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렌즈 앞에 옷벗겨 세워진 느낌
회사로부터 온 PANO WEEKLY NEWS - 073호에 아래 내용의 뉴스가 들어 있다.
<H상선 선교 감시 카메라 시스템 구축 개시> 일종의 선박형 블랙박스를 만들려는 모양이다.
H상선은 소속 선박의 해양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사고 발생 원인의 파악을 위하여 각 선박의 선교 당직 상황을 감시할 수 있도록 선교 감시 카메라 시스템의 구축을 시작했다.
선교 감시카메라 시스템은 카메라(적외선 카메라로 야간에도 촬영 가능, 360도 회전 및 원격조정 가능, 히타치 제품) 2세트와 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녹화장비로 구성되며, 2대의 카메라를 선교에 장착해 선교 근무자의 당직근무상황을 전 항해 기간에 걸쳐 VIDEO TAPE로 녹화할 예정이다.
녹화된 테이프는 일차로 선장이 점검하며, 문제 발생 시 선박관리부서로 송부하여 사고 발생원인 파악에 사용된다.
본 시스템은 소속 선박 89척(9월 20일 현재)에 연말까지 전부 설치할 예정이며, 척당 설치비용은 3천만 원 정도로 알려졌다.
한편, H상선에서는 선박 별 감시카메라 시스템의 실시간 영상 중계를 검토하였으나, 초기 투자비용 및 통신비용 과다로 잠정 보류한 상태란다.
이런 기사를 받아보며, 아직 실시는 보류했다지만 실시간 영상 중계란 사항을 보면서는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들키는 듯한 섬찟한 기분에 온몸에 전율이 닭살처럼 돋아난다.
-어휴, 이거 사람 살 맛 나겠나!
또 무슨 일이 생겨서 그 회사는 브리지 내 감시카메라 설치 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중에 그 의문을 해결해 줄 배를 만났다.
오후 들어 ABBOT POINT로 향한다며 남향으로 지나가든 H 상선의 <H 스피리트호>를 만나 통화하면서 그 궁금증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된 것이다.
저녁 일항사 당직 시간이었지만 우리 배는 마침 3항사가 식사 교대로 브리지에서 당직에 임하고 있었는데, 그 배는 그냥 일항사가 당직을 서고 있었다.
이야기 끝에 우리가 받았던 뉴스에 대해 물으며 그 배에도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는지부터 물어보니 감시 카메라 이야기는 있었지만, 아직 카메라 설치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내며,
-배 타 먹기도 점점 어려워지는군요.
오히려 반문을 하듯 중얼거렸다.
아울러 지난해였던가 북한 배와 H 사의 컨테이너 선이 충돌한 사고가 삼항사가 일항사의 저녁 식사 교대를 해 준 시간에 발생하였기에, 그 후부터 일항사의 석식 교대제도(주*1)도 아예 없애 버리고 당직이 끝난 저녁 8시에 식사를 하게 규정을 바꾸었 단다.
그랬는데 금년에 또 컨테이너 선에서 충돌사고가 발생하니까, 이번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의 실시를 고려하는 모양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만약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되었는데 사고가 났을 경우 우리 배의 상황은 속속들이 알 수 있지만 상대선의 인적 행동에 대해서는 모르게 되는 경우(그들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아서) 충돌의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해 우리의 잘못까지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 일가를 생각해본다.
충돌 사고를 낸 상대 선에서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는 쪽으로 고집하며 입을 맞추고 서류를 작성해서 대항해 올 때 그들의 과오를 밝히기 위해 본선 승조원의 잘못도 녹화되어 있을 수 있는 감시카메라의 녹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거시적으로 볼 때 본사를 위해 꼭 이로운 일일 수만은 없다고 여겨진다.
특히나 악명 높은 그리스 회사 배와의 사이에 사고라도 나면 그들의 물귀신 작전에 학을 떼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지레 생겨 짐은 내가 너무 앞서 나가는 때문일까?
그런 상황도 예상하면 결과적으로 감시 카메라의 설치는 승조원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로 보는 견해가 커질 수 있겠다.
예전에 브리지 당직을 일인이 서는 경우에 대비해 어느 나라에 선가 브리지에 설치할 화장실을, 배변 중에도 사방을 모두 경계 관찰할 수 있게 잘 보이는 장소에 투명한 벽으로 만드는 방안을 생각해 냈다가, 선원의 인권유린이란 판정으로 유야 무야(有耶無耶)가 되었다던 뉴스가 떠오른다.
H상선에서는 이런 점을 간과하지 않고 실행에 들어가려는 것일까?
주*1 : 배의 당직사관 근무시간은
00(12)-04(16) 시는 2 항사,
04(16)-08(20) 시는 일 항사,
08(20)-12(24) 시는 3 항사의 당직으로 하루에 4시간씩 두 번으로 도합 8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데, 여기서 저녁 식사 시간이 18시경이므로 이 시간에 당직인 일항사의 식사 시간을 돕기 위해 3 항사가 식사교대해주던 제도가 지금까지의 해상 관례로 운영되던 사항인데, 그 시간에 사고가 자주 발생함으로써 원 당직자인 1항사가 식사교대 없이 계속 서게 하는 방 안으로 바꿨다는 것임.
(기관 사관의 당직도 같은 직급의 항해사와 같은 시간에 기관실에서 근무하도록 되어있음.)