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하지만, 병을 이겨낸 큰 아들
1997년 05월 24일
연가 끝 재승선, 휴식과 즐거움을 기대하며 하선했던 연가의 기간이 어느새 3개월 이란 날짜로 흘러갔건만 바라고 있던 편안함을 가진 멋진 추억은 만들지도 못하고 마치 무엇에 흠씬 두들겨 맞은 듯 피곤함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비감함만을 안고 다시 배로 찾아왔다.
책임 선장 직책이니 먼저 내렸던 그 배에 다시 승선하는 거지만 교대지는 태안항이다. 그냥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야속한 일이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하자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수용했지만 힘듦은 어쩔 수 없이 남아 있었다.
큰 애의 끝이 어딘지 알기 두려운 건강 상태와 그로 인한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 아내가 혼자서 속으로 앓고 있는 의심스러운 소화기능 상태, 이 모두를 까발리어 들쳐 내려 하기에는 어딘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에 우리 가족은 저마다 속으로 끙끙 앓고 있을 뿐이었다. 우선 당장 해결해야 할 큰일은 큰 애의 치료 결정이었다.
현대 의학의 개척되어 나가는 진도를 믿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한다는 '자가 골수 이식 수술' 방법에 의한 뇌종양 치료에 대해, 그 결과가 만족할 만 큼 좋을 것이란 기대감만을 믿음으로 가지며 항암치료를 시작하도록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05월 26일 - 본격적인 큰애의 투병 시작 -
일차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뇌종양의 본격적인 치료를 위한 자가 골수 이식 수술을 시술받기 위해 큰 애는 서울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직 무균실인 10층으로 내려가지는 않고 현재까지는 건강해 보이는 몸으로 투병에 임하고 있다고 오늘따라 음색이 변조되어 마치 남자의 말소리처럼 변해버린 아내의 목소리가 SSB무선 전화를 통해 전해준다.
큰 애와 병실을 같이 쓰고 있는 새봄이라는 16살짜리 꼬마의 안부도 묻고 쾌유를 빈다는 내 말을 그 애 가족에게 전해 달라며, 더 할 말이 있은 것 같은데 그냥 전화를 끊었다. 열심히 병간호의 뒷바라지를 하여 내가 다시 귀항하는 날에는 건강을 되찾은 아이와 그렇게 힘든 일을 무사히 잘해 낸 아내로 만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05월 31일
어제부터 시작한 약물치료에 벌써 오늘 아침 밥맛이 없다며 힘들어한다는 아내의 전해주는 말소리에 무슨 이야기로서 힘을 북돋우며 이겨내도록 깨우칠 수 있을까 생각도 들고 예전에 던해 들은 이야기에 구역질을 참고 이겨 내기가 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힘들면 밥을 보기도 조차 싫어질까? 오순도순 이야기로 옆에서 달래고 어르면서 뒷수발을 할 아내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모습을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니 애잔한 마음에 가만한 한숨만을 숨어 내쉬면서도 그런 내색일랑 아예 하지 않으려 힘내라 열심히 먹어야 이기지 않니? 하며 떠드는 말을 전해주라며 전화를 끊는다. 우리나라로부터 거리가 점점 멀어지니 다시 돌아올 때까지 SSB전화는 힘들어질 것 같다.
저녁 무렵, 보르네오에 접근이다. 도둑 방지 야간 당직으로 전 선원의 긴장이 시작되었다.
06월 05일
큰 애의 현 상황을 들어 보아도 시원하게 마음 뚫릴 일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은 토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이번에는 비싼 위성전화를 건다. 한참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나서도 받지를 않아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거니 마침 아내가 받는다.
그러나 아내의 목소리는 평소의 부동심을 가진 억양이 아니고 약하고 힘든 고난에 휩싸여 있음을 알 수 있는 의기소침된 말소리라 내 가슴을 철렁하니 만든다. 방금 MRI 촬영을 하고 왔다면서 종양은 많이 줄어 들은 것으로 나타난 걸로 보아 현재 큰 애가 힘들어하는 것은 약물치료의 후유증이란다.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을 옆에서 보며 안쓰러워진 마음에 불쌍한 생각마저 들어 눈물이 절로 나오는지 울먹이는 목소리가 내 눈가에도 전염되어 온다. 큰 애의 귀에 수화기를 대어 준다기에 ‘우성아 우성아’ 하며 몇 번 부르는데 갑자기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히 울려나오며 전화를 끊으라고 서두른다.
