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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31. 2019

프놈펜의 3박 4일

 우리 가족으로 봐서는 아주 중요 행사가 될 목표가 세워졌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 프놈펜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다.


 가까운 이웃의 동네로 잠시 마실을 나선 것도 아니요, 그래도 비행기로 네 시간 이상 날아가야 하는 외국으로의 여행이기에 될수록 경비를 줄이려 다 보니 싼값의 비행기표를 찾게 되어 이른바 저가 항공이나 인터넷상에서 싼값을 알리고 있는 여행사의 홈피를 찾아들어야 했다.


 그렇게 입소문을 듣고 인터넷을 뒤적여서 찾아낸 곳에서 베트남 항공의 호찌민 시(구 사이공)를 경유하여 비행기를 바꿔 타고 프놈펜을 찾게 되는 표를 구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침 10시 15분에 떠나는 베트남 항공사의 호찌민 시 행 VN939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새벽 6시 30분 집을 나섰다.


 여행이라는 언제나 서두름이 공존하는 행사를 위해서는 미리 준비하고 서두르더라도 항상 미진하게 남겨둔 준비 사항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리 큰 차질이 없이 모두가 가뿐한 마음으로 공항 행 리무진에 올랐다. 


 비행기는 호찌민시티에 현지시간 13시 40분에 도착한 후 바쁘게 프놈펜을 향한 VN840 편으로 바꿔 타면서 15시에 이륙한다는 예정이었다.


 여기서 잠깐 스쳐 지나야 하는 호찌민 시라는 도시, 구 사이공과 나와의 짧았던 인연을 되돌아볼 기회를 VN840 항공기가 공항을 이륙하는 순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1975년 4월 초 쌍용양회의 포대 시멘트 5천여 톤을 선적한 쌍용해운의 선박인 목화호 선장으로 사이공 항에 입항하여 짐을 부려 주기 위해 부두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화물량이 많아서 작업이 힘든 것도 아닌 데도 지지부진한 하역 상황으로 인해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어수선한 치안 상태에 대한 루머성 어휘가 연일 우리 귀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던 속에서도 다행히 하역작업은 끝나게 되었지만, 여러 가지 양하에 관련된 하역 서류의 완결은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출항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럽던 당시의 상황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역사의 한 순간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릴 뻔한 시간이었음을 출항한 며칠 뒤 -월남 패망-이란 역사적인 사건의 뉴스로 접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이 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에 진입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부정부패로 밤낮을 지새우던 월남은-우리나라가 그렇게 나 많은 젊은 목숨을 바쳐가며 도와준 보람도 없이- 패망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당시 최후로 사이공을 벗어나기 위해 비행장-탄손누트 공항-에 모였던 군상들의 아비규환 적인 모습은 세계 굴지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나 통신사들의 렌즈를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전해졌었다. 


 이제 그 공항 탄손누트에 안착한 후 바쁘게 비행기를 갈아타자마자 다시 떠나는 일정을 소화해내며 잠시 기억 속에 남아있는 35 년 전의 이곳에서 일어났던 뉴스의 화보와 대비해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때 이 공항을 급하게 떠나던 사람들은 자신이 탄 비행기가 지금 이 정도의 고도에 들어설 때까지는 생사존망이 걸린 조마조마한 상황 때문에 안달복달하였을 것이란 생각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수평의 기체를 유지해주는 편안해진 항속 속으로 빠져들며 내 머릿속은 오늘의 현실로 돌아왔다. 


 드디어 1차 도착지인 프놈펜 공항에 접근을 시작한다. 그래도 명색이 국제공항인데, 작은 시골 간이역 같은 조촐한 분위기의 아담한 모습으로 프놈펜 공항은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입국 사증을 받기 위해 잠깐 머물렀던 번잡한 입국장을 벗어나 입국심사대의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후끈거리며 맞이해준다.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환영객들이 걸어주던 환영의 꽃다발을 엉겁결에 받아 들다 보니 사진 찍겠다는 생각은 그냥 흘려버리게 되었다.

 후끈한 열기 속에 바쁜 퇴근길을 재촉하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프놈펜 시내의 한길에서 연출되고 있다.

숙박한 호텔에서 내려 다 보이든 사원과 한길의 모습

천둥이 치며 억수 같은 스콜이 스치고 지나면 금세 물 바다가 되어 버리는 골목길들이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풀풀 날리는 먼지가 판을 친다.

