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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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몇 년은 신조선만 타다가 오랜만에 중고 선인 이 배에 오고 난 후는 항상 선체 미화 정비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선상 생활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선체 미화 정비에만 모든 인력을 투입 하기에는 지금 승선 중인 이 배는 빨리 해결해 주어야 하는 돌발적인 작업들이 자주 생겨나는 나이가 든 잔 치레가 많은 배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기에 선체정비가 더욱 필요한 배라는 이율배반적인 상황도 품고 있는 셈이다.
출항 후 일주일이 넘은 오늘에야 겨우 잡다한 일들에서 빠져나와 1번 창 해치 커버의 녹을 털어 내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어 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던 선체 미화 정비 작업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왕지사 승선하고 있는 바에야 나의 통솔 하에 있는 배가 모든 면에서 다른 동료들을 앞서 나가는 모범적인 선박이되기를 소망하는, 내 일에 충실하자는 삶의 목표를 생각하기 때문에 선체 미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 배에 승선한 지 어느덧 8개월째 되는 현시점에서 돌아보니 심적으로 퇴색된 부분도 많이 생긴 것 같아 보인다.
처음 승선하던 날 느꼈던 손을 볼 곳이 꽤나 많구나! 했던, 그래서 일 할 맛이 난다던 의기충천했던 심정이 언제부터인가, 이배의 분위기에 붙잡혀 헤어나지 못해서일까? 많이 둔화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해야 할 일들을 만나며 지레 겁을 집어먹을 정도까지 되어서일까?
이제는 그 당시와 같은 해보겠다던 열정이나 눈에 뜨이던 결심이 자꾸 타협하고 두루 뭉실 넘어가려는 경향으로 바꿔진 것을 스스로 깨닫고 실소조차 하게 된다.
이제 한 번쯤은 먼발치로 물러선 후, 제삼자적인 눈길로 이 배를 들여다보며 무엇을 제일로 쳐서 일을 행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더 꼽아 본 연후에, 실행에 옮기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번 항차 포항에 입항하여 하선하겠다고, 연가를 신청한 것이 어쩌면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배는 내가 연가 후 다시 돌아와 재승선 해야 할 책임을 맡은 선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