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에 실패한 음식은 과감히 버릴 것
오랜만에 방안의 냉장고를 뒤지다 보니 지난 항차 뉴캐슬에서 사서 넣었던 핫도그 빵을 찾아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에, 확인도 할 겸, 일단 전자레인지가 있는 브리지로 갖고 올라간다.
브리지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평소처럼 차 대접을 하려고 커피 포트에 스위치를 넣는 3 항사에게 잠깐 커피포트 대신 전자레인지를 켜주도록 부탁한 후 비닐 팩에 싸여 있는 빵을 꺼내면서 다시 냄새를 맡아본다.
빵은 세 조각을 하나로 묶어 놓은 두 뭉치로서 밑에 있던 것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데, 위쪽에 있던 것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말랑말랑한 상태이지만 약간의 새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일단 굳어진 녀석은 버리기로 하고 말랑한 녀석만 레인지에 넣어 주고 스위치를 켜서 작동시킨다.
잠시 후 시큼한 냄새가 살짝 섞인 향긋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이윽고 맞춰준 시간이 ‘땡’ 하고 종소리를 울려준다.
얼른 꺼내보니, 말랑말랑함을 간직한 빵이 촉감으로는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게 제법 먹음직스럽다.
-괜찮을까 모르겠네...,
한 귀퉁이를 뜯어내니 기다랗게 찢어진다. 그대로 입에 가져다 넣으니 쫄깃쫄깃한 게 우선 감촉으로는 그럴듯하다.
-괜찮은데요.
3 항사도 한입 베어 먹은 감상을 이야기하는 데, 나는 아무래도 찝찝한 기분이 남아 다시 한번 냄새를 맡아본다.
-좀 시큼한 냄새가 나지 않아?
약간 쉰 느낌의 냄새를 재확인하며 3 항사에게 동의를 구한다.
-선장님, 이 빵은 원래 그런 냄새가 나는 거예요.
3 항사는 한 조각을 더 찢어 입으로 가져가며 괜찮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래 괜찮을 거야.
3 항사의 빵을 결대로 찢어 내어 먹는 모양에 입맛을 보태며, 나도 다시 한 조각을 길게 찢어 입으로 가져간다.
이 모든 동작을 새벽에 못 다 했던 운동의 남은 양을 마저 채우려고, 브리지 내를 계속 빠른 걸음으로 뱅뱅 돌면서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입에 넣은 빵 조각을 그대로 삼키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할 것이란 불길한 느낌이 퍼뜩 들어 운동삼아 돌고 있던 걸음걸이를 바삐 윙 브리지 갑판 쪽으로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윙 브리지 사이드에서 입안의 우물거리고 있던 빵조각 모두를 그대로 바다 위에다 퉤퉤 내뱉아 버렸다.
다시 브리지 내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3 항사는 조금 더 그 빵을 떼어먹었고, 이제는 아끼는 것인지 나머지 빵은 모두 한쪽으로 예쁘게 치워놓고 있다.
-그만 먹고 버리지 그래, 이런 음식은 데웠다가 식으면 금방 상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야.
아무래도 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되어 한번 더 버리기를 강조하는데,
-나중에 다시 데워 먹으면 되지요.
하며 3 항사는 버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운동을 계속하면서, 내 머리 속의 생각은 버릴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를 놓고 한참을 궁리하다가 결론을 낸다.
음식이 좀 아깝다는 생각에 그냥 두었다가 만약에 먹은 사람이 복통 설사 등을 하면서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 황당함을 이 대양의 한가운데서 어찌한단 말인가? 잠깐 아까운 마음 접어두고 건강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론을 내고 나니 실행에 옮기는 것이 급선무라 3 항사가 놓아둔 빵 접시에 접근하여 아직 두 쪽이 남아있는 빵을 집어 들고 윙 브리지 갑판으로 되돌아 가서 그대로 물에다 던지려다가 손끝의 맛이라도 음미하고 싶어 빵을 결대로 찢어내어 던져 주기 시작했다.
-배탈이 날 걱정이 없는 고기들아! 모두들 잘 나누어 먹어요.
라는 생각을 보태주면서......
-3 항사! 아무래도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버려 버렸어.
다시 브리지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하니,
-예~에-....
아직도 먹을 수 있었음에 기울었던 마음 때문일까? 약간의 미련이 남아 보이는 3 항사 대답의 여운이 길다.
암만 그래도 버리기는 잘한 일이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는 심정은 그렇게 낸 결판을 칭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음식물을 쓰레기로 버린다는 일이 그 음식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고한 여러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고, 그런 음식조차 못 먹고 굶주리는 사람들까지 염두에 두면서, 또 비싼 돈 주고 산 음식물을 함부로 썩게 만들어 버리는 행동은 벌 받아 마땅한 일이란 식의 고정관념까지 넘어선 후, 끙끙거리며 혼자서 해낸 힘든 결과 도출이었던 것이다.
-자! 그럼 수고해라.
어쨌거나 시원해진 마음으로 브리지를 떠나려고 3 항사에게 인사를 보낸다.
-수고하셨습니다.
별일(?)을 한 것에 걸맞은 거창한 답례 인사로 되돌려 주는 3 항사의 말을 등 뒤로 들으며 브리지 통로 도어 핸들을 잡는다.
두 다리 모두 문턱을 넘어서 나온 후, 그냥 도어 핸들을 놓아주면 도어-크로서의 강력한 힘에 이끌려 문이 ‘꽝’ 하고 그대로 닫힐 경우를 상기하여, 마지막까지 손으로 잡아주어 살며시 닫히게 해주며 브리지를 떠났다.
다행히도 그날 그 시간 이후에 별다른 배탈 증세나 아픈 증상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문득 그리 된 것은 모든 아까운 생각을 끊어버리고 과감하게 바다에 던져버린 결정이 유효했던 것이며, 이는 도어 핸들을 끝까지 잡아주어 조용히 문이 닫히게 한 일과 일맥상통하는 조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