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물 반 고기 반을 꿈꾸며 낚싯줄을 드리우지만...
흡사 민첩한 야행성 동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어제저녁 무렵부터 오늘 아침까지에 협수로 통과, 내항 도착 그리고 돌핀부두에 접안이 아무런 지체 없이 순조롭게 이어지며 진행되었다.
엊저녁 황혼이 질 무렵 헬리콥터로 나타난 REEF 수로 안내인(도선사)인 MARINE PILOT를 승선시키며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밤새 HYDROGRAPHER PASSAGE를 달려왔고 새벽 5시에는 또 다른 헬리콥터를 타고 HAY POINT의 HABOUR PILOT가 올라와 부두에 접안시키는 작업까지 일관되게 이어졌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사항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지켜보면서 날밤을 새운 것이다.
머리가 띵한 것이 아무래도 눈을 좀 부치고 누워서 피곤함을 걷어 내야겠다는 핑계를 만들어 낸다.
접안 후 승선한 대리점원이 입항수속을 마치고 떠나간 후, 아침식사도 대충 끝내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방문을 닫아 놓고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침실 곁의 사무실 겸 응접실에서 책을 읽기로 하고 있었다. 한 30분이 지나 잠이 들 만할 무렵 누군가 방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어 아내가 나를 깨우러 침실로 들어온다. 할 수 없이 일어나 몸 매무새를 고치며 누가 나의 생체리듬을 휘저어 놓는가? 괘씸한 생각을 하면서도 억지로 일으킨 몸을 끌고 응접실로 나가 사무실 출입문을 여니 선식 회사 직원이 서있다.
나를 찾지 않고 조리장만을 만나서 일을 보고 갈 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피곤을 풀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깨웠으니 내 표정은 별로 밝지 못했으리라.
시큰둥한 표정으로 응대하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미안한 기색을 갖지 않은 그저 말 뿐인 느낌이 든다.
그로서는 자신의 직책상 본선과의 거래를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선장을 안 만날 수는 없었을 터이니...
결국 잠이 도망가 버려 다시 누워있을 수가 없어 일어나서, 마땅히 갈 곳도 별로 없어 항해 중의 버릇인 브리지를 향한 발걸음을 하기로 한다. 물론 이번에는 심심해하고 있던 아내를 동반하여 브리지에서 커피를 마시자는 말로 같이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부두에 정박 중이라 출항 전까지는 모든 항해계기도 쉬고 있는 조용한 브리지에 올라 당직자들이 사용하는 커피 포트를 이용하여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커피 한 스푼을 넣어준 컵에다 물을 부으려고 들어준 커피 포트의 쌔애액 쌕 거리는 물 끓는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와아! 하는 떠들썩한 환호 소리가 갑자기 후부 갑판 쪽에서 아련하게 들려온다.
마침 낚시를 즐기는 조타수 U 씨가 부두 접안 후 갑판을 둘러보는 짬짬이 낚싯대를 POOP DECK에서 내려놓고 한 번씩 지나칠 때마다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낚시에 월척의 제법 그럴듯한 고기를 올리면서 같이 있던 사람들이 낸 환호성인 듯싶다.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라면 밖으로 상륙하는 시내 구경을 추진하련만 시내에 나가봐야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있어 가볼 곳이 없다는 대리점의 이야기에 상륙을 포기하고 있던 중이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 속에서 그 고기의 건져냄은 조금이라도 낚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너도나도 후부 갑판으로 모이게 만들어 주는 일이 되었지만, 통상 이곳에서는 부두에 접안한 후 드리워 주는 낚시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풍경이었는데 어쨌든 고기가 물린 것이다.
-여보 우리도 얼른 내려가 봅시다. 제법 큰 놈을 잡은 모양이네요.
물이 부어진 커피잔을 급히 들고 윙 브리지로 나가 후부 갑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내려다보다가 서둘러 현장으로 가보자고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여행길에 조그마한 이야깃거리라도 만들어 주기 위해 이런 풍경에는 아무래도 낯이 설은 그녀를 불러내려 마수거리로 걸려든 첫 번째로 큰 그 고기를 힘들게 들고 있는 포즈라도 취하게 하여 사진 한 장을 찍어두자는 생각도 가져본다.
그렇게 사진을 찍어 보려던 마음과 함께 도착한 선미 갑판에서는 성미 급한 생선회의 도사들이 제법 큰 도미 한 마리를 그 사이를 못 참고 그야말로 회를 치고 있어 사진 찍을 일을 다음으로 미루게 만든다.
이제 더 이상 낚시에 걸려드는 고기가 없는 예전과 같은 일이 계속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하나 둘 Poop Deck를 떠나기 시작하였고, 우리도 철수하면서 오늘의 후부 갑판 낚시터는 자연스레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