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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워 놓은 오징어

갈매기의 토사물

by 전희태


SNB10040.JPG 선미루에 있는 Bollard의 모습


어제 낮.

비행기의 출현이 혹시나 잘못된 일이 생겨서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신경께나 썼지만, 그런 게 아니라 제대로 일을 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 후 다시 재개하여 끝을 내었던 갑판 청소였다. 그렇게 석탄 찌꺼기 수세 청소로 한결 깨끗해진 갑판 위를 오랜만에 새벽어둠 속 운동으로 돌기 시작했다.


아직은 남반구를 항해 중이니 시계 바늘이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돌기로 한 내 멋대로의 운동방식을 따른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대로 하는 방법으로, 지구 상 남반부에서는 북반부와는 반대로 모든 열대성 저기압이 중심으로 모여드는 바람의 방향이 시곗바늘 도는 방향으로 돌아든다는 법칙을 원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열대성 저기압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여서 항시 무사한 항해를 이루겠다는 염원을 이루어 보려고 나 혼자 실시하는 운동 방법이다.


물론 북반부로 들어서면 시곗바늘 돌아가는 반대 방향을 따라 갑판을 도는 운동을 하고 있으니 방향의 변화는 적도를 중심으로 한 남, 북반부로 갈릴 때마다 바꿔주는 것이다.


좌현 쪽 문으로 나가 선수 쪽을 향해서 시작한 배를 한 바퀴 돌아주는 선회의 운동이 우현 쪽으로 들어서려면 선수루 갑판(Forecastle Deck)에 올라선 후 우현 쪽 주갑판으로 내려서야 하는 데, 지금 그곳 F'cle Dk에는 바람이 세고 파도도 이따금 쳐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안전한 걷기는 보장받기가 어려워 1번 창 옆까지만 갔다가 그대로 되돌아서는 왕복으로 운동을 계속하기로 한다.


스무 나흘 날 가느다란 손톱 같은 달빛이 허공 중에 걸려있어 그렇지 아직 새벽 다섯 시는 어둠 속에 잠겨있는 시간이다. 그런 어둠에 대한 공포가 어느 순간 파도가 처 올지도 모른다는 핑계에 얼른 동조하며 발걸음을 중도에 돌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섯 번을 왕복하고 나니 구름이 잔뜩 낀 날씨이긴 하지만 어느새 여명이 찾아들어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다.


어둠이 물러나 사방이 잘 보이기 시작하니 얼른 제대로 돌기로 다시 마음을 바꾸어 1번 창 앞에서 뒤돌아서지 않고 그대로 선수루로 올라 우현 쪽으로 빠지기로 한다.


배의 맨 앞쪽인 선수루의 약간 오른쪽 BULWARK에 가린 곳을 지날 무렵 무언가 허연 무더기가 Bollard(*주 1)의 한쪽 끝 부근에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갈매기가 수북이 싸놓은 배설물의 하얀 덩어리들이다. 조금 더 가서 있는 Bollard 가장자리에는 아직도 온전한 모습을 가진 한 무더기의 작은 새끼 오징어의 뭉치가 있다. 이것은 갈매기가 먹었던 것을 토해 놓은 토사물로 보인다.


신발 끝으로 끄적거려 보니 세 마리의 온전한 오징어와 조각이 난 한 마리 등 모두 네 마리의 오징어가 한데 뭉쳐 있다.

전에 다른 배를 탔었을 때에도 이런 갈매기의 토사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왜 배에 와서 먹었던 것을 토해 놓고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것이라도 난파선에서 먹을 것이 떨어진 경우에는 훌륭한 먹을거리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떠올리며 지나친다.

생각의 꼬리가 구난 식품에 미치니, 날치가 바다 위를 날아올랐다가 물 위에서 자신의 비상을 가로막는 물체를 만나면 그대로 넘어가려는 성질로 한 번 더 솟구쳐서 높이 오르는데, 이때 구명정에 타고 있는 경우에는 못 넘어 가게 돛이라든가 그런 방해물로 막아주어 그곳에 부딪혀 떨어진 놈을 구난식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사실 제법 큰 날치는 건현(*주 2)의 높이가 10 미터가 넘는 대형선의 갑판 위에도 이따금 올라와 말라죽어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그들은 파도 위를 넘어 날아가다가 배의 건현을 만나면 피하려고 더 높이 날아오르지만 또 한 번의 갑판상 높은 구조물인 해치 코밍은 넘지 못하고 걸리어 결국 갑판 위로 떨어져 시간이 지나며 건조된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아침 새벽의 운동은, 이렇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흐름을 운동의 순간과 결합시켜 진행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예정했던 운동량을 다 채우는 시간이 되어 땀을 닦고 끝내게 만든다.


오늘은 생각의 끝이 구명정에 도달했음을 참작하여 구명 안전설비를 점검해 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구난 제품들을 살피는 것을 과업에 포함해도 될 것 같다.


주*1 : 선박의 계류삭을 묶어주는 계선주로 나란히 두 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계류삭을 당겨서 더 이상 풀려나가지 않도록 그 기둥에 8자로 돌려가며 묶어 준다.


주*2 : 건현(乾舷)- 흘수선에서부터 상갑판 현측까지의 높이, 즉 선 저에서부터 상갑판까지의 현측의 높이 중에서, 짐을 실어 물밑으로 갈아 앉은 깊이가 흘수이고 나머지 물 위로 나와 있는 부분이 건현이다.(전현 측 높이-흘수선 깊이=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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