을 굽히고 고개를 젓는 게 간단하지 않았지만 자세를 낮추고 나무 덤불 속을 살피기 시작한 거다.
처음 멀리서 발견했을 때처럼 자리를 옮기며 여기저기 살피기를 반복하던 아이는 혼잣말처럼 추가 정보를 풀어냈다. "아빠가 사준 작은 새인데 잃어버렸어요."
그 말을 듣고 '아빠가 사준 건가 보다'라는 정보를 추가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럼 이미 날아가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과 '그런데 날지 못하는 새도 사고 파나?' 하는 의문들. 옆에 서 있던 우리 아이는 연신 날아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참새들을 보며 '저기 있다'라고 '날아갔다'라고 말했다.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오히려 나는 적극적으로 찾아보기로 마음을 바꿔 정확히 어디쯤으로 갔는지, 이쪽 덤불인지 저쪽 덤불인지를 물었는데 돌아오는 아이의 답은 여전히 애매했다. 이쪽으로 갔다고 했다가 저쪽으로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가 나무 덤불이 아니라 맥문동 사이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거였다. 의구심은 의심이 되어갔지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들여다봤다. 반대쪽이 보이는 나무 덤불이라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보일법 한데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렇게 한참 찾다 그만하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아이가 아는 어른과 만났다. 아이는 그 어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뭐 하느냐는 물음에 내게 말한 것처럼 작은 새를 찾고 있다고 답했다. 선생님이라 불린 어른은 어쩌다 그랬느냐며 작은 새를 왜 데리고 나왔느냐고 하고는 금세 자리를 뜨면서 잘 찾아보라고 하면서 가 버렸다. 그 후에도 몇 분은 더 새를 찾아보는데 아이가 불쑥 언니를 부르러 간다며 자리를 떠났다. 처음에는 길을 건넜다가 조금 멀어지자 다시 건너와 더 멀어지더니 안 보이게 됐다. 덩그러니 남은 아이와 나는 잠시 떠난 아이를 기다리다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멀지 않은 가게에서 아이가 돌아왔는지 몇 번이나 나가 봤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새는, 어디로 간 걸까.
한참 새를 찾고 있을 때 아이는 그 새 이름이 '짹짹콩콩이'라고 했다. 처음 이름을 짓고는 노래하듯 '짹짹콩콩이를 찾아주세요, 아직 날지 못하는 작은 새예요, 짹짹콩콩이를 찾아야 해요.'라고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아이가 한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길은 없다. 나는 다만 함께 걷고 있던 우리 아이에게 나중에 어제 만난 그 아이가 기억나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해 주기 위해 이 글을 적고 있을 뿐이다.
짹짹콩콩이가 있어서 부디 무사히 날아올라 어느 하늘이든 날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그런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