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보다는 모난 돌이 정 맞는 게 먼저인가?
금항 포항 기항 시에 새로 승선한 사람 중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기관부원인데 저녁 식사 중에 이번에 승선했다고 인사를 왔을 때 기관장이 농담같이,
-가위를 준비해 뒀다가, 밤에 잘 때 수염을 깎아 버려야 하겠어!라는 말을 하니,
-이건 제 트레이드마크인데요.
정색을 하며 절대로 깎을 수 없다는 신념을 보이는 발언으로 일언지하에 반격을 가한다.
아마 그 콧수염에 대한 사전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거 맹랑한 친구잖아, 조금 건방지고 어딘가 모난 곳을 가져 정이라도 맞아야 할 친구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기에 힐끗 쳐다봤다.
괜히 사람을 미워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타인들과는 너무 다르게 톡 튀는 일을 해내는 그 친구가 어딘가 얄밉고 뻔뻔스러움을 얼굴에 깔고 있다고 느껴져 앞으로의 생활에서 줄기차게 지켜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 게 만든다.
해군에서는 수염을 기르러면 참모총장의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하지만, 사실 상선에서 개인적으로 수염을 기른다던가. 유별나게 튀는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막는 어떤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모습을 고집하는 선원을 그 이유로 너무 핍박하거나 왕따를 시킨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동료들과 잘 어울리기 힘들게 너무 개성이 강한 사람은 사실 승선 임무를 갖고 근무하기에는 선박 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용납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좋게 이야기하면 개성이 강한 사람이 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독선적이고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성향이 크기 때문에, 배와 같이 외따로 떨어진 사회에서는 같이 적응하며 살아가기가 어려운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오전 중에 통로에서 만났을 때 그는 통신장을 따라오며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통신실로 따라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그 친구가 무슨 일로 통신실로 찾아왔었는지를 물어보니 E-MAIL을 다른 배(아마도 전에 타던 배였던 것 같다)로 보내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라 했다.
-그런 걸 하려는데 보고도 안 하고 한단 말이야? 그 친구 대개 건방진 친구로군.
하는 말이 내 입에서 불쑥 나오려는 걸 얼른 삼키며 넘겼었다.
본선에서 다른 곳으로 개인적인 통신을 하는 데는 선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정식으로 이러저러한 통신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여 허가를 받은 후에 실행을 해야지 일방적으로 통신장을 찾아가서 송신을 했다는 것은 선내 내규 위반이며 위계질서를 무시한 행위이다.
그렇기는 해도 요사이 집에서 본선을 통해서 보내는 E-MAIL을 무료로 취급해서 전달해 준다는 회사의 방침도 있기에 어느 정도 이해는 해줘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관행을 준수한다면, 본선의 책임자인 나의 의견을 듣고 난 후에 실시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한 일이라 여길 수 있겠는데 그는 제 마음대로 실행한 것이다.
첫날의 인상에서 어딘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어 계속 주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그런 생각이 그르지 않았다는 식의 결과를 확인시켜주니 그 친구와 우리 배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하겠다는 짐작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