풍요로운 열대 과일이 지천으로 쌓여 있는 과일 가게의 모습


은은한 두리안의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감돌고 있다. 과일의 여왕이라는 애칭에 어울리지 않게 뾰족뾰족한 모습의 럭비공 같은 모습을 가진 두리안이다.


먹기 위한 사전 과정의 힘듦을 방지하기 위해-냄새가 퍼지는 것도 막을 겸- 구입하는 현장에서 껍질을 벗겨내어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호텔로 반입하였다. 한입 베어 물어 혓바닥에 올려놓기 바쁘게 달콤하게 입안에 흘러드는 부드러운 질감과 함께 어울려지는 짙고 역한(?) 냄새는 어느새 향기가 되어 후각을 마비시키며 달콤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았던 일의 매듭을 찾아낸 후, 이제 시내 관광을 위한 마지막 하루를 톡톡이에 몸을 실으며 나들이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걸쳐서 만들어진 탈 것이 <톡톡이>인데, 관광하기에는 어쩌면 가장 알맞은 탈 것으로 여겨진다. 단지 시내에서는 매연과 먼지를 감당할 배짱과 폐 할 량이 필요할 듯하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인 대량학살의 현장을 보러 수행하는 순례자의 마음 되어 CHOEUNG EK GENOCIDAL CENTER라는 킬링필드 보존 지역을 찾아보았다.


일인당 2달러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 선 킬링필드의 현재의 모습에서 거칠게 혹은 잔인한 수법으로 강제로 생을 마감당하는 업보를 받아내 어야 했던 무수한 캄보디아인들의 억울한 고통을 같이 느끼기에 앞서 그냥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끝이 없어 보이는 무참함에 할 말을 잃어버릴 뿐이다.

층층이 쌓여 있는 인골들의 찔리고 부러져 깨어진 채 정렬해 있는 모습은 마치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우리들 인간의 어리석음을 오히려 위로하는 것 같은 착각에 조차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아 아! 

 어린아이들의 발목을 잡아들고 거꾸로 휘둘러서 머리가 터지고 깨어져 죽어가는 사형집행을 저질렀다는 이 나무는 그런 도구로 쓰이게 끔 딱딱한 껍질을 갖고 태어난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고 지금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일까?

 이러한 팻말들이 킬링필드 곳곳에 세워져 역사를 증언시키고 있다. 그 역사는 히틀러의 만행 이후 인류가 두 번 다시 행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아니던가? 


 같은 나라 같은 핏줄의 사람들이지만, 단지 구정권 관계자, 도시의 부유층이나 지식층, 유학생, 크메르루주 내의 친 베트남파 등이라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신들의 말에 고분고분하게 찬동하지 않는다는 아니 안 한다는 일방적인 판단만으로 그냥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학살당한 그 현장.


게다가 그 대상자가 남녀노소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상식적으론 정녕 이해하기가 힘든 역사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인류라는 동물세계가 행하는 혹시나 자신들에게 되돌려질 수 있는 반대자들의 복수를 초근목피를 뿌리 뽑고 껍질을 벗겨내어 근절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느라고 그리 한 것이 아닐까? 


 한 때는 세계에서도 빼어나게 독특했던 문화와 역사를 자랑했던 나라에서, 또 인류 전체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내며 새롭게 역사를 세워가든 세기인- 20세기의 말년에,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이 연출됐다는 것을 보며 어쩌면 같은 세대를 살고 있든 우리들에겐 일말의 책임도 없는 것일까? 돌아봐야 하는 마음 씁쓸할 뿐이다.

200만 명 학살에 앞장선 주범중 일인 일 수밖에 없는 S-21 교도소 소장으로 이 비극에 참여한 <카잉 구엑 에하브>의 약력과 판결 내용을 게시한 전시관내에 걸린 사진을 보다가, 그가 입고 있는 모 명품 상표의 옷을 보면서 퍼뜩 드는 생각은 앞으로 그 라벨의 옷은 입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 라벨의 의류회사가 이 학살과 관련하여 무슨 잘못한 일은 없겠지만, 악행자가 즐겨 입었던 옷으로 비쳐 버린 변질된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용납해주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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