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내에선 조금만 톤이 높아도 큰 소리가 된다.
사진의 오른쪽 비상구 표시를 따라가면 선미 쪽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거주구의 각층에 있는 방들을 이어주는 통로가 끝나는 곳에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있다.
그 닫힌 문을 열고 외부(갑판)로 나서면, 뜨거운 햇볕에 화끈하니 달아오른 철판 위 대기가 후끈하니 덮치듯 다가드는 열대 해역의 무더위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나야 내방과 브리지만을 오가며 시원한 에어컨디셔너의 효능을 최대로 받는 형편에서 근무 하지만, 기관장이나 일기사는 물속에 위치하긴 해도, 뜨거운 열기가 한증막 같은 기관실에서 근무하니, 열이 올랐을 거고, 일항사는 갑판에서 일하는 갑판부의 작업을 둘러보느라 햇볕과 가까이했기에, 더웠을 것이다.
이제 거주 구내의 냉방이 잘되고 있는 구역에서 지낼 수 있는 점심식사 시간을 고마운 시간으로 받아들이어 쉬면서 식사를 즐기는 점심때가 되었다.
그러나 식탁에 앉아서도, 평소와 달리 주고받는 말도 별로 없이, 열심히 점심 식사의 수저만을 놀리고 있는 것은, 워낙 더운 날씨였고, 오늘따라 에어컨디셔너가 100% 가동 못 하고 있어, 식탁마저 더위에 젖어 드니,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서둘기 때문인 모양이다.
열린 식당 문을 통해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 비디오를 시청하기에 그러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려 사관 휴게실 문 쪽을 보았으나 문 앞에 신발은 놓여 있지 않다.
사람이 휴게실에 들어있지 않다는 뜻이니, 아마도 부원 휴게실 쪽에서 시청하고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갑자기 좌현 쪽에서 큰소리의 고함지르는 소리가 복도를 따라 급하게 들려와 조용한 식탁에 놀람의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식탁의 모두는 열심히 놀리고 있던 밥숟가락을 한 순간에 똑같이 멈칫하니 멈춘 채, 긴장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본다.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요?
일항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무슨 일인가를 알아본다며 수저를 놓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좀 크게 들렸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하지만 일항사는 식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같이 식탁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계속 식사를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귀를 통한 머릿속은 누가 그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단 말인가?
의문은 방정맞은 생각일랑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혹시라도 큰 안전사고가 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 어린 추측으로 조마조마한 심정이 들어서고 있다.
이윽고 돌아온 일항사가 이상은 없다면서도 계속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아무래도 좀 더 확인을 하여야겠다며 다시 되돌아 나간다.
식사가 거의 끝나도록 한참을 더 있다가 들어온 일항사는 갑판, 기관의 전 승조원을 찾아보았는데 모두 이상 없다는 보고를 한다.
그렇다면 그 고함 소리는 과연 누가 낸 것이지?
문득 좀 전 비디오를 시청하는 기미를 느꼈던 것에 생각이 미치어,
-혹시 부원 휴게실에서 비디오 시청을 하고 있던 사람은 없었나? 하고 물으니
-예, 비디오를 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비디오에서 난 소리인 것 같아, 좀 전에 비디오를 통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려 사관 휴게실 문 앞을 보았는데 신발이 없어서, 아마 부원 휴게실에서 누가 시청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결국 어떤 사람이 부원 휴게실로 들어가려고 문을 연 순간, 비디오에서 큰소리치는 장면이 나와 그 소리가 우릴 놀라게 한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는 내 의견에 동의하는 표정으로 끄덕인다.
우리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소위 살롱 사관이라고 부르는- 선장, 기관장, 일항사, 일기사, 통신장-은 평소 생활에서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무덤덤하니 지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도 선내에서 발생하는 정상 아닌 상황에는 오늘 점심 식탁에서 보여준 행동같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작들을 보이곤 한다.
식탁 테이블은 따로 차려 있지만, 같은 실내에서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있던 주니어 사관인 2,3항 기사, 실항,기사는 우리가 놀래고 있는 소리에 별다른 관심이 없이 식사를 계속하고 있던 점과 비교가 되는 어쩔 수 없는 책임을 가진 자들의 진면목이 그런 것이리라.
한바탕 배안에 작은 수선을 일으키었던 식탁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무리 지으며, 도출해 낸 큰 소리의 진원지는 결국 비디오였다고 낙착되면서 끝이 났다.
오후 과업 시작 전까지 쉬기로 하고 모두들 식탁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헤어져 갈 때, 일항사에게 물었다.
-그래 그 보고 있던 비디오 프로그램은 뭐였대?
-예, T.V 드라마 ‘허준’이었답니다.
나도 보았던 <드라마 허준>이다. 그렇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장면에 어떤 것이 있었지? 잠시 기억을 되돌려 보았으나 금방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