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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출항과 기관고장

최선을 다해 조출을 했건만

by 전희태


PC145136.JPG 도선사의 하선을 기다리고 있는 도선 보트


이제는 내리던 비까지 그쳐준 새벽으로 달려가는 부두가로 통차가 조용히 접근해 오더니 귀선 하는 선원들을 하차시켜준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워요!

-예, 안녕히 주무세요.

하차한 선원들의 고마운 인사를 들으며 떠나간 통차가 내어 준 자리에는 커다란 짐승 같이 웅크리고 있는 작은 언덕만 한 본선이 기다랗게 부두로 내려준 통로, 갱웨이 레더(현문사 다리)가 부두 바닥 위에 플랫폼을 걸쳐 놓은 채 어서 올라오라고 몸짓하듯 기다리고 있다.


귀선 하는 선원들은 본선에서 퍼낸 석탄을 계속 저탄장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컨베이어 벨트 라인들이 어둠 속을 꿰뚫어 쉼 없이 내는 소리를 친근한 노래라도 되는 양 귀속으로 담아주며 새벽의 귀선을 하느라 현문사다리로 올라선다..


밤늦은-아니 이른 새벽- 시간이라 대부분의 선원들은 잠들어 있고 현문 당직자만이 맞이해 주며 오늘 오후 인 16시 30분에 출항 예정이라 알려준다. 그대로 방으로 올라와서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두 시가 지나고 있다.


아침이 되어 모자라는 잠을 쫓아내며 자리를 차고 일어나 상황을 살피니 16시 30분이라던 출항 예정 시간이 당겨지어 14시 도선사 승선 예정이란다.

이렇듯 시간 단위로 당겨지든 출항시간은 점심식사 후 최종 체크하여 14시 30분에 모든 계류삭을 걷어 들이도록 진행되었다.


드디어 한 달이 넘는 항해 기간이 소요되는 남아공화국까지의 긴 항해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부두에서 떨어지고 선수를 외해 쪽으로 세워주며 터그보트를 모두 해색 시켜준 후 슬슬 속력을 올려 먼 항해에 들어섬을 준비하려는데 갑자기 따르릉 전화소리가 바쁘게 울려온다. 기관실의 기관장으로부터 온 전화이다.


이번 정박 기간 중에 갈아 끼워준 주기 밸브 두 개가 있었는 데, 기관을 사용하며 보니 모두 공기가 새어 나와 다른 것으로 바꿔 끼워야 한다는 보고이고 통보이다.


순간 답답한 마음이 명치끝을 훑고 지나지만 어찌하겠는가? 빨리 안전한 자리로 가서 수리를 한 후 떠나야 하는 계획을 떠 올릴 수밖에.....


항내에서 투묘하면 타선박의 교통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다시 항세도 내어야 하는 일도 발생될 거고....

그러니 어쨌던지 항계 구역 바깥으로 나가 투묘를 하든가, 아니면 드리프팅(기관을 사용치 않고 그냥 떠 있는 상황)을 하면서 수리에 임해야 할 형편이다.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가능한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야 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이런 속력으로는 두 시간 이상 움직여야 하니 최대한 빠르게 항계 밖으로 나가는 일이 급선무이다.

답답한 상황이지만 하프(반속)의 속력을 유지한 채 대도섬 밖까지 나가기로 최종 결정한 후 항만당국에도 상황을 보고해준다.


브리지에서도 귀 기울이면 공기가 힘없이 빠지며 내는 치이익~칙 거리는 소리가 엔진룸에서 들리고 있다. 발브가 새면서 피스톤 헤드 등이 파 먹히는 소리이니 기관실에선 그야말로 뼈가 깎이고 살이 튀는 느낌에 진저리 쳐지는 상황일께다.

어쩔 수 없이 기관을 돌리고 있는 기관사들의 침통한 표정은 안 봐도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더 이상 별다른 일이 겹쳐지지 않게 바라는 마음으로 움직임 끝에 드디어 항계를 벗어나는 지점에 도달했다.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걷어내며 기관을 정지하도록 텔레그라프를 잡아준 후 즉시 밸브 교체 작업을 시작하도록 기관실에 통보해 준다.


이제부터는 본선의 비상상황에 대처함이 기관부 당직자이기보다는 브리지 근무자가 더 속이 타들어가는 상황으로 변했다. 항로와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배들이 드나드는 부근에서 기관을 사용할 수 없는 일종의 Deadship 상태로 떠 있으니 말이다.


가까이 접근하는 타선이 신경 쓰이고, 또 본선이 조류나 바람에 의해 위험한 해역(천소, 얕은 곳)으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니 열심히 주위를 살피며 위험한 상황이 안되도록 위치를 고수하는 당직에 철저히 임해야 하는 것이다.


조마조마한 브리지 당직이 40여분쯤 흐른 후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즉시 정상적인 작동을 확인한 후 예정된 항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결과에 안도하며 Rung up Eng. 을 걸어준다.


그동안 계속 청취하고 있던 VHF 전화를 통해 우리 배와 나란히 접안해 있던 D해운의 S벨 호도 16시에 호주로 가기 위해 출항을 하였다는 보고를 항무 당국에 하는 게 들려온다.


계속 꾸물거리다간 그 배에게도 추월을 당하겠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는데 그래도 한 40분 만에 수리를 완료하여 출항하게 되니 다행이다.


우선은 우리가 앞서가고 있지만 어디쯤에서 따라 잡힐까? 하는 기분 나쁜 예상이 순간적으로 들다가,

아하! 그 배의 목적항이 우리와 겹치는 항구가 아니라 호주이지 하는 떠 오름에 안도의 마음 절로 든다.

따라 잡히더라도 도착항에서의 선착선 권리를 빼앗기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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