우성이의 용태가 급하게 나빠진 모양인가? 알길 없이 엉겁결에 전화를 끊고 나니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 다시 전화를 걸까 하다가 내일 걸지 하는 독한 마음을 먹으며 일단은 통신실을 벗어났다.
방에 내려왔지만 속이 타는 궁금증을 도저히 이겨 낼 수 없어 다시 통신실로 찾아가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통화 중 신호가 흘러나온다. 날더러 전화를 끊으라고 소리치면서도 자신은 전화기를 제대로 내려놓지를 못하도록 급했든가? 더욱 마음 조리게 하는 궁금증으로 2~3분을 지나고 또 5분 정도 보내고 하며 열 번의 전화를 걸었지만 삐삐 거리는 통화 중 음만이 계속 흘러나올 뿐이다.
06월 06일 - 둘째가 간병인으로 보강되다
배안은 새벽 5시 반의 시간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아침식사를 넘긴 9시 반이니 전화를 건 것이 폐가 되거나 어려울 시간은 아니지만 어제의 연속된 이야기에 무슨 힘들고 상상하기도 싫은 소식이 끼어들까 계속 겁이 앞서 머뭇거리기를 몇 번 하다가 에잇 하는 기분으로 전화를 시도한다.
마침 형의 간병을 엄마 혼자 하다가는 큰일나겠다며 기말고사도 포기하고 합류했다는 둘째가 받아 주는데 그래도 차분한 목소리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지만 아내와 같이 간병하고 있다니 간병인으로서 힘든 건강을 버티고 있던 아내의 염려스럽던 상태를 일단은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둘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일단 안심의 마음을 품으며 아내와의 통화를 기다린다.
지금 큰 애의 상황은 몸이 마음을 따라 주지 못하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소변도 그대로 지려 버리고 있단다.
아이도 힘들지만 옆에서 간병하는 애 엄마가 더욱 힘든 상황인 듯싶다. 몇 마디의 말도 못 건네고 아내의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시간은 벌써 7분이 넘어서고 있다. 통화료가 얼마가 들은들 무슨 상관이랴 싶었던 게 전화 걸기 전의 마음이었는데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안심 할 수 있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되니 길어지는 통화에 계속 부담이 느껴지며 왜 그리 위성전화의 통화 시간은 빨리도 지나치는지 야속한 마음조차 든다.
어제 급작스레 전화를 끊으라는 말 때문에, 마치 영화 이야기에서처럼 주인공의 혼을 불러내는 일이라도 했었던 듯 섬찟한 생각마저 들었던, 큰애의 귀에 수화기를 대어놓고 불러 보던 일을,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에 다시금 시도해 본다. 열심히 이겨내라는 내 말을 반복해주니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눈을 크게 뜨는 표정을 보인다며 아내는 자신과 아이의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오히려 내가 더 걱정이 된단다.
나 역시 아내가 먼저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갖고 있었는데 그런 내 심정을 눈치라도 챘는지 둘째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엄마 옆에 동참했고, 아내도 문제없이 버틸 수 있다면서 다음번 입항 때 까지는 병이 모두 나아서 집에 가 있을 것이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있다.
둘째가 있는 동안에라도 잠을 자두어 진짜로 잠을 안 자고 병구완을 해야 할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면서 일요일에 전화 걸어주기로 약속하며 끊었다. 병실로만 전화 걸어 소식들은 후, 맘에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집에서 막내의 뒷바라지를 하시며 고생하실 어머니에게도 안부의 전화를 해야지 하는 배려의 생각이 든다.
전화 걸기를 참 잘했다. 어머니의 그래도 정정하신 목소리를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도 건강 유의하시고 편히 지내세요!” 하며 끊는데
“나? 나는 괜찮아! 우성이만 건강 되찾아 나오면 되지.” 하신다.
06월 08일
“아버지, 형이 의식을 찾았어요!”
위성전화의 삐리릭 하는 이상한 연결음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들려온 둘째의 목소리가 환희에 차있다.
