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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씨앗을 앞에 둔 불안감

선장의 판단과 선택

by 전희태



확실하게 누구라도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아니 툭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선장이란 지위는 그렇게 힘들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리라.


어떤 일이든지 마지막에 가서는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데 대한 책임감은 늘 외로움과 버거움이 반복되는 생활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엊저녁의 요동을 느끼던 배의 선체 운동으로 자는 둥 마는 둥 했던 쪽잠에서 깨어나면서 느껴진 상황은 오히려 조용한 배의 움직임이다.


그런 상황조차 좋은 징조일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한 마음을 앞세운 혹시 폭풍 전야의 정적은 아닐까? 하는 지레 겁을 집어 먹은 불안감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 선장인-내 마음이다.


이런 때 선장이 배안에서 가 볼 곳은 당연히 브리지이니 옷을 주섬주섬 끼어 입고 계단을 올라서 <굿모닝> 하는 인사를 보내며 브리지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마침 해도실에 들어와 있던 2등 항해사에게 기상 상황을 물어 점검하며, 저기압의 현재 위치와 본선 위치와의 관계를 확인한 후, 기압 풍향 풍속의 변화도 따져 본다.


기압은 별 변화가 없고 풍향과 풍속이 달라지고 떨어졌으며 파도는 잦아든 편이나 너울이 큰 것이 한 번씩 배를 기우뚱거리게 만들고 있단다.


아직은 밖이 캄캄한 새벽 1시 30분이니 자세히 바깥을 살펴볼 수는 없으나 엊저녁보다는 많이 수그러든 바다이다. 온 하늘이 구름으로 꽉 뒤덮어진 담천이고, 한낮이라도 태양의 빛이 투과되지 않는 어둠 때문에 감정적으로 우울함을 줄 그런 날씨이기도 하다.


어제 아침 우리가 받은 기상도에서는 이미 소멸되어 사라져 버린 태풍 올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며칠 전의 내습으로 인해 50여 명의 사람이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으며 전국 곳곳에 물난리가 나고 하여간 굉장히 큰 피해를 준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기야 서해안 쪽으로 약간 치우치긴 했지만, 우리나라 남쪽 한라산에서 북쪽 백두산까지의 여정을 달리며 남이고 북이고 할 것 없이 완전히 통일을 하여 행군한 양 휩쓸고 갔으니, 대비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인간의 한계치를 극복 못하니 그에 따른 피해는 여전했을 것이다.


처음 우리의 앞쪽에서 생겨 날 때부터 큰 태풍이 아니었으면 바랐고 또 그렇게 된 줄 알았는데 워낙에 정통으로 우리나라를 치고 들어갔으니 피해가 커진 모양이다.


기왕지사 피해는 인정하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난 뜻을 하늘이 우리 민족을 하나로 합치라는 그래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역경이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힘도 갖고 있으니 진짜로 통일을 창출하는 한 기회로 잡았으면 하는 소박하지만 어찌 보면 어수룩하기조차 한 상념을 품어 본다.


아침 5시 40분에 일본에서 발신해주는 기상도를 다시 수신해 검토한 후, 나의 태도를 결정하기로 작정하며, 브리지를 내려왔었는데, 다행히 1000 hpa 의 크기를 아직까지 간직한 열대성 저기압은 북서쪽을 향해 서서히 9 knots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온다.

POSITION POOR라는 딱지가 아직까지 떨어지지 않음이 태풍 -올가- 보다는 훨씬 크게 자라날 소지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인공위성 사진이 보여주는 구름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 그 구름이 모두 하나로 모여 힘을 합해 준다면 <초 A급 태풍>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일은 제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로 만에 하나 발생이 불가피하다면 어느 정도 육지는 피하여 이동하고 소멸되어 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하는 마음이다.


이렇듯 태풍이 바다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소멸되기를 바란다는 뜻은, 대다수 인간들이 사는 육지가 받는 피해가 너무나 큰 범위의 가혹한 시련이기에, 그래 보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 배안-바다 위에서- 사는 선원들이 받는 피해는 목숨까지 걸린 큰 일이기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마음가짐으로 가져본 생각이다.


결국 대다수를 따르기 위한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의 한 복판에 우리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로 다가 설 경우에는, 사실은 어디로 가든 빨리 육지로 가거라! 하는 마음을 다시금 갖게 되는 이유는 태풍은 육지로 올라가면 빠른 시간 내에 약해져서 소멸의 길을 밟기 때문이다.


날이 밝아오며 보이는 바다는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고 파도도 수그러든 모습으로 평온함을 보이어 밤과 새벽에 혼자의 지레짐작으로 끌탕을 치던 내 마음을 한결 다독여 주며 안심하게 만든다.


어둠이 주는 공포가 괜한 마음의 고생을 불러일으켜 잠을 놓쳐 가며 새벽의 이등 항해사와 일등 항해사의 당직 시간을 번거롭게 해 준 모양이지만, 선장이란 직책은 이렇게 스트레스도 제법 있는 직책이란 걸 한 번 더 실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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