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EUNG EK GENOCIDAL CENTER
전시관 입장권을 구매할 때 매표원은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코리아>, 한 번 더 덧붙여 <사우스 코리아>라고 말해주며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그러냐고 대답하며 쌩큐라는 말까지 보태며 짓는 그의 표정이 코리아의 사우스와 노스의 차이를 잘 아는 듯싶었다.
입장료의 수입 일부가 가난하고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한다는 문구도 들어 있는 입장권.
전시관 담장의 문을 들어서 매표소에서 뒤로 돌아서서 보면 있는 이 장소의 사인보드가 캄보디아 깃발들이 펄럭이는 아래 서 있다.
유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납골당.
무수한 인골의 파편을 품고 있는 구덩이들
살해당한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들
200만에 이르는 당시 캄보디아 국민의 4분지 1을 학살한 천인공노 한 일에 참여한 크메르 루주 정권의 주모자 들에 대한 캄보디아 당국의 재판이 금년 중에는 판결로 이루어질 것이란 뉴스를 며칠 전 접하면서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는 건가?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러나 이 죄악의 최고위 주모자였던 폴 포트(Pol Pot) 또는 샐로스 사르(Saloth Sar,)란 자가 그 재판의 서리발 같은 추궁도 받지 않은 채 체벌에서 빠지게 된 것은 너무 불공평한 일로 보인다.
비록 그가 체포되어 가택연금 중에 병사했다는 발표로 이 처벌에서 빠지게 된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죄악에 대해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죽었으니 인과응보의 진리가 캄보디아에는 통하지 않은 것인가?
죽은 이들의 심정을 유추해 보며 안타깝기 만한 우리들 가슴은 살해당한 200만 명 중 어느 영혼의 죽음에 비해서도 폴 포트가 받은 죽음의 결과가 너무나 편안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니 200만 대 1이라는 숫자의 억울하고 약 오르는 심사를 제삼자인 우리라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이는 것이다.
관람을 끝내고 이곳을 빠져나와 프놈펜의 거리 풍경 속으로 되돌아오며 느꼈던 야릇한 심정은, 불과 30년 전에 있었던 일로서 아직도 주모자들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데도, 오늘에 남겨진 이 나라 사람들에겐 그냥 잊혀저 가는 작은 상처뿐 인양 모두의 관심 저만큼 밖으로 빗기어, 살아남은 자들의 맹렬한 오늘의 삶에 빠져든 모습 뒤로 숨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제삼자의 입장이건만-, 마냥 서럽고 억울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망각은 필요악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킬링필드를 찾아가는 어느 한길 가에서 본 캄보디아 이 씨 종친회 건물의 화려한 색상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