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책방의 겨울을 생각하곤 했다
매년 이맘 때면 떠올리는 비슷한 생각이 있다. 아침의 찬공기와 해 질 녘의 서늘한 바람이 예고하는 겨울을 염려하는 마음이다. 겨울이 길고 차가울수록 책방의 기분은 따뜻하고 포근하겠지만 기분이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책방의 찬공기를 이겨낸 다음에나 움트는 법이다. 가가책방의 겨울은 언제나 길고 몹시 춥다. 올해 겨울도 여지없을 추위가 벌써 마음 한편에서 커져가는 응어리가 되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2019년 10월, 책방을 열고 처음 가을을 맞으며 석유난로를 샀다. 그때는 사람이 없는 책방이 아니라 문이 열려있는 한 사람이 있는 책방을 마음먹었으므로 사람이 불을 지켜봐야 하는 난로를 고르는데 고민이 없었다. 날이 추워지면서 고구마와 호빵을 구워두었다가 드물게 책방을 찾는 이들과 나눠먹던 나날을 보냈더란다. 그야말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모습인데,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낭만적이라며 즐거웠으므로 그날들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창고 한 구석에 박혀 온기를 잃은 지 오래인 난로를 생각하면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서 이렇게 저렇게 궁리를 해보는 중이다.
처음 책방을 열던 마음이 희미하다. 시끌벅적하지는 않더라도 사랑방처럼 훈훈하길 바라던 마음의 여운만 남았을 뿐이다. 이제는 사람이 없으나 다녀간 발길과 흔적이 사람을 대신한다며 책방지기가 있을 때보다 편안하고 따뜻할 거라고, 눈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해도 공간에 담긴 마음은 전해질 거라고 확신하며 마음 편히 지내지만 책방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늘 같지는 않아서 미안하고 불안할 때가 있다. 겨울에는 조금 긴 방학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매년 하는데 그건 사람의 마음이지 책방의 마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짐작해 보는 책방의 마음은 4년이 넘어도 좀처럼 또렷해지지 않는다. 분명 내 마음을 담아 만들었으나 이제는 내 마음만은 아닌 묘한 공간.
아마도 만 명은 다녀갔을 책방은 만 명을 만나지 못한 나보다 더 많은 추억을 안고 있을 것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방문객의 모습과 마음들을 마주하며 책방은 무슨 마음을 먹었을까. 가을 하늘은 맑고 높고 자꾸 푸르다. 이 푸름을 시리게 느낄 무렵이 되면 또 다른 마음이 움틀 텐데, 오늘의 마음은 그치고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