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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ug 22. 2019

잊지말라 0416

다시 한번 더 Good Seamanship을 생각해 보며


 배를 타는 사람들과 땅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둘다 생활해본 경험을 통해 말해보자면) '나 하나 쯤'하고 농땡이를 치게 될 때 잘 드러난다. 


 물론 땅에서도 밥먹듯이 농땡이를 치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그런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겠지만 배에서는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대충하게 되면 어떻게든 바로 티가 나게 되고 그것에 대해 응당 책임을 질 상황이 땅보다 일찍 다가오게 된다. 


 특히, 요즘은 배 자체에서 손보거나 열중해야할 일만큼이나 준비해야할 paper-work와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 역시 소홀히 했다가는 남의 나라 항구에서 배가 출항도 못하고 붙들리거나 검사관에게 자존심 뭉개질 -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 각오부터 해야한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많은 뱃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우리는 정직하게 일하고, 그 댓가를 받는 사람들.'이라는 위안을 가지고 있다. 화물과 선박에 승선해 있는 나와 동료들의 안전을 최고의 목표로 험한 바다를 오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Good Seamanship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며 바다 사나이들이라는 것. 


 그래서 새삼스럽게 2014년 4월 16일의 그 참사를 잊지않고 끄집어 내게 된다, Good Seamanship을 잊어버린 뱃사람들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지. 


 자랑스러워 하는 나의 일이 어느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 말을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그것 하나는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보련다.


-전재성님의 Facebook (https://www.facebook.com/JaesungJeon)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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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쓴 사람은 현재 선원으로 승선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둘째 아들이다.


지난 해(2014년) 4월 16일 진도 부근에서 국적 여객선이 부력을 잃게 된 급격한 경사로 인해 침몰에 이르는 해난사고가 발생하였다.


특히 선원이었기에 더욱 이해하기가 어려웠든, 그 사고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여객선의 경사로 인한 침몰 사고였다. 


더하여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의 고교 2학년생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연을 가진 생명들이 강제로 이승을 떠나야했던 비극이었기에, 전국민의 분노 역시 걷잡을 수 없이 폭발되었고 의분에 떨게 만들었다.


온나라를 떠들석하니 슬픔에 빠져들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의 후유증까지 계속되고 있어, 살아남은 생존자들 역시 슬픔과 실의와 공황장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듯 사고 이후로 더욱 나빠진 선원상에 대해 <뱃놈>이란 이름으로 천하게 불리워 지는 형편을 느끼며 그렇듯 무시 당하거나 천대받는 뉴앙스를 가진 직업으로 평가되는 듯한 분위기에 둘째는 절로 마음이 상했으리라.


어쨌거나 그야말로 점점 더 힘들어지는 환경이지만, 앞으로 모든 선원들이 당연한 Good Seamanship 을 간직하고 실천에 옮길 수만 있다면 진정한<바다사나이>라는 진취적이고 용감한 이름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될거라는 간절한 소망감마저 느껴지는 둘째의 마음을 읽었기에 옮겨본 글이다. 


여기서 뱃사람이라면 꼭 가지고 실천에 머뭇거림이 없어야 하는 Good Seamanship(적당한 선박 운용술 또는 훌륭한 선원정신)이란 의미를 잠깐 짚어보자.


선박 운용술이란 규칙의 규정을 지키는 당연한 일이지만, 더하여 우수한 선원의 특수한 재능 이나 경험만으로가 아닌, 통상의 선원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관행, 경험, 지식, 기술 등에 비추어 기대할 수 있는 운항기술을 말한다. 여기에 이들을 당연한 기본 사항의 틀로 몸에 배이게 습득하여 언제 어떤 현장에서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 보수함을 기본적으로 더해준 말이 Good Seamanship인 것이다.


즉 바다 위라는 속단 할 수 없는 거친 환경 속을 언제나 버티어 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 이를 바탕으로·한 스스로와 직책에 대한 지식과 책임감, 주위 동료 및 선박 자체에 대한 배려심과 여유로운·리더십, 더하여 모든 일처리에서 최선의 타당한 방향으로 바르고 빠르게 대처해내는 선원이라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예방 조치의 능력까지 포함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를 위해 관해당국은 선원들을 위한 여러가지 승선전,후의 교육을 실시하여 그들이 이를 이수해야만 재승선 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일도 만들어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배에서 때때로 우스개 소리지만 <서울 사람들 배 타러 나올 날씨>라는 식의 말을 주고 받으며 칭찬 아닌 칭찬으로 날씨를 두둔해줄 때를 종종 가져보곤 한다.


아주 밝고 맑고 훈훈하지만 결코 덥지도 않으며 산뜻함 마저 머금고 있는 대기가 바다와 맞물려 어울러 준, 전체적으로 둘러 보면 곡선으로 구획짓고 있건만, 정확한 시선 안으로 들어오는 수평선은 일직선으로 펼쳐진 거칠것 없는 허허로운 풍경이다. 그렇게 원의 중심인 해면 위를 조용히 달리고 있을 때쯤이면, 이 모든 흡족하고 풍요로운 환경에 저도 모르게 스르르 빠져들게 될터이고 그 안락한 분위기를 돋보이게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저절로 떠 올려 나열되는 단어들이 -서울사람(놈) 배타러 올 날씨-인 것이다.


