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없어야 하는, 배를 버리는 훈련
일요일이다. 하지만 그야말로 시간이 모자라니 쉬지도 못하고, 훈련을 하고 있다.
캐나다 기항 시 PSC(주*1)등의 수검에 별다른 지적사항이 없는 무사한 통과를 위해 정비와 자체수리를 계속하느라, 예정했던 훈련 할 날들도 작업하는데 할애했기에 생긴 일이다.
열심히 수리와 정비하는 모습을 보니 그 일들이 끝난 후에, 연달아서 훈련하자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그냥 넘어가기를 여러 번,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모처럼 바람도 없고 파도도 잔잔하니 배의 움직임도 무난하여서 구명보트를 어느 정도 현 측으로 내려 보는 훈련까지 실시하리라 작정했다. 데크 라인 까지만 내려 보는 것이 수월 해서 그런 것이지만, 이런 훈련 실시 자체도 이미 PSC 검사 항목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어, 어차피 해 둬야 할 훈련인 것이다.
단음 일곱 번에 장음 한 번인 비상벨 소리를 울린다. 실제 상황이나 훈련이 시작됨을 알리는 비상경보로서 선내 방송이 이어진다.
-훈련, 훈련, 훈련, 주방에 화재 발생. 전 승조원은 화재 진압 부서 배치 붙어!
선실 내부 화재 발생으로(주방으로 했으니) 시나리오가 진행되며, 항해에 필요한 최소의 당직자를 제외한, 모든 승조원은 맡은 바 자신의 부서로 빨리 가서 화재 진압 훈련에 참가해야 한다.
본부인 브리지로 현장반과 지원반 별로 인원 보고가 있은 후 화재의 진행 상황 및 진압에 관해 현장반장으로부터 수시로 보고되던 중, 한 사람이 다쳤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즉시 지원반에 인계하여 치료를 받게 하고, 그 후의 환자 상황은 지원반으로부터 보고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가상의 시나리오에 의한 일이다.
그러나 화재에 대항하는 여러 가지 경우를 감안하여, 방화복 착용 및 화재 진압에 사용하는 물품들의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각반별로 곁들인 후에야, 화재 진압 훈련은 끝이 났다.
평소의 훈련 때라면 여기서 마쳤겠지만, 그간 밀려 있던 훈련을 위해, 한 번 더 다른 훈련을 요구하는 벨을 울리도록 명령한다. 30초에 이어지는 긴 장음을 세 번 이상 내는 벨의 소리가 길게 울려 나왔다. 이번에는 배를 버리고 바다 위로 탈출하기 위한 퇴선 훈련이다. 실제로는 가 당찮은 그야말로, 훈련으로만 존재되기를 원하는 그런 훈련이다.
구명동의(救命胴衣)를 입은 전승조원들은 자신이 퇴선(退船) 시 가지고 내려야 할 물건들을 챙겨 들고 각자의 지정된 보트가 있는 보트 갑판으로 모여들었다.
다시 철저한 인원 점검을 실시한다. 이번 인원 점검은 마지막으로 배를 버리고 떠나는 비상 상황의 훈련이므로, 만약 실제 상황에서, 인원점검에 빠진다는 것은 그나마의 목숨을 포기한 일과 같기에 철저한 인원 점검이 요구되는 것이다.
덧붙여서 각자가 갖고 나와야 할 물건을 포함한 복장 점검도 같이 실시하는데 보온 구를 갖고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몇 명 있다. 보온 구는 네모로 접힌 상태로 비닐봉지에 넣어져서 구명 동의와 함께 최근에 보급된 바다 위에서 체온의 손실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착용하는 물품이지만, 무심히 보고 넘기는 사람에겐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팽개쳐진 채로 내버려두고 있든 실정을 보여준 셈이다.
그동안 승선 후 인계받은 것을 잊고 시간을 보내다가 하선할 때가 되어 교대하면서, 언제 없어진 것인지도 모른 채, 인계 없이 가버려서 없어진 경우인 것 같은 데, 아마도 구명 동의와 같이 묶어진 상태에서는 훈련 때마다 아무래도 거치적거리는 게 귀찮아서 다른 곳에 떼어 놓았던 것을 잊은 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진자로 잃어버린 케이스가 많은 듯하다. 결국 자신과 교대해 준 먼저 있던 전임자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이 생기게 된 모습들이다.
모두 보온구를 찾아내게 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해주며 다음부터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일 없이 꼭 지참하고 훈련에 참여하도록 일일이 당부한다. 이어 훈련은 마지막으로 접어들어 보트를 내리는 일로 바뀌었다.
광양에서 보트 대빗(Boat's Davit)의 브레이크 장치에 대해 육상 수리한 우현(右舷) 측 1번 보트를 먼저 보트 갑판 레벨까지 내려 본다. 물론 수리가 끝난 후 점검하긴 했지만 혹시나 수리에 이상이 남아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다행히 그런 마음을 기우(杞憂)로 만들며 보트는 무사히 내려졌고, 브레이크도 잘 잡힌다.
마지막으로, 내려주었던 보트를 감아올려 원래대로 수납시킨다. 처음에는 좀 미적거리더니 몇 번 반복하니 곧 잘 올라와 그대로 수납시킨 것이다.
이런 보트의 수납 상황은 실제의 퇴선 하는 경우라면, 결코 필요 없는 작업이지만, 훈련이기에 철저히 지켜봐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즉 모든 것을 원상태로 안전하게 복귀시켜야 하는 마지막 마무리 단계로서 꼭 지켜봐야 하는 마지막 항목인 셈이다.
지난 며칠간 수리하고 보살핀 보람도 함께 즐기며 원래의 제 자리에 보트를 수납시킨 후, 이번에는 보트 엔진 시동 동작을 본선에 처음 승선한 사람들부터 실시한다.
광양에서 새로 탄 승조원을 위주로 하여 시행 한 훈련인데, 그 광경을 브리지에서 내려다본다. 시동 레버를 돌리는 동작을 여러 사람이 교대해가며 실시한다.
자연스럽게 전에 타던 사람들이 시동했을 때의 엔진 다루는 솜씨가 새로 승선한 사람들보다 나아 보인다. 아직 우리 배에 익숙지 못해서 그런 것임을 알기에 걱정보다는 한 번 더 시동을 걸어보게 훈련을 지시한다.
기왕지사 시작한 훈련 철저히 해보자 싶어 이번에는 2호 구명정(救命艇)의 하강까지도 지시했다. 내려본지가 몇 개월이 되어서인지 처음에는 고착된 듯 꼼짝달싹 안 하여 수납 에어 모터를 달아, 몇 번 힘을 가해 움찔거리게 만든 후 작동시키니 잘 내려가고 브레이크도 잘 잡힌다.
이 보트는 엔진이 달려있지 않고 노와 돛대가 있는 무동력 구명정이다.
사실 바다 위에서의 조난 시 구명보트는 승정한 후 멀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구조의 손길이 올 때까지 사고 난 해역 부근에 무사히 떠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기에 예전에는 무동력 구명정도 많이 있었다.
요즘은 해상에서 다른 배의 조난을 구조할 때, 구조정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구명정에 엔진도 탑재하고 좀 더 활동적일 수 있는 것을 요구하며, 아울러 본선의 조난 현장에서 안전하게 벗어나기 위한 의장(수밀 보트 커버)과 최소의 동력이 필요한 구명정으로 바뀌고 있다.
주*1 PSC : Port State Control, 기항지(寄港地) 관할, 선박의 감항성(堪航性) 검사를 기국(旗國)이 아닌 기항지 관할 국가에서 하도록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