“응 그래, 다행이로구나!”
나도 덩 달으면서도 마(魔)라도 끼일까 염려되는 마음 되니, 담담한 척 받아 내는데 가슴속은 쿵쾅거리는 충만한 기쁨으로 벅차기만 하다.
“엄마는?”
“지금 샤워하시는데 전화 잠시 끊었다가 조금 있다 다시 거세요!”
"그래. 그럴게!" 오늘의 가장 기쁜 소식을 찬찬히 음미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배안은 새벽 4시로 아직 어둠이 걷히려면 한 시간 이상 지나야 하지만 아내와, 한 애는 병자로 또 한 애는 간병인으로 있는 서울대학 병원은 오전 9시의 한가한 일요일 아침이다. 한 20분 브리지에 머뭇거리며 기다린 후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두 번의 실패를 더 한 끝에 세 번째 거니 벨 소리가 들려온다. 큰 애의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힘들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아내의 목소리도 밝아있다.
수화기를 큰애에게 연결시켜준다. 나도 이야기하고 그 애의 목소리도 들었다.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하며 전해지는 그 애의 말소리가 그래도 이겨내려는 의지가 깃들인 목소리로 들리어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바꾼 아내가 전화 요금 걱정하는 걸 보니 확실히 큰애의 용태가 많이 나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정신이 난 후 혼자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였다는 말을 전해 들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병마와 싸워야 하는 외로운 마음 아픔을 보여준 것 같아 측은함에 코끝이 찡하니 된다.
머리 안에 병소(뇌종양)가 있다지만 그 애의 생각하는 모습이나 행동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는 건강한 사색을 하는 젊은이이니 이번 치료로써 그 병소가 적어지기 시작하여 드디어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아지어 정말로 건강을 되찾은 튼튼한 모습으로 재회하게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이미 그런 징후를 보여주시는 하느님 당신께 대한 충만한 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전화를 끊었다.
07월 09일
큰애와 병실을 같이 쓰든 동료환자 홍새봄
골수이식 후, 의식을 회복하여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이제는 다시 잘 연결되는 SSB전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병실을 9층의 병동으로 옮기었단다. 전해질이 모자라는 증세가 있어 그것이 제 수치를 채우게 되면 퇴원을 하게 된단다. 그러나 이번 주 퇴원은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는 아내에게 고정에서 삼천포로 바뀐 도착지를 알려주니 어차피 자신은 배에까지 못 내려오는 사정인데도 “우이! 왜, 그렇게 되었어요?” 하는 볼멘소리를 낸다.
내가 상륙해서 집에 까지 움직이는 것에 대해 거리상 그만큼 어려움이 많을 걸 짐작해서겠지만, 그래도 이번 항차 고정항으로 결정되었다면, 입항 항로를 자주 가로막곤 하는 어망 때문에 출입항에 지장 받게 되는 안전사고에 대단한 신경을 써야 하는 건데, 그런 일이 없어진 게 한편으론 아주 다행한 심정이다.
큰 애와 같은 병실을 쓰며 백혈병으로 입원해 있던 새봄이란 아이의 현재 상태를 물어봤다. 완전 무균실로 들어가서 지금 한창 투병 중이란다. 그 애는 타인 골수 이식 수술이 정상적으로 끝나서 건강이 회복되어 지기를 기도할 때마다 생각하며 빌어 주던 아이이다.
그간에는 큰 애도 특수 병실에 있었고 그 애도 무균실에 입원해 있어 그 애 엄마와 계속 만나고 있었다고 아내는 전 했었다. 그 애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선물로 사다 준다고 약속했던 남아공에서 산 타조 알 공예품을 서울대학병원으로 갖고 가게 될 상륙 가방에 담아 놓았다.
후기:
새봄이는 나의 선물을 받을 무렵 다시 응급실로 내려가 투병을 계속했지만, 다시는 자신의 병상으로 되돌아오질 못한 채, 열여섯의 나이로 하느님 품안에 안겼다.
큰 애는 뇌종양은 무사히 이겨냈지만 당시 항암치료와 그 이전에 받았던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찾아든 뇌경색으로 현재 재활치료 중에 있다.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나마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