 해상생활이란 늘 거칠고 험한 환경의 상황과 함께 육상과는 동 떨어지고 고립된 생활이기에, 세간에선 별로 알아주지 않는 기피 당하는 형편으로 알려 지고 있는건데, 그렇듯 좋은 날씨의 환경만이 있다면, 서울사람을 대표로 표시되는 모든 일에 앞장 선 사람들이 벌써 꿰차고 나섰을 것이지, 별 힘도 없는 자신들에게 까지 쉽게 차례가 돌아왔겠느냐는 식의 자조의 뜻도 살짝 포함한 선원들의 표현이기도 하다. 


 생각컨데 승선생활이란게 그런 저런 힘듦의 연속이긴 하지만, 어쩌다 한번씩 나타나주는 해상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그럴 수 없이 황홀한 풍경이요 편안함으로 다가서기도 하기에, 뱃사람들만이 만끽할 수 있는 축복으로도 여겨진다.


 갑작스레 물 위로 솟구쳐 날기 시작한  몇 마리 날치떼의 날갯짓이 눈에 들며 여유롭게 해면 위를 비상하고 있다. 방금 그들이 잔 파문을 일으키며 해면 위로 떠 오를 때 내 준 소리는 꿈속의 천둥 소리인양 조용함을 머금어 가며 물러서 주고 있다. 


 이렇듯이 어떤 예술가도 표현해줄 수 없는 멋진 채색과 구도로서 우리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순간으로, 찡하니 순간적인 감격에 빠져 들게 만드는 평온의 바다가 종종 우리들에게 주는 조용한 감격의 한꼭지이기도 한 것이다.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조차 나눠주는 그런 아름다움의 표출이 혹여 저녁때이기라도 해서 황홀한 노을 마저 덧 붙여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처절한 아름다움에 멍해질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이, 서울 사람들 제치고 배를 탄 특권이라 우겨보며(?) 느끼게 되는 복 받은 일이라는 자화자찬을 종종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분위기에서의 생활만은 아니기에 우리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압박감 속에서 부딪혀 오는 여러가지의 일처리를 해가며 Good Seamanship을 앞세운 승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선원이라면 각자 자신의 직책에 따른 고유의 일과 전체적으로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하는 일 모두에 대하여, 선원으로서 당연히 어긋남이 없이 일 처리를 해 낼 수 있는 지식과 심성의 보유, 그것이 바로 Good Seamanship이 되는 것이다.

구조정(Rescue Boat) :  해상에서 인명구조등 급히 구조 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구조보트.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선원이면 당연히 지켜내야하는 Good Seamanship을 어떻게 표출했어야 했을까?


 인천에서 출항 전에 체크해야 할 모든 안전사항을 제대로 살피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제때에 이행했어야 했고, 출항 후에는 항해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안전상 약점에 대해 제대로 된 통제를 가할 수 있도록 배의 컨디션을 항시 당시 상황에서 최선이 되도록 유지했어야 했다. 


 실제적으론 이번 사고에서 선장을 위시한 대부분의 선원들이 그런 모든 사항을 제대로 메뉴얼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정도로 말발이 서있는 명령체계를 가지지 못한 임시직이었다고 보여진다. 회사와의 관계는 갑과 을의 엄연한 구별로 인해 제대로 된  대응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하의 편법이 난무한 운항패턴이라 필연적인 사고가 언젠가는 예상되는 형편이었다고 믿어진다. 


 이제 이 모든 해야 할 경우를 놓친 후 배가 사고에 합류하여 기울어지는 형편에 다다랐을 때는 빠른 시간내에 연락할 곳에 연락을 취하여 외부의 도움을 받도록 요청하면서도, 선내에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인명구조를 최상위로 한 바르고 빠른 후속 조처(퇴선)를 병행했어야 했다.


 이때 선박과 화물이라는 물질적인 손실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더욱더 인명이라는 함부로 잃게 할 수 없는 관심 대상을 최상위에 놓은 구조활동을 이행하는 경우로 선원의 상무는 이어졌어야 했다.


배는 포기할지라도 인명 만큼은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게 퇴선의 명령을 적시에 정확히 내려주면서, 그에 따른 행동지침 또한 정확히 이행할 수 있게 알리고 지도하며 승객들부터 먼저 퇴선에 임하게 하는 일만 제대로 했어도, 이번사고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건져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Good Seamanhip을 발휘하기는 커녕 처음부터 배를 버리며 제일 먼저 구조를 당한 선장의 무능함과 비겁함이 더 많은 인원을 살려 낼 수 있었던 좋은 기회마저 빼앗아가며 일을 비극적으로 만들어 간 것이다.


 세상의 갑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한, Good Seamanship은 결코 기대하기가 어려운 해기사 같지도 않은 해기사를 배출하여 그들의 비겁함과 어울려 이번 사고 같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슬픈 결과가 된 것이다.


 세계 각국의 해운사(海運史)에는 자신의 목숨을 배와 함께 하는 장렬한 최후는 맞이했지만 그 이름 만큼은 후배 선원들에게 꼭 기억되어야 하는 분들로 남으신 여러분이 계시어 참다운 해운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비록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될지라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의무를 지켜낸 명예로운 일이었기에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일도 기꺼이 해주신 그러한 선배들을 귀감으로 기리는 가슴 뛰는 경험도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Good Seamanship을 생각해 보며,이 단어가 내포하는 뜻이 몸에 배이도록 생각해보기를 모든 선원 동료들에게 큰소리이지만 소곤거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2015년 0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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