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당한 실내 자전거 기록

by 전희태


%C7コ%C0%DA%C0%FC%B0%C5(2631)1.jpg

사진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실내 자전거 모습으로 본선에 있던 것과는 다른 종임.


새벽이 되어 평소의 습관대로 눈을 뜨고 일어날 준비를 한다.

지금 쯤은 예정대로라면 조마드 엔트란스에 들어섰을 무렵이라 이미 야간 지시록의 지시대로라면 당직사관의 연락이 올 때로 여겨지건만 소식이 없어 그냥 브리지로 올라간다.


방금 배 한 척이 우리 배와 서로의 오른쪽 항해등인 녹색 불빛을 보이며 비껴 지나가고 있는데 멀리 선수 우현에선 죠마드의 등대 불이 깜박이며 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굿모닝,

하며 브리지로 들어서는 나에게

-안녕하셨어요.

대답하며 이제쯤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일찍 올라왔다고 당직사관인 일항사가 응답한다.


배는 달리고 있는 위치도 좋고 레이더에도 더 이상의 마주쳐지는 배도 없는 상태다. 단지 속력이 9.5 놋트로 좀 세어진 앞바람을 안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별 이상은 없을 것으로 여겨져, 곧 밝아 올 시간도 감안하여 당직사관인 일등항해사가 단독으로 당직을 수행하도록 맡기는 것도 괜찮다고 판단되어 브리지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일항사 수고해라.

당직사관인 일항사에게 다시 조선을 맡기고 운동을 하러 실내 자전거 실로 내려왔다.


오늘 아침에 달성해 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자전거에 앉아 회전수 표시 판을 확인해 본 순간 어제 내가 만들어 놓고 떠났던 99700 이란 숫자는 없어지고 00000 이란 숫자만이 얌전하게 첫날밤을 기다리는 새색시 마냥 내 눈에 확 들어온다.


순간 등골을 타고 찌르르 흐르는 실망감과 함께 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 하는 야속한 마음이 든다. 내가 오늘 아침에 해내려던 일을 누군가 이미 해놓은 상태를 보며 실망감에 에이 참! 어제 그냥 내쳐 밟아서 달성해두고 말았을 것을 하는 후회의 아쉬움이 든다.


이 배에 와서 처음으로 헬스자전거를 대하였을 때 만났던 숫자 판의 숫자는 2-3만을 달리고 난 숫자들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 숫자들의 계기판이 한 바퀴를 다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까맣게 먼 훗날의 이야기려니 생각했는데, 어느새 9개월 만에 연가로 내릴 때가 되어오는 요즈음, 그 숫자들은 어제 아침에 99700 이 되도록 맞추어 운동을 하였고 오늘 아침이면 한 바퀴를 다 돌아 새롭게 시작선에 서보게 되는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 새벽에 300이란 숫자만 더하면 99999 까지 갔다가 다시 원점인 00000으로 갈 수 있다는 작은 설렘을 갖고 자전거에 올라앉으려 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달성해놓은 00000이다.


우리 배에서 자전거 운동을 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세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운동하는 양이 보통 50 정도를 하고 난 후 다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 어제 300을 남겨 놓으며 누군가 오후에 50을 하고 나면, 나머지 250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항상 350 정도 하던 것을, 어제는 200 까지만 하면서 300을 오늘을 위해 남겨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심정은 역시 사람이니까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 모양인지 내가 만들어 보려던 00000 이란 숫자를 먼저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런 나의 의표를 치고 들어온 사람이 있어 나의 목표를 자기 것과 동일하게 세웠던 누군가가 그냥 페달을 마음껏 돌려 밟아 300을 채워서 00000에 만들어 놓고 흐뭇해하며 얌전히 떠났으리라.


00000. 처음 네 숫자는 흰색이고 마지막 한 자는 빨간색으로 보이는 계기판을 들여다본 순간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진 허탈감에 잠시 멈칫했고 슬그머니 치솟는 내 의표가 찔려버린 실망감에 그만 오늘 아침 자전거 타는 운동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운동을 해야 한다는 대명제(大命題)를 놓고 보면 이것은 아무런 일도 뜻도 아니야 하는 또 다른 이성이 찾아들더니 멈칫거리던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며 오히려 한 술 더 뜨기로 한다.


이것도 다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은 일이란 믿음으로 일궈주면서 세상사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는데 유용하게 참고하라며 새롭게 처음인 00000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여기니 오히려 오늘 아침 자전거 운동이 새삼 흥미롭기만 하다.


1,2,3.... 힘차게 오르기 시작하는 숫자가 한 시간 가까이 지나니 어느덧 400을 채워준다.

00400. 앞뒤 양쪽으로 00 가운데에 4로 균형이 잡힌 모습으로 표시된 계기 판을 보며 일어나서 갑판으로 나갔다.

(이 실내 자전거 운동기구의 계기판은 만 단위의 숫자를 표시하지만 10 단위의 숫자를 돌리기 위해서는 맨 아래의 빨간색 숫자가 10번의 주기를 돌아야 하니 실제로 400 이 나타나도록 돌렸다면 곱하기 10을 하여 4,000번의 주기이고 한 주기를 위해서는 양발을 각각 한 번씩 써서 페달을 밟은 것이니 또 곱하기 2를 하면 결국 8,000번의 빠른 걸음을 내디딘 것과 마찬가지이다.)


갑판 위로 나서보니 배는 어느새 솔로몬 바다에 들어서서 열심히 북상하고 있다. 오른쪽으론 야자수 숲으로 채색된 조마드섬이 보이고, 왼쪽으론 접근하면 항해에 위험한 산호초의 연초록빛 색깔이 선명히 나타나 있는 JOMARD ENTRANCE의 항행 위험 구역을 이미 모두 빠져나온 것이다.


마침 훤 넬(굴뚝) 꼭대기에 붉은색의 줄이 쳐진 BULKER 한 척이 본선의 왼쪽을 지나쳐 남하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나 온 곳이지만, 그들로서는 얼마 안 남아있는 죠마드 엔트란스를 통과하려고 남진하고 있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해상강도(해적) 방지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