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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운동 경쟁자

이 갑판의 둘레를 열심히 돌다 보면

by 전희태
IMG_1425(1366)1.jpg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


이번 항차 연가자의 후임 교대자로 우리 배에 승선한 사람 중에 나와 같이 항해 중인 배안을 도는 새벽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승조원이 있다.


나와는 몇 년 전에 오션 마스터호를 같이 타기도 했던 갑판수로서 당시에는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번 출항 후 운동하는 것을 보니 결과적으로 나에게서 운동을 배운 내 제자인 셈이다.


출항 후 며칠까지는 나보다도 일찌감치 갑판으로 나와 운동을 하는 열성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요새는 내가 지지 않겠다고 신경을 써가며 먼저 나가기로 작정하고 있기에, 오늘도 내가 먼저 서너 바퀴를 돌고 난 후에야 그 친구가 나타났다.


이렇게 같이 운동한다는 것은, 무조건 즐겁고 반가운 일이어야 할 터인데-그것도 나한테 배운 사람이니 더욱 그래야 마땅한 일인데-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도 나보다 먼저 나서서 운동하는 그를 보게 되면,

-어허! 나를 따돌리고 앞서 간다고...

하는 식의 괜히 상대방을 힐난하고픈(?) 고약한 심뽀부터 들기도 한다.


갑판을 돌다 보면 추월해서 앞서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데, 그럴 경우 나도 모르게 너무 경쟁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 감히 나를 뒤로 젖히고 앞으로 나가? 하는 식의 고까운 생각 조차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러는 거지’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중뿔나게 경쟁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을 우스워하는 마음 또한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가만히 따져보면 이렇게 끊임없이-특히 지기 싫다는 경쟁적인 쪽으로- 생각을 하며 운동을 해야지, 아무 생각 없이 <이번은 몇 바퀴 째 돌은 것이다> 하는 식으로 목표량 셈만을 꼽으면서 돌게 되면 얼마 하지도 못해서 도는 것이 지겨워지며 이제 그만 돌아도 되겠지 하는 식의 안달이 나는 게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이 운동의 특징이다.


그러니 그만 하고 싶은 이유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은 그 핑계에 빠져들어 스스로 세운 목표치의 운동량을 채우기가 힘들어지는 점을 방지해 보려고, 그렇듯이 조금은 부정적(否定的)인 방법이지만 경쟁적으로 대하는 게 아닐까? 어느 날 그런 결론에 도달해 보면서 이를 긍정적(肯定的)으로 타결하려는 새로운 방안을 생각해 낸 것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개인적으로 공평하게 할당된 이 운동의 바퀴수를 가질 수 있게 셈을 시작해 본 것이다.

가족이란 누구는 빼고 누구는 더하고 할 수 없도록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이니 내가 원하며 세워 놓은 목표량을 공평하게 그들 모두의 이름 위에 골고루 나누어 걸어 준 후 그 셈을 시작하니 목표량을 달성하기가 아주 쉬워지는 것이다.


이 아침, 비가 좀 뿌려지니 내 제자(?) 운동 꾼은 조금 꾀를 내었는지, 내가 갑판을 세 바퀴를 도는 약 20분이 경과하도록, 줄 없이 하는 줄넘기 포즈로 비를 피하여 계속 제자리를 깡충깡충 뛰는 운동만 하다가 끝을 내더니 들어가 버린다.


난 아직도 내 운동을 나누어 바쳐야 할 세 사람의 가족이 순서를 기다리며 더 남아 있는 형편인데....... 말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 약속한 운동량을 끝내고 들어가야 하는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용감히 남은 거리 돌기를 계속하려고 비가 뿌려 치기를 시작한 갑판 위로 서슴없이 발길을 내디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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