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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언제나 물 반 고기 반을 꿈꾸며 낚싯줄을 드리우지만...

by 전희태


DȰ12(1817)1.jpg 동승중 브리지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아내의 모습.


흡사 민첩한 야행성 동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어제저녁 무렵부터 오늘 아침까지에 협수로 통과, 내항 도착 그리고 돌핀부두에 접안이 아무런 지체 없이 순조롭게 이어지며 진행되었다.


엊저녁 황혼이 질 무렵 헬리콥터로 나타난 REEF 수로 안내인(도선사)인 MARINE PILOT를 승선시키며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밤새 HYDROGRAPHER PASSAGE를 달려왔고 새벽 5시에는 또 다른 헬리콥터를 타고 HAY POINT의 HABOUR PILOT가 올라와 부두에 접안시키는 작업까지 일관되게 이어졌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사항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지켜보면서 날밤을 새운 것이다.

머리가 띵한 것이 아무래도 눈을 좀 부치고 누워서 피곤함을 걷어 내야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낸다.

접안 후 승선한 대리점원이 입항수속을 마치고 떠나간 후, 아침식사도 대충 끝내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방문을 닫아 놓고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침실 곁의 사무실 겸 응접실에서 책을 읽기로 하고 있었다. 한 30분이 지나 잠이 들 만할 무렵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어 아내가 나를 깨우러 침실로 들어온다. 할 수 없이 일어나 몸 매무새를 고치며 누가 나의 생체리듬을 휘저어 놓는가? 괘씸한 생각을 하면서도 억지로 일으킨 몸을 끌고 응접실로 나가 사무실 출입문을 여니 선식 회사 직원이 서있다.


나를 찾지 않고 조리장만을 만나서 일을 보고 갈 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피곤을 풀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깨웠으니 내 표정은 별로 밝지 못했으리라.

시큰둥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미안한 기색을 갖지 않은 그저 말 뿐인 느낌이 든다.

그로서는 자신의 직책상 본선과의 거래를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선장을 안 만날 수는 없었을 터이니...


결국 잠이 도망가 버려 다시 누워있을 수가 없어 일어나서, 마땅히 갈 곳도 별로 없어 항해 중의 버릇인 브리지를 향한 발걸음을 하기로 한다. 물론 이번에는 심심해하고 있던 아내를 동반하여 브리지에서 커피를 마시자는 말로 같이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부두에 정박 중이라 출항 전까지는 모든 항해계기도 쉬고 있는 조용한 브리지에 올라 당직자들이 사용하는 커피 포트를 이용하여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커피 한 스푼을 넣어준 컵에다 물을 부으려고 들어준 커피 포트의 쌔애액 쌕 거리는 물 끓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와아! 하는 떠들썩한 환호 소리가 갑자기 후부 갑판 쪽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마침 낚시를 즐기는 조타수 U 씨가 부두 접안 후 갑판을 둘러보는 짬짬이 낚싯대를 POOP DECK에서 내려놓고 한 번씩 지나칠 때마다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낚시에 월척의 제법 그럴듯한 고기를 올리면서 같이 있던 사람들이 낸 환호성인 듯싶다.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라면 밖으로 상륙하는 시내 구경을 추진하련만 시내에 나가봐야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있어 가볼 곳이 없다는 대리점의 이야기에 상륙을 포기하고 있던 중이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 속에서 그 고기의 건져냄은 조금이라도 낚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너도나도 후부 갑판으로 모이게 만들어 주는 일이 되었지만, 통상 이곳에서는 부두에 접안한 후 드리워 주는 낚시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풍경이었는데 어쨌든 고기가 물린 것이다.


-여보 우리도 얼른 내려가 봅시다. 제법 큰 놈을 잡은 모양이네요.


물이 부어진 커피잔을 급히 들고 윙 브리지로 나가 후부 갑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내려다보다가 서둘러 현장으로 가보자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여행길에 조그마한 이야깃거리라도 만들어 주기 위해 이런 풍경에는 아무래도 낯이 설은 그녀를 불러내려 마수거리로 걸려든 첫 번째로 큰 그 고기를 힘들게 들고 있는 포즈라도 취하게 하여 사진 한 장을 찍어두자는 생각도 가져본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보려던 마음과 함께 도착한 선미 갑판에서는 성미 급한 생선회의 도사들이 제법 큰 도미 한 마리를 그 사이를 못 참고 그야말로 회를 치고 있어 사진 찍을 일을 다음으로 미루게 만든다.


이제 더 이상 낚시에 걸려드는 고기가 없는 예전과 같은 일이 계속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하나 둘 Poop Deck를 떠나기 시작하였고, 우리도 철수하면서 오늘의 후부 갑판 낚시터는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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