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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02. 2019

킬링필드 전시관

CHOEUNG EK GENOCIDAL CENTER


 전시관 입장권을 구매할 때 매표원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 한 번 더 덧붙여 <사우스 코리아>라고 말해주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냐고 대답하며 쌩큐라는 말까지 보태며 짓는 그의 표정이 코리아의 사우스와 노스의 차이를 잘 아는 듯싶었다.

입장료의 수입 일부가 가난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는 입장권.


 전시관 담장의 문을 들어서 매표소에서 뒤로 돌아서서 보면 있는 이 장소의 사인보드가 캄보디아 깃발들이 펄럭이는 아래 서 있다.

트럭이 도착하면 즉시 처형이 되든 음산한 일이 벌어졌던 이곳에 지금은 환한 햇볕이 뜨겁다.




                                                  유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납골당.

 

무수한 인골의 파편을 품고 있는 구덩이들

 살해당한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들



200만에 이르는 당시 캄보디아 국민의 4분지 1을 학살한 천인공노 한 일에 참여한 크메르 루주 정권의 주모자 들에 대한 캄보디아 당국의 재판이 금년 중에는 판결로 이루어질 것이란 뉴스를 며칠 전 접하면서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는 건가?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러나 이 죄악의 최고위 주모자였던 폴 포트(Pol Pot) 또는 샐로스 사르(Saloth Sar,)란 자가 그 재판의 서리발 같은 추궁도 받지 않은 채 체벌에서 빠지게 된 것은 너무 불공평한 일로 보인다. 


 비록 그가 체포되어 가택연금 중에 병사했다는 발표로 이 처벌에서 빠지게 된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죄악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죽었으니 인과응보의 진리가 캄보디아에는 통하지 않은 것인가? 


 죽은 이들의 심정을 유추해 보며 안타깝기 만한 우리들 가슴은 살해당한 200만 명 중 어느 영혼의 죽음에 비해서도 폴 포트가 받은 죽음의 결과가 너무나 편안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니 200만 대 1이라는 숫자의 억울하고 약 오르는 심사를 제삼자인 우리라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이는 것이다.


 관람을 끝내고 이곳을 빠져나와 프놈펜의 거리 풍경 속으로 되돌아오며 느꼈던 야릇한 심정은, 불과 30년 전에 있었던 일로서 아직도 주모자들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오늘에 남겨진 이 나라 사람들에겐 그냥 잊혀저 가는 작은 상처뿐 인양 모두의 관심 저만큼 밖으로 빗기어, 살아남은 자들의 맹렬한 오늘의 삶에 빠져든 모습 뒤로 숨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제삼자의 입장이건만-, 마냥 서럽고 억울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은 필요악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킬링필드를 찾아가는 어느 한길 가에서 본 캄보디아 이 씨 종친회 건물의 화려한 색상이 이채롭다.

3박 4일을 묵었던 호텔의 후론트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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