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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쓰임새

집으로 전화 거실 분들은 지금 즉시 통신실로 오십시오

by 전희태
IMG_0140(3663)1.jpg 서울 숲 곤충관에 있는 꽃나무.


-집으로 전화 거실 분들은 지금 즉시 통신실로 오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집으로 전화 거실 분들은 지금 즉시 통신실로 오십시오.

활짝 개어진 날씨만큼이나 밝아 있는 통신장의 환한 목소리가 선내 방송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통신실의 형편을 짐작해 보며 귀를 기울이니, 한층 아래인 내 방이지만 이미 서울 무선과 접선이 되어서 우리 집으로 전화 연결을 하려고 시도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다. 얼른 일어나 올라갈 준비를 하려는데,

-선장님 계십니까? 하는 통신장의 목소리가 방 밖에서 들려온다.

그새 전화가 연결된 모양이구나 싶어 급히 일어나 문을 빠져나오려는데,

-선장님, 전화가~ ,

나를 보고 전화가 연결되었다는 말을 해주려고 앞에선 통신장의 알림이 오히려 바쁨에 방해가 된다.

-알았어요! 빨리 올라가야지, 뭐해요.

하며 앞장서서 통신실로 향한다.


연결된 채로 놓여 있는 수화기를 얼른 집어 들면서 옆 의자에 앉기 바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보세요,

말하기가 바쁘게

-저예요.

반가운 아내의 목소리가 응답해 온다.

나는 통화음질이 깨끗하게 잘 들리는데 아내는 내 목소리를 그저 그런대로 들을만하게 듣고 있단다.


-엊그제 병원에 입원한다던 OO는 지금 상태가 어떻게 됐어요?

하고 심근경색을 수술하게 되어있던 친구의 근황부터 물으니 결과가 좋게 잘 수습되었단다.

이제 내 나이가 그런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에 노출된 세대에 편입된 것을 실감한다.

그 친구 소식은 지난번 잠깐 집에 갔을 때 듣고 떠나왔었기에 처음으로 물어본 것인데 괜찮다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내는 완치는 아니고 앞으로 재발을 자주 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걱정을 거든다.

-맞아, 그 병은 함께 동무해서 죽을 때까지 데리고 다녀야지 뭐!

나도 아내의 의견에 맞장구를 쳐준다.

이제 우리 식구들의 안부를 챙기며 어머니도 바꾸고 막내 아이도 바꿔서 통화를 한다.


서울 무선을 부를 때 옆에 없었던 나 때문에, 연결이 된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를 부르느라고 기다리게 했던 시간까지 계산하여 최소 두 통화는 될 것이라 작정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더 길게 이야기를 하면 몇 초 상관으로 다시 한 통화가 더 추가될 것이라 예상하며 서둘러 통화를 끝내기로 한다. 아슬아슬한 시간 차이로 몇 초는 지났을 것 같은데, 서울 무선에서는 두 통화라고 확인하여 통보해준다.


지난 항차 통화 때는 3분이라고 스톱워치로 확인하며 한 통화로 끝냈던 통화를 두 통화라고 매몰스럽게 이야기하던 교환수 때문에 한참을 기분 상해 있었는데, 오늘의 교환수는 응대도 매우 점잖고 친절하여 기분이 좋다.


토요일이라 홀드 내의 빌지 박스를 청소하고 마대를 덮어주어 선적 후 바닥에 고이는 물을 걸러내어 뽑아낼 수 있게 선창 내의 선적 준비를 위한 마지막 청소 작업을 오전 중으로 끝내기로 했었다.


이런 예정했던 모든 작업들을 빠듯하게 끝낸 선원들이 홀가분한 마음 되어 저마다 전화를 신청하려고 선내 거주구역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통신실을 힘들어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온다.


일단 전화 신청의 순서가 뒤로 잡힌 사람들 몇몇이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온다며 자리를 떠나면서 잠시 통신실이 어수선하니 부산스럽다.


육상에서 같으면 주말의 황금 같은 시간대이니 가족들과 함께 어디라도 다녀옴직한 즐거운 때이지만, 항해 중인 여기 배 안에서는 전화통에 매달려 서로의 소식을 묻고 전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만족